후에 장(張)선배로부터 직접들은 이야기인데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 수원(水源)까지 걸어서 임시청사에 도착하였고, 대전(大田)으로 후퇴하여 이(李)대통령과 합류하여 남하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국방부(國防部)와 의견차이가 있어서 치안국장자리를 사퇴하였는데 다시 기용되어 내무부차관을 거쳐서 내무부장관이 되신 것은 세인이 잘 알고 있는 바이다.
이(李)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두 번 구출하셨다는 것이 장(張)선배의 술회이다. 해방 후의 좌우익 싸움에서 나라를 구했고, 6·25동란의 참상에 관하여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이야기 끝에 상기한 두 가지를 소개하고 이 사실만 가지고도 북침설(北侵說)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가를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일본인 중에서도 이 날조된 설을 믿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참으로 웃기는 일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일부 인사들이 의도적으로 이러한 설을 유포시키고 있었는데 좌익계열에 말려든 것이 분명하다. 이 대학에서 북침설에 관하여 지적을 하게 된 동기는 이 대학의 출판물 중에 6·25발발에 관하여 애매한 기술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6·25동란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값진 교훈과 더불어 반성해야 할 점을 남겼다. 전자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유비무환(有備無患)에 대하여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고 후자 중에서는 정보에 너무나 어두웠다는 사실이다. 양자가 다 연관되어 있는 과제인데 어쨌든 6·25당시의 혼란상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6·25발발 후 정부의 자세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었다. 모든 국민은 안심하고 직장을 이탈하지 말라는 지시가 계속 방송되었다. 대학에 대해서는 전선을 위문하라는 시달이 있어서 나의 경우에는 학생들을 데리고 의정부방면으로 출동했다가 국군 장교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후퇴하기도 하였다.
이렇고 보니 피난할 겨를이 없었고 더욱이 한강인도교가 폭파된 후에는 꼼짝없이 서울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으며 대부분의 서울시민이 적 치하에서 생각하기조차 싫은 참담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서울대학교에서는 최규동(崔奎東) 총장과 이갑수(李甲洙) 의대 학장 등 여러분이 납치되었고 많은 지명인사들이 끌려갔다. 한 가지 소득이 있었다면 공산주의가 무엇이고 공산주의자가 어떠한 일을 하는가를 체험하게 되어 국민들에게 반공정신을 일깨워주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6·25를 계기로 우리들 사이에는 반공정신이 착실하게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적 치하의 3개월 동안은 참으로 문자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참상이 이어졌다. 나는 48년 10월에 결혼하였는데 처남되는 분들이 연소(年少)했기 때문에 빙장어른의 권유도 있고 해서 처가살이를 했다. 명륜동(明倫洞)에 위치한 처가는 대단히 큰 규모의 한옥(韓屋)이었으며 건축될 때에 많은 에피소드를 남긴 집이라고 듣고 있었다.
큰 대문과 작은 대문이 있는 집이었다. 서울이 떨어진 다음날 북한군 사병 세 사람이 다발총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다시 중학생이었던 큰처남(정기창)鄭冀昌)에게 총부리를 대고 인민을 착취했으니 맛을 봐야 한다고 협박한다. 나의 손바닥을 보고는 일은 하지 않고 호의호식한 사람이니 역시 맛을 봐야겠다고 소리를 지른다.
당시 처가에는 식모격인 부인과 그의 아들과 딸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 어린이들을 보고 이 집 주인들이 밥을 안주고 굶기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깜짝 놀란 어린이들이 울면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더니 똑같은 놈들이라고 일갈한다.
국군을 숨기지 않았느냐고 물으면서 방이고 부엌이고 창고고 아무데나 들어가서 쿡쿡 찔러보기도 하고 발로 차보기도 한다. 참으로 긴장감 도는 분위기였다.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유난히 내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노려본다. 슬그머니 잔꾀가 생겼다. 시계를 풀어서 건네주었다. 좋은 시계이니 받으라고 했더니 별말 없이 호주머니에 넣는다. 집사람의 시계도 주었다. 심기가 괜찮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간다고 하며 사라졌다. 죽었던 사람이 목숨을 건진 심정이었다.
무슨 일이 꼭 닥칠 것만 같았다. 가족이 헤어져 지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끝에 이집 저집 친척집에 가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모든 집안의 사정이 같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고향인 김포(金浦)로 피난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김포를 가는 길에 폭격을 당해서 구사일생으로 되돌아오기도 하였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고향에는 가지 않기를 잘했다. 고향이 피난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