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5월경으로 생각된다. 미군(美軍) 대령(大鈴)과 중령(中領)이 내원(來院)했다. 닥터 권(權)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들고 온 가방 속에서 서류를 꺼내면서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라고 주문한다. 표정으로 보아 무엇인가 조사를 하려는 느낌이다. 출생지(出生地), 학력(學歷), 경력(經歷) 등 여러 가지를 묻는다. 처(妻)에 관해서도 상세하게 질문한다.
무엇인가 단단히 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질문이 아니라 신문(訊問)이었고 미국인(美國人)으로서는 이상하다고 할 만큼 표정이 굳었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 날 밤은 잠을 설쳤다. 이제까지 해온 일 가운데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별로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일은 없었지만, 질문하는 태도로 보아 불길(不吉)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달래기 힘든 심정(心情)이었다.
다음날 젠킨스 군단장(軍團長)을 찾아갔다. 어제 고급장교로부터 장시간 조사를 받았는데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니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간청했다. 젠킨스 장군(將軍)은 밑져야 본전이니 걱정말라며 맥주를 권했다.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해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6개월 후에 헌병 대위(大尉)가 찾아왔다. 군단장(軍團長)의 명으로 모시러 왔다고 한다. 자신이 뒷좌석에 앉고 나를 앞좌석에 앉힌 것을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명령(命令)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모셔오라는 것 이외에는 아는 바가 엇다고 말한다. 흑인(黑人) 운전병은 말 한마디 없이 운전만 한다.
이윽고 군단장실에 도착했다. 미소를 지으면서 환영해 준다. 6개월 전에 걱정했던 일이 이제 결실되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에 대한 최고(最高) 훈장(勳章)인 자유훈장(自由勳章)을 수여토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설명을 한다. 군단장이나 그 이상의 장군만이 수여할 수 있는데 원한다면 8군사령관(軍司令官)으로부터 받도록 알선해 주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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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제9군단 민사처병원장 시절(1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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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놀랐다. 6개월 전에 조사를 한 것이 바로 이 훈장수여를 위한 신상 조사였던 셈이다. 그 동안에 어떤 조사를 더 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참으로 고맙다고 인사하고, 이런 일은 나의 개인 업적이 아니고 병원(病院)에서 일하는 모든 분의 덕분이니 병원(病院)에서 군단장(軍團長)으로부터 수여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1주일 후에 원했던 병원(病院) 직원들 앞에서 훈장(勳章)을 수여받았는데 훈장기(勳章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uthorized by Executive Order July 6, 1954 has awarded the Medal of Freedom, without palm, to
DOCTOR KWON E. HYOCK, KOREAN CIVILIAN
for meritorious service :
Doctor Kwon, Republic of Korea Civilian, distinguished himself by meritorious service as Superintendent, Civil Affairs Section, Corps, in Korea, from 16 June 1951 to 1 August 1953. Through aggressive leadership, professional knowledge and administrative ability, he developed a modern, well-equipped hospital from an in-adequate installation originally housed in unfloored tents. The success of his intensive health education program for the civilian population was demonstrated by a ninety eight percent decrease in major disease incidence under previous years. Through vigilance and prompt application of modern medical techniques, he prevented epidemics from occurring within the area. His insistence on the highest professional standard from his staff resulted in many lives saved and the restoration to health of thousands of suffering refugees and other civilians. Through vast improvement of public health standards and the establishment of a modern hospital, he helped to create a lasting feeling of good will and cooperation between the Korean people and the United Nations. Doctor Kwon's outstanding achievement reflects great credit upon himself and Republic of Korea.
포천(抱川) 민사처병원(民事處病院)의 생활은 지금도 많은 추억을 안겨준다. 고광욱(高光昱) 선생은 언제나 하이너 박사(博士)와 함께 소아과(小兒科) 일에 열중하였으며 서울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김동선(金東鮮) 선생이 외과의(外科醫)로서 부임했고 최(崔)약사도 여전했다.
봉급도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포천(抱川)에서는 생활비가 들지 않으니 재정상으로도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가끔 서울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고 부산(釜山)으로 가서 가족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했다. 포천(抱川) 생활 후반기에는 부산(釜山)에 있던 친척들을 오게 하여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전선(戰線)에서의 생활이 그런대로 재미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