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못 할 해프닝도 많았다. 그 중의 하나가 발전기화재(發電機火災) 사건이다. 전선생활(戰線生活)은 별로 변화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해서 저녁에 사교춤을 배우기로 했다. 서울에서 댄서를 초청해서 춤을 배웠는데, 병원직원은 물론이고 민사처본부(民事處本部)에서 차장(次長)까지도 자리를 같이 한 적이 많다.
어느 날 밤,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발전기가 과열되어 화재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 당시 사용하던 발전기는 겨우 병원에만 송전할 수 있는 용량(容量)이었다. 운 좋게 아이비 차장도 함께 있었다. 아이비 차장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자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설명을 들으니 그럴 듯했다. 보다 대규모의 발전기를 들여와서 병원 뿐만 아니라, 포천(抱川) 읍내(邑內)의 주요 기관에도 송전하자는 것이다. 계획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다. 각급 기관장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받기도 했다.
민사처(民事處)에는 치안국(治安局)으로부터도 대표가 파견되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분으로는 고인(故人)이 된 박양호(朴亮鎬) 총경, 천세기(千世基) 총경과 후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경북도경국장(慶北道警局長)을 거쳐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경주(慶州) 캠퍼스의 건립을 책임 맡은 바 있고 경찰행정학의 대가로 활약하고 있는 서재근(徐載根) 교수 등이 있다.
박(朴)총경은 나의 중학 1년 후배였는데, 춘천(春川) 시절에는 자기 입장이 있어서 1년 선배 행세를 했다. 후에 서로 만나서 대소(大笑)했는데 치안국(治安局) 보안과장(保安課長)을 끝으로 경찰계를 떠났다. 천(千)총경은 경복중(景福中) 출신인데 졸업 연도는 나와 같다. 보사부장관(保社部長官)을 역임한 천명기(千命基)씨의 백씨이며, 장면(張勉) 총리의 경호실장을 역임한 바도 있다. 독실한 불교(佛敎)신자이며 가끔 내원하여 종교토론을 하곤 하였다. 개신교 신자도 있었고, 천주교 신자도 있어서 이들이 토론을 전개하는 것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였다.
포천(抱川) 시절(時節)에 생각나는 또 한 가지 일은 포천중학교(抱川中學校) 교사건립(校舍建立)이다. 미군장병들이 1불, 2불씩 희사해서 지은 교사다. 건축이 완공된 후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오셨다. 당시 미(美) 8군사령관(軍司令官)이던 테이러 대장(大將)이 먼저 와서 이(李)대통령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헬리콥터에서 내린 이(李)박사에게 사령관(司令官)은 거수경례를 하는데 이(李)대통령은 모자도 벗지 않고 목례(目禮)를 할 따름이었다. 이(李)박사가 정말로 훌륭하고 강한 분이라는 인상을 피부로 느꼈다. 교사를 순시하시는 동안에 무슨 뜻인지 화장실에 들르셨다. 화장실을 보시면서 사용재료가 국산(國産)이냐, 미제(美製)냐며 물으신다. 국산이라고 답하니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시던 일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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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천에서 출생한 윤택, 포천에서 출생한 성택과 함께 / 포천 미 제9군단 민사처병원장 사택에서 (1954년 어느 봄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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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抱川)시절에는 당시 미국의 닉슨 부통령(副統領)도 다녀갔다. 악수를 했을 때 얼마나 힘이 셌는지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大統領) 당선자도 내한하여, 미(美) 9군단(軍團)을 찾았다. 영식(令息)인 존 아이젠하워 소령(少領)이 군단본부(軍團本部)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어찌나 보안이 엄했는지 영식에게도 부친의 내방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 나는 군단본부에 가 있었는데 누구도 천막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방송이 있었고 존 아이젠하워 소령은 빨리 군단장실로 출두하라는 방송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민사처병원장(民事處病院長)으로서 할 만큼 했다고 판단이 되어 대학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군단사령부에서는 단단한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의견을 묻길래 모교인 서울의대에 기념관(記念館)을 지어 달라고 했다. 당시 AFAK(Armed Forces Assistance in Korea)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어서 미군(美軍)에서 건축물자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모교(母校)도 부산(釜山)에서 서울로 다시 옮겨졌는데 교사와 병원건물을 미(美) 5공군(空軍)이 사용했던 까닭에 시설은 거의 없다시피 되었다.
학장(學長)인 이제구(李濟九) 선생(先生) 및 원장(院長)인 진병호(秦柄鎬) 선생(先生)과 상의하였더니 함춘원(含春苑)에 건립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미(美) 9군단(軍團) 공병감(工兵監) 일행이 헬리콥터 3대에 분승하고 신설동 경마장에 도착하여 연건동(蓮建洞) 모교를 방문했다. 나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명륜동(明倫洞) 처가에 이들을 초청해서 큰 파티를 해주기도 하였다.
미군 측에서는 함춘원(含春苑)을 실측(實測)하고 착착 준비를 진행시켰다. 공병감실에서 설계도를 작성하였다. 석조(石造)건물로 설계되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미군측에서는 물자만 제공할 뿐 인건비는 한국측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李)학장과 진(秦)원장께서 노력하셨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다.
결국 이 일은 허사(虛事)가 되고 말았다. 나는 거짓말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군관계 장교도 허탈하게 되었고 나는 그야말로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졌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어느 날, 9군단(軍團) 의무부(醫務部)의 화이트 대위가 찾아왔다. 대학으로 돌아가려면 머릿속에 무엇인가 들어 있어야 하는데, 그 동안 공부할 사이가 없었으니 미국으로 가서 충전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미네소타대학교(大學校) 보건대학원(保健大學院)에 연락을 취해 놓았으니, 미네소타대학(大學)으로 갈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다. 그 때만 해도 미네소타가 미국의 어느 쪽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한미재단(韓美財團)에서 돌보아 주게 되었다고 부언한다.
이것이 미네소타 대학으로 유학하게 된 배경이다. 후에 알고 보니 화이트 군의관은 미네소타대학 출신의 외과의였는데 미네아폴리스에서 반갑게 만났던 일이 생각난다. 미군인들의 사려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감사하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 방위는 UN군사령부(軍司令部)의 지휘하에 있었다. UN군사령관은 미8군 사령관이 겸무하고 있었으며, 16개 참전국의 장병들이 산하에 있었다. 서해안 지역은 미해병대(美海兵隊), 서부전선은 미(美) 제(第) 1군단(軍團), 중부전선은 미(美) 제(第) 9군단(軍團) 동부전선은 미(美) 제(第) 10군단(軍團)이 주축이 되었고, 각 군단에 민사처병원이 설치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