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건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과대학의 신설을 인가해서는 안 된다. 의대졸업생의 수는 적절하다. 4개 국립대학의 지리적 위치는 의학교육, 특히 임상교육과 연구를 실시하는데 충분한 환자를 제공할 수 있는 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양질의 의료와 의학교육의 기회를 마련하는데 적당한 위치이다."
이외에 조직, 학생, 교수, 교육방법, 교육과정, 학급규모, 도서관, 실험기기, 건물, 대학원교육, 의예과교육 등에 관하여 세세한 건의를 하였다.
간호교육분야(看護敎育分野)에서는 당시 2개의 사립대학과 서울대학에 4년제 교육기관이 있었고 22개의 간호고등기술학교가 있었다. 전체 간호학생수는 2,688명이었다. 1958년 현재 3,602명의 간호사가 등록되어 있었으니 인구 1만명에 간호사 1.6명이었다.
또한 '3개 4년제 과정은 계속되되 학사수준 간호사에 대한 수요가 있을 때까지는 타대학에는 설치하지 말 것. 기타 간호학교는 현재수준에서 계속될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으며 의학의 경우와 같이 간호교육분야에서도 세목 건의가 제시되었다.
치과교육분야(齒科敎育分野)에서는 당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이 유일한 치과대학이었다. 1959년에 전남대학교(全南大學校)에서 2년제 치의예과가 시작되었고, 61년에는 학부교육이 시작될 예정으로 있었다. 사립치대는 없었다.
당시 1.190명의 치과의사가 등록되어 있었는데, 이 중 반수는 1945년에 배출된 분들이었다. 종합건의는 다음과 같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이 유일한 치과대학으로 있어야 한다. 전남대학(全南大學) 치의예과를 수료한 학생은 서울치대(齒大)로 흡수되는 것이 좋다." 세부 건의가 제시된 것은 물론이다.
약학분야(藥學分野)에서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이 유일한 국립약대였다. 부산대(釜山大)에서 약대 신설을 추진했지만 인가되지 않았고 약학과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들을 포함해서 전국에 13개 약대가 있었으며 약사가 과잉배출 된다는 견해였다.
종합건의는 다음과 같다. '국립대학에 있어서는 서울대 약대 이외에는 약대를 설치하지 말 것, 약학교육, 면허취득, 제조 및 판매를 더욱 합리화시키기 위한 법적 규정이 재검토되고 개정되어야 한다.'이외에 세부 건의가 있었다.
1959년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 보건분야(保健分野)문제가 산적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일반 국민에 대한 보건개념 도입문제, 접종계획의 미진, 모자보건의 미진 등 허다하게 많은 과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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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졸업식 (동숭동 캠퍼스에서)/ 의합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 3. 28.) 7대 국회에 막 등원했던 시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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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인력의 양성문제도 시급하였다. 정부에서는 수년 내에 181개 보건소를 설치할 계획으로 있었다. 종합건의는 다음과 같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유일한 국립교육기관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다른 경우와 같이 세부 건의가 제시된 것은 물론이다.
이 보고서는 오늘날의 현실을 감안할 때는 거리가 먼 건의를 담고 있기도 했지만 대단히 값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때가 좋지 않아서 빛을 보지는 못하였다. 1960년에 제출되었지만 그 당시의 상황은 이러한 건의를 신중하게 검토할 만큼 안정돼 있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5·16 훌로 넘어갔는데 그 때는 이미 이 보고서가 망각되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내 자신도 보관하고 있던 보고서를 잃고 말았다. 내 딴에는 조사팀에 직접 참여하였던 관계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처지였는데도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서울대에 부탁해봤지만 역시 허사였다.
이러던 중 1989년 12월에 미네소타대학의 Gault 박사를 서울로 초청하게 되었다. 대한 보건협회의 국제 학술발표회가 있었는데 이 모임에 특별연사로 초청한 것이다. '80년대 미네소타주(州)의 결핵'이 이 분의 연제였지만 발표보다는 구회를 나누고자 하는데 참뜻이 있었다는 것이 솔직하다.
오래간만에 만나서 이런 일 저런 일을 이야기하다가 '그린 북'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가 한 권 가지고 있으니 돌아가서 곧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원본을 나에게 보내주고 자기는 복사를 해서 갖겠다고 한다.
돌아간 지 1주일쯤 후에 이 보고서가 도착했다. GAULT라고 서명한 것을 보니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잃었던 보물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Curran 박사는 그 후에도 몇 차례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 있는데 벌써 전에 세상을 떠났다. 75년 7월에 학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보스턴에 들러 그의 아파트를 찾았으나 허사였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에 출강한다고 들었기에 동대학원에 문의해봤지만 그의 거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보스턴에서 미니애폴리스로 갔다. 귀국길에 미네소타대학의 친구와 옛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보건대학원장인 Gaylord W. Anderson박사에게 연락하였더니 밤에 자기집으로 와줬으면 한다. 전에도 가본일이 있고 해서 어렵지 않게 찾아갔다. 놀랍게도 Curran 박사 내외분이 와있었다. 나도 놀랐지만 Curran 박사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보스턴에서의 이야기를 했더니 상당히 미안해한다. 물론 그의 실수가 아니었다.
Anderson 박사와 Curran 박사는 녹음기를 앞에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Curran 박사가 록펠러재단의 연구비를 얻어서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역사를 쓰게 되었으며 하버드 의과대학 출신중 고령자를 만나서 자료를 수집 중이라는 설명이다. 즉 Anderson 박사와 같은 노인을 생전에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녹음해 두었다가 후에 정리한다는 이야기다.
그린북 이야기가 나온 것은 물론이다. 그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하여 여러 대학을 방문하던 경험담을 털어놓고 옛일을 회상하기도 했는데 Anderson 박사는 몹시도 흥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간간히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린 북 이야기가 끝나자 두 분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2년 후에 Curran 박사는 그의 저서 한권을 나에게도 보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