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동란이 발발한 다음해인 51년 9월부터 3년 동안 미(美) 제(第)9군단(軍團) 민사처병원장(民事處病院長)으로 일하였다. 전선생활(戰線生活)도 할 만큼은 했다고 판단되어 어느 날 병원장직을 그만두고 대학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군단장에게 전했다.
그 후 의무부장으로부터 미네소타(Minnesota)보건대학원으로 가도록 주선하였으니 그리 알고 준비를 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떨어져 있었으니 머리를 충전시키지 않고서는 교단에 서기가 곤란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네소타가 미국의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미 제9군단의 부탁으로 한미재단(韓美財團)이 도미유학을 알선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대학에 출강하는 등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도미준비를 하다가 55년 9월에 '미네소타 보건대학원(保健大學院)'에 입학하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네소타 생활이 나에게는 대단히 유익하였다. 보건학에 관한 개념을 파악하게 되었고 그 체계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Gaylord W. Anderson 원장의 성의 있는 지도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Anderson 박사는 보건행정(保健行政)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원로학자이며 서울대학교와 미네소타대학교 간의 계약 즉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내한한 바 있는 인물이다. 이 프로젝트가 1955년에 가동하기 시작하여 서울대학교(大學校)에서는 의대(醫大), 공대(工大), 농대(農大) 교수 등의 제 1진이 미네소타대학교에 교환교수 자격으로 파견되었는데 나는 이 프로젝트와는 관계가 없었다.
Anderson 원장(院長)은 지도교수로서 나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표시했고 수시로 불러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서울의 모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나보다도 먼저 듣고 전해주기도 하였다. MPH과정을 마치고 귀국하려는 나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더 남아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하였다. 귀국해 봐도 별로 공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방한 시에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그의 의견에 따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모교의 김성진(金晟鎭) 학장에게 타진해 본 결과 빨리 귀국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시 나는 모교의 교직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귀국해서 이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김(金)학장의 간곡한 조언이었다.
Anderson 원장에게 이 사정을 이야기하였더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학내과정을 마친 후 현장실습과 미시간주 북쪽(Upper Micigan)의 소도시에 가 있었는데 엔더슨 원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 들러 가라는 것이다. 다음 날 보건대학원(保健大學院)으로 돌아갔다. 심경변화가 생기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이번에는 귀국하겠으니 다음 기회에 다시 와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그렇다면 부탁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귀국하면 서울대학교에 보건대학원을 만들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하여 보건대학원 설치가 젊은 나에게는 하나의 지상적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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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소타 보건대학원 학우들과 (1955. 10.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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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몇 달 후인 56년 12월에 서울의대 대우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김성진(金晟鎭) 선생 후임을 명주완(明柱完) 선생께서 학장직을 맡고 계셨다. 당시 학장업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가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원만한 수행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내용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교수교환과 시설재건이 그것이다.
미네소타대학으로부터도 수 명의 교수가 파견되어 와 있었는데 재서울대 책임자는 농과대학 교수인 Arthur E. Schneider박사였으며 의과대학에도 N. L. Gault, Jr. 교수 등 여러분이 교대로 와있었다. 특히 Gault교수와는 현재까지도 형제와 같은 교분이 지속되고 있다. 그는 미네소타의대 학장직을 오랫동안 지내고 정년퇴임하였는데 그 후에도 한국에 대하여는 남다른 이해와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일을 보필하기 위하여 한범석(韓凡錫) 선배가 명(明)학장을 돕고 계셨다. 서울의대로 오시기 전에 한(韓)선배는 한미재단(韓美財團)의 후원으로 53년에 공중보건원(公衆保健院)(Institute of Public Health, Korea)을 보건사회부 산하에 개설하고 2개월 과정의 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중보건원은 중구 예관동(藝舘洞)에 소재하였던 중구보건소에서 시작되었고 얼마 후 회현동 건물로 옮겨 갔다. 4기에 걸쳐서 교육이 실시되었는데 제 1기는 53년 10월 28일부터 12월 27일까지의 2개월간이었으며 수강자는 20명이었다. 각도 및 육·해·공군에서 각각 2명씩 참가하였다.
민창동(閔昶東) 박사(당시 노량진 보건소장(保健所長)), 송달호(宋達鎬) 박사(당시 용산 보건소장(保健所長), 김용성(金容聖) 박사(당시 충남(忠南) KCAC 직원), 윤석자(尹錫字) 박사(당시 개정농촌위생원(開井農村衛生院) 근무), 김명호(金命鎬) 박사(당시 전남(全南) 위생연구소장(衛生硏究所長)), 백남진(白南振) 박사(당시 부산보건소장(釜山保健所長) 등 쟁쟁한 인사들이 제 1기생이었다.
공중보건원(公衆保健院)은 55년 12월 말까지 계속되었다. 한범석(韓凡錫) 원장과 더불어 구연철(具然哲) 박사, 김명호(金命鎬) 박사, 박재빈(朴在彬) 박사 등이 교육을 담당하였는데, 기용숙(奇龍肅) 선생, 전종휘(全鍾揮) 선생 등도 외래강사로서 참여하셨던 것으로 전문(專聞)하고 있다. 김명호(金命鎬) 박사는 54년 9월에 미네소타 보건대학원(保健大學院)에 유학했다가 다음해 19월에 귀국한 후에도 계속 공중보건원(公衆保健院)에서 근무하였고, 박재빈(朴在彬) 박사는 55년에 Berkeley 보건대학원(保健大學院)으로 떠났다. 박(朴)박사는 WHO를 거쳐 하와이대학교 보건대학원(保健大學院)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한(韓)선배와 김명호(金命鎬) 박사는 1956년 3월 1일에 발족한 서울대학교 대학원 보건학(保健學) 과정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이 시작된 데는 당시 대학원 교무과장이시던 라세진(羅世振) 선배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구연철(具然哲) 박사도 이 과정에 참여하게 되어 있었으나, 이화여자대학교(梨花女子大學校)의 초청으로 진로를 바꾸었던 것으로 듣고 있다.
조교수(助敎授) 발령을 받은 수개월 후에 명주완(明柱完) 학장께서 한(韓)선배 후임으로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일을 맡도록 하라는 분부가 계셨다. 한(韓)선배는 인구학(人口學) 연구차 Princeton 대학으로 가시게 되어 있었다. 김명호(金命鎬) 박사는 57년 6월 말, 보사부(保社部) 보건소(保健所) 훈련반(訓練班) 으로 전출하였다가 9월부터는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미네소타 프로젝트'일을 맡게 되었는데 이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배웠고 여러 가지 값진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명(明)학장께서는 부지런한 분이어서 한시도 쉬지 못하게 일을 시키셨는데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다시없이 귀중한 경륜으로 된 것이다.
명(明)학장을 모시는 과정에서 예방의학이나 보건학에 관하여 말씀 올릴 기회가 많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명(明)학장께서는 이해력이 대단하셨으며 때로는 답변 올리기 어려운 질문을 주시기도 하였다. 덕분으로 나 자신도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가 수없이 많았다.
58년에 접어들어서는 본격적으로 보건대학원 설치에 관한 건의를 올렸다. 보건대학원의 기능, 우리나라에서의 필요성, 국제적인 추세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기회만 있으면 설명을 올렸다. 끝내는 보건대학원을 설치하는데 동의하셨으며 적극적으로 밀겠으니 수단껏 해보라는 언질을 주셨다.
우선 대학본부가 문제였는데 마침 법과대학에서 행정대학원 설치 운동이 시작되어 모든 일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음은 문교부를 설득하는 일이었는데 어지간히 힘들었다. 고등교육국장(高等敎育局長)이나 대학과장의 입장에서는 보건대학원(保健大學院)이 어떠한 성질의 교육기관인지 알 리가 만무했다.
문서상으로는 상당히 꾸며봤지만 충분한 설득력을 보이지는 못하였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꾸준히 뛰었다. 당시의 문교부장관이 의사 출신의 최재유(崔在裕) 선생이었던 것도 다행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문교부에서는 대체로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또 하나의 난관이 법제처(法制處)였다. 당시 법제처(法制處) 제(第)1국장(局長)이 박일경(朴一慶) 선배였는데 무턱대고 국장실을 찾아갔다. 박(朴)국장은 나를 대학 선배로 착각하셨던 것이 분명하다. 대머리 때문에 덕을 본 셈이다. 해당 과장을 부르더니 내가 요청한 대로 해주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