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우문제를 주요 이슈로 하는 수련의 파동은 60년대부터 거의 연례적으로 발생하였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특수법인인 서울대학교병원이 발족하기 전까지는 의과대학의 부속병원 이었으며 법적으로는 의과대학장의 소관사항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대학장과는 거의 무관하게 되어 있었으며 병원은 독자적으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여타 대학에서도 동일하였다. 내가 학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에도 그러했다.
나는 별로 병원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수련의 파동에 대해서도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당시 의대부속병원장은 김홍기(金弘基) 선배였으며, 김(金)선배는 병원행정의 베테랑이었다. 김(金)원장은 권위 있는 이비인후과 교수였으며 68년부터 11년간 부속병원장을 맡은 후, 78년에 서울대학교병원 초대원장이 되신 분이다.
그런데 1971년의 수련의 파동은 예년과는 달리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 있었으며 서울의대병원의 귀추가 이 상황을 좌우하는 처지에 있었다. 내가 학장에 취임한 1년여 후에 발생한 일이었는데, 그 양상이 병원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만이 아니라 의과대학도 협력하여 총력체제를 갖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6월 28일 새벽 인턴 49명이 4급 갑 공무원 봉급에 해당하는 본봉을 3급을 의무직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인상해 줄 것과 국가예산의 0.9%에 해당하는 보건예산을 인상해 줄 것 등을 내걸고 인턴숙소를 튀어 나갔다.
이들은 군(軍)에 가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덕수궁으로 가서 기념촬영을 한 후 적십자병원을 찾아가 헌혈을 하기도 하였다. 환자를 등지고 나온 죄책감 때문에 헌혈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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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련의 파동을 보도한 경향신문 (1971.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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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후인 7월 3일에는 레지던트들이 합세하는 조짐을 보였다. 인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수련의의 처우개선과 보사부장관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면서 성명서(聲明書)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당국에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레지던트들도 7일 아침부터 48시간 시한부 파업에 들어갔다.
9일 아침 전원이 복귀하였다. 이번에도 정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1주일 간 시한부 근무를 하기로 하고 그래도 해결이 나지 않을 경우에는 무기한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결의하고 이를 통보하였다.
그 후 정부에서는 처우개선안에 승복할 수 없다고 결의하고 9월 4일 인턴 39명이 다시 숙소를 떠남으로써 전국적 규모의 파동으로 확산하는 조짐을 보였다. 7일부터는 1, 2, 3년차 레지던트 전원이 파업에 가세하고 그 여세가 부산(釜山), 경북(慶北), 전남(全南) 등 각지로 번져 전국의 국·공립병원의 기능은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다만 4년차는 9일까지 시한부로 근무하면서 대화의 길을 트겠다고 밝히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였다.
당시 보사부가 취한 미온적 자세에 대하여는 내 자신도 섭섭하게 느낀 바 있었다. 당시 문교부장관은 민관식(閔寬植) 선배였는데, 김종필(金鍾泌) 총리와 함께 방문하겠으니 수련의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해달라는 전갈이 왔다. A강의실에 집합도록 하였다. 장관이 먼저 학장실로 오셨다. 얼마 안가서 김(金)총리가 오셨다.
나는 김(金)총리에게 알고 있는 대로 보고를 올리면서 A강의실로 안내하였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김(金)총리는 조용한 어조로 수련의의 요구가 수용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金)총리와 민(閔)장관의 내교가 수련의 파동을 해결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확산됐던 파동이 수습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주위에서는 학교와 병원이 합작한 좋은 작품이라고 격려해주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