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장시절에 가장 어려웠던 것의 하나가 교수 재임용제의 실시였다. 1975년 7월 23일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되고 9월 15일에는 교수 재임용 심사위원회 규정이 대통령령 제 7809호로 공포되었다. 대학교원은 임용된 후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다시 임용절차를 밟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해 6월에 정부(政府)·여당(與黨)에 의하여 교수 임기제가 발표되었을 때에는 교수와 부교수 10년, 조교수와 전임강사는 1~3년간의 계약제로 하고 3회 이내에서 연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었으나, 최종적으로는 교수와 부교수 6~10년(1980년 이후에는 6년), 조교수와 전임강사는 2~3년, 조교는 1년간 임용하는 것으로 되었다.
일단 교직원으로 임용되면 영구적으로 간주되어 오던 종전의 고정관념을 불식시키고 교직원의 연구의욕을 진작시키고자 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었지만, 교권침해(敎權侵害)라는 여론도 상당히 높았다.
총장이 위원장이 되고 부교수 이상의 교원 중에서 총장의 제청으로 장관이 임명한 위원 15인(위원장 포함) 이내로 교수 재임용 심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회는 각 교수에 관하여 최근 10년간에 걸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심사하게 되어있었다. ①연구 실적 및 전문영역 학회활동, ②연구 및 학생지도 능력과 실적, ③교육관계법령의 준수, ④교원으로서의 품위유지.
의과대학의 경우에는 야간개업(夜間開業)을 이중직으로 간주하고 이중직을 가지고 있는 교직원을 탈락시킨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교직원들이 긴장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특히 임상교수 중에는 야간개업(夜間開業)을 하고 있던 분들도 상당수가 있어서 긴장감이 더욱 심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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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의학사 편찬을 위한 간담회를 마치고 외교구락부에서 / 앞줄 왼쪽부터 명계완, 박주병, 나세진, 이청구, 김기홍 선생, 뒷줄 왼쪽 둘째부터 필자, 장우현, 육세균 씨, 이영택 교수 (1974. 7.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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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눈초리가 왜 그런지 매서웠던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나는 어떻게 이 일을 뚫고 나가야 할지 상당히 고민하였다. 다른 학교에 비해 의대에는 교직원의 수가 많고 으레 많은 탈락자가 생길 것이라고 점치기도 하였다. 윤천주(尹天柱)총장 주재로 몇 차례 비공식 심사위원회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도 여러 대학의 위원들이 나를 주목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교수재임용제도(敎授再任用制度)는 미국의 제도를 상당히 가미한 것이며, 그 취지를 탓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결과나 부작용을 낳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였다. 나는 이 제도를 굳이 의과대학 교직원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하였다. 오히려 심기일전(心機一轉)의 계기를 만드는데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당시 의과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대학의 시선이나 분위기를 보면 나의 의견인자 주장이 손쉽게 관철(貫徹)되기는 힘들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도 나는 나의 방침을 밀고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부작용 발생이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나는 윤(尹)총장에게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하였다.
최종회의(最終會議)에서 나는 의과대학에는 해당자가 없다고 하였다. 대부분이 어이없다는 눈치였다. 이날 몇몇 대학이 탈락자를 보고하였다. 76년 2월 29일, 의과대학 교직원은 전원이 재임용되고 학내에서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다만 내과의 김도진(金道鎭) 교수는 재임용신청을 하지 않고 자퇴(自退)하였다.
내가 학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 제도에 관한 논란은 계속되었다.
한때는 교수협의회(敎授協議會)에서 이 제도의 폐지를 건의하기도 하였는데, 문교부에서는 더욱 강화하는 방침을 세우기도 하였다. 교수 재임용제는 교수의 자질향상과 교육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교수 공채(公採)제도와 더불어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하였지만, 운영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재임용 심사과정에서 교수의 연구(硏究)와 강의(講義) 이외의 사항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있고, 교수에 대한 계약 준수와 권익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비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와 같은 사정에서 이 제도는 교권을 침해하는 제도라고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