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4월 서울의대 학장직에서 물러난 다음날 보건대학원장(保健大學院長)으로 취임하여 2년 간 근무하였다. 보건대학원(保健大學院)은 설립 때부터 깊이 관여하고 또 비교적 오랜 기간(61.10~66.2.) 교무과장으로 일했던 관계로 낯설지 않았다. 예방의학교실이나 보건대학원이 나에게는 다 같이 친정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윤천주(尹天柱) 총장으로부터 귀띔을 받은 후 나는 원장실을 확대하고 보수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윤(尹)총장은 흔쾌히 나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즉각 보수작업을 지시하였다. 덕분에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원장실은 제법 집무실답게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집무실에 대하여 지나치게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기관의 장으로서는 나름대로의 체통을 세워야겠다는 뜻에서 이러한 요청을 했던 것이다.
취임 후 나는 보건대학원이 가야 할 길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비교적 많이 가졌다. 사실상 보건학(保健學)에 관한 인식은 별로 크지 않았으며 일반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내에서도 사정은 비슷하였다. 일반적으로 보건대학원이나 행정대학원같은 전문대학원(專門大學院)은 신통한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심지어는 전문대학원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은 학문이 아니라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기도 하였다.
나의 의견은 달랐다. 실제 사회에서 직접 적용될 수 있으면서 과학적이고 학문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이 필요하며 전문대학원(專門大學院)은 이와 같은 교육을 실시하는 장(場)이라고 믿고 있었다. 미국사회나 대학에서 전문대학원(專門大學院)의 비중은 결코 낮지 않으며 어떤 분야에서는 이들 대학원의 역할이 대단하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취임 초에는 학풍을 올바르게 잡으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교수방법이나 교육과정에 관한 토론도 지속적으로 하였다. 정문식(鄭文植) 교수를 보건학과장으로 임명하고 직제에 없는 학과장보 제도를 만들어 홍재웅(洪在雄) 교수를 임명하였다. 당시 보건대학원은 보건학과 단일로 되어 있었으며 원장보 제도는 실시되기 전이었다. 후에 정(鄭)교수는 원장 직을 역임하였고 홍(洪)교수는 인하대(仁荷大)로 전출하였다.
내가 원장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보건대학원에서는 강원도(江原道) 춘성군(春城郡)에 시범(示範) 보건사업(保健事業)을 실시하고 있었다. 보건위생 일반에 관한 사항을 다루었고 의료보험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의료보험 시범사업도 진행되고 있었다. 정문호(鄭文鎬) 교수가 현지에 상주하면서 제반 일을 관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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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건대학원장 시절에 제1회 병원관리연수과정을 개최하였다. 앞줄 중간에 윤천주 총장, 신현확 보사부 장관, 한격부 의협회장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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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7년 5월에 윤천주(尹天柱) 총장에 상신하여 이 시범사업을 보건대학원 수준에서 서울대학교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하고 강원도청에서 서울대학 총장(總長)과 강원도 지사(知士) 간에 정식으로 협약(協約)을 체결하도록 준비하였다.
이 조인식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당시 강원도 지사는 박종성(朴鐘聲)형이었는데 박(朴)형과 나는 중학교 때부터 막역한 친구였다. 박(朴)형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면서기로 출발하여 강원도 내의 거의 모든 직책을 거친 바 있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도내 국장직을 고루 역임한 후 부지사를 거쳐 지사로 올랐다.
박(朴)지사는 생애 봉사의 하나로 서울대학교와 강원도 사이의 시범보건사업(示範保健事業)을 끌고 나가겠다며 열성을 보였다. 조인식이 있은 후에도 나는 여러 차례 현지를 방문했다. 이 시범사업에서 얻은 자료는 대단히 값진 것이며 이들을 토대로 하는 각종 연구논문은 보건대학원의 자랑거리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교수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연구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교수실을 대폭 확장하였다. 법적인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듣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본부와도 제휴하여 합리적으로 처리하였다. 한편으로는 학생실습실을 보수하였고 회의실을 확장하였다. 대학원다운 면모를 갖추어 보려는 집념에서 나는 나름대로 노력을 다하였다. 예산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대학본부의 도움으로 이 일은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한편으로는 보건대학원 현관 앞 조경과 환경 정비에도 힘을 기울였다. 보건대학원 현관 앞에는 의과대학의 목공실과 창고건물이 서 있어서 좀처럼 보건대학원 건물의 위신을 찾기 힘들었다. 의과대학 교수인 나로서는 모교 인사들에게 목공실이나 창고 건물의 철거 허가를 얻어내는 것이 어지간히 힘들었다. 제아무리 보건대학원장이라고는 하지만 나의 신분은 의대교수였기 때문에 모교의 건물을 철거시키는 일이 야릇한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대 인사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이들 건물들은 철거되었다. 비로소 보건대학원은 현관 앞에 좁기는 하지만 화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