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학생담당학장보회의를 소집하였다. 몇 가지 안건을 처리한 후 학생처장(學生處長) 문제를 꺼냈다. 그랬더니 많은 교수가 학생담당학장보중에서 가장 고참이고 능력도 훌륭한 농과대학의 조용섭(趙鏞涉) 교수를 모시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나는 조(趙)교수를 만나본 일이 없어서 그의 인품을 알 수 없었고 또 관악 캠퍼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이 되기는 하였지만 인물난이었던 때라 조(趙)교수를 모시기로 작심했다.
총장에 취임한지 3주일이 지난 날,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외국학자들을 초청한 리셉션이 교수회관 잔디밭에서 열렸는데 이 날 조(趙)교수에게 올라오도록 연락했다. 교수회관 잔디밭에 서서 몇몇 교수와 환담을 나누고 있는 중이었는데 피부가 꺼멓게 탄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조용섭(趙鏞涉) 이라고 자기소개를 한다.
한 구석으로 함께 가서 학생처장직을 맡아 달라고 했다. 깜짝 놀라면서 그런 중요한 직책을 맡을 사람이 못된다고 사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명령조로 이야기했다. 아무리 명령이지만 시골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 직책을 해 낼 수 있겠느냐고 고사한다. 다 함께 공부하며 노력해 가면서 일하면 된다고 구슬렸다. 이렇게 해서 조(趙)교수는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조(趙)교수는 무던히 노력했다. 때로는 데모하는 학생 속에 뛰어 들어가서 물리적으로 지도하는 정열을 발휘하기도 했다. 조(趙)교수의 인간미는 구수했다. 학문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난한 농가에 태어나서 서울대학에 들어왔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학위를 취득한 그의 입지전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겨운 점이 많다. 후에는 학생처장으로서 고생한 그를 모교인 농대학장(農大學長)으로 상신했다. 농대학장을 역임한 후 서울대 부총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의 부총장은 조완규(趙完圭) 박사였다. 오래 전부터 친숙한 사이였고 그의 학문적 ․ 사회적 능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처지였다. 생물학전공인 조(趙)박사는 유전공학자로서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으며 내가 의대 구내의 인구의학연구소(人口醫學硏究所)에서 일한 시절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는 문리대(文理大)시절부터 이미 많은 공헌을 한 바가 있었으며 문리대의 학생과장, 자연과학부장, 자연과학대학장 등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다.
조(趙(부총장을 바꿔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총장, 부총장이 다 같은 자연과학출신이라는 것은 모양이 우습지 않느냐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조(趙)박사 자신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생각 끝에 취임 후 2개월이 지난 8월 5일에 이현재(李賢宰) 교수를 그의 후임으로 교체하였다. 후에 조(趙)박사는 이현재(李賢宰), 박봉식(朴奉植) 총장의 뒤를 이어 18대 총장으로서 서울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과 과학의 발전을 위하여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총장취임시의 학장회의멤버는 다음과 같다 부총장 조완규(趙完圭) 교수, 교무처장 김종운(金鍾云) 교수, 대학원장 이만갑(李萬甲) 교수, 인문대학장 민석홍(閔錫泓) 교수, 사회대학장 김영국(金榮國) 교수, 자연과학대학장 고윤석(高允錫) 교수, 가정대학장 이혜수(李惠秀) 교수, 경영대학장 이용준(李庸俊) 교수, 공과대학장 이택식(李澤植) 교수, 농과대학장 이은웅(李殷雄) 교수, 미술대학장 박세원(朴世元) 교수, 법과대학장 김치선(金致善) 교수, 사범대학장 정원식(鄭元植) 교수, 수의과대학장 이영소(李榮紹) 교수, 약학대학장 이상섭(李相燮) 교수, 음악대학장 박민종(朴敏鍾) 교수, 의과대학장 서병설(徐丙卨) 교수, 치과대학장 안형규(安炯珪) 교수, 보건대학원장 허정(許程) 교수, 행정대학원장 유훈(兪焄) 교수, 환경대학원장 권태준(權泰埈) 교수, 도서관장 최지훈(崔至薰) 교수, 사무국장 석희갑(石熙甲) 씨, 시설관리국장 장병규(張炳圭)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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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총장 취익식에서 / 윤일선 선생과 함께 교수화관에서 (1980.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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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처장은 임기제의 보직인데 나는 임기를 지키는 것을 절대원칙으로 삼았다. 취임하자 일괄사표를 말하는 인사도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학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현재도 나의 변함없는 소신이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직자는 2회 연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임기는 2년이었다.
재임 중에 새로 발령된 분들은 부총장 이현재(李賢宰) 교수, 교무처장 강신택(姜信澤) 교수, 학생처장 조용섭(趙庸涉) 교수, 남세진(南世鎭) 교수, 대학원장 김회한(金會漢) 교수, 인문대학장 강두식(姜斗植) 교수, 사회대학장 손제석(孫製錫) 교수, 강명규(姜命圭) 교수, 자연대학장 장세희(張世憙) 교수, 가정대학장 임원자(任元子) 교수, 경영대학장 심병구(沈昞求) 교수, 농과대학장 조용섭(趙庸涉) 교수, 미술대학장 서세옥(徐世鈺) 교수, 사범대학장 김종서(金宗西) 교수, 수의대학장 이장낙(李長洛) 교수, 약학대학장 국채호(鞠埰豪) 교수, 음악대학장 이성재(李誠載) 교수, 치과대학장 김해영(金海英) 교수, 보건대학원장 홍창의(洪彰義) 교수, 행정대학원장 김해동(金海東) 교수, 도서관장 이영기(李榮基) 교수, 사무국장 이남영(李湳榮)씨, 시설관리국장 어창수(魚昌秀)씨, 이해경(李海暻)씨, 박만용(朴萬鏞)씨였다.
강신택(姜信澤) 교수를 교무처장으로 기용한 것은 전문대학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보건대학원과 인연이 있는 나는 전문대학원에 대한 인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국제적 수준의 대학으로 되는 데에는 전문대학원의 역할도 상당히 크다는 것이 나의 평소의 의견이었다. 행정대학원 교수이던 강(姜)교수는 교무처장으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후에 그는 행정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김회한(金會漢) 교수에 대해서는 대학 예과시절부터 존경해오던 처지여서 대학원장으로 모셨다. 한때 연탄가스중독으로 고생하셨는데 이 일만 없었던들 누구보다도 훌륭한 일을 해내실 분이라고 확신했다.
김영국(金榮國) 교수는 건강문제로 학장직을 사퇴하였는데 그 후 완전히 회복되어 대학원장, 부총장 등의 요직을 두루 맡았다. 한때 교양과목으로 교육되던 국민윤리(國民倫理)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김(金)교수는 학장직을 떠난 후에도 이 분야에 대한 일을 계속했었다. 즉 "현대사상연구(現代思想硏究)"라는 제목으로 학생들에게 어필하는 교수방법을 연구개발하였다.
김(金)교수의 뒤를 이어 사회대학장이 된 손제석(孫製錫) 교수는 반년쯤 지난 후 청와대 교문(敎文)수석으로 임명되었다. 3년여 동안 이 일을 맡아오다가 나의 후임으로 문교부장관이 되었다. 고윤석(高允錫) 교수의 후임인 장세희(張世憙) 교수는 후에 대학원장이 되었고, 고(高)교수는 후에 부총장을 역임하였다. 두 분이 다 같이 이 나라의 과학분야 발전을 위해서 공헌한 바가 크다.
김치선(金致善) 교수는 노동법의 권위자인데 후에 숭실대(崇實大) 총장으로서 진가를 발휘하였다. 문교부장관 정원식(鄭元植) 교수는 제6공화국의 2대 문교부장관이 되어 소신 있는 문교부행정을 펴냈으며 그 후 국무총리(國務總理)로서 지대한 공적을 남겼고 92년 대선에서는 김영삼(金泳三)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약하여 승리로 이끌었다. 현재 세종연구소(世宗硏究所) 이사장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후임 학장인 김종서(金宗西) 교수는 정년 후에 상명여대(祥明女大) 총장을 역임,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