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어 얼마 되지 않은 7월 30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의 좌석은 단상에 마련되어 있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인사가 단상에 앉아 있었는데 당시 서울대 사대 교수였으며 현재 울산대(蔚山大) 총장인 이상주(李相周) 박사 외에 별로 회상되는 분이 없다.
국보위(國保委) 오자복(吳滋福) 교육분과위원장의 인사가 있은 후 7 · 30 조치의 내용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는 단상 인사들이 의견을 말하는 순서가 되었다. 청중석은 만원이었다. 텔레비전 녹화장치는 쉴 사이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생방송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입본고사(大入本考査)의 폐지에 관하여 나는 별로 말할 입장이 아니었었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 간에 서울대 지원생의 수준은 뻔한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예비고사의 실시와 그 성적에 따라 지원하는 경우에는 서울대학교에 더욱 우수학생이 몰리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입생 정원을 급작스럽게 증가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졸업정원제(卒業定員制)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다. 양적 팽창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대학교육의 질이 저하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나의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모 고등학교 교장이 나의 말을 듣고 있다가 퉁명스럽게 일갈한다. 모든 것이 다 서울대학교의 책임이니 서울대학교를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다. 지금 이 교장의 성함이나 교명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 때는 상당히 불쾌하였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교장생활을 하나 하고 못마땅하게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내 묵묵하였다.
이 회의가 80년 '7·30 조치', 즉 교육정상화조치(敎育正常化措置)의 시작이었다. 이 조치는 고등학교교육을 개혁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대입본고사의 폐지와 고교 내신제의 실시를 택하고 과외망국론(課外亡國論)이 운위될 정도로 과열된 과외공부의 해소방안을 마련하여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그 취지를 두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안겨준 것은 이 조치의 또 하나의 내용인 졸업정원제(卒業定員制)의 실시였다. 졸업정원제가 구상된 일은 그 전에도 있었다. 60년대에 일부 대학이 수용능력도 없으면서 지나치게 많은 학생을 받아들여 대학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였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일은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다. 그 결과 정원령이 만들어졌고 대학의 정원을 정부에서 관리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학사과정생(學士課程生)의 동결은 많은 수의 재수생(再修生)을 산출하여 사회적 문제를 등장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견지에서 졸업정원제는 재수생 대책과 관련된 증원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는 타 대학에 비해 시설여건이 비교적 우수하다는 이유로 신입생의 전체 증가율이 60.28%였는데 비해 무려 96.9%로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시설확충이 비교적 필요치 않은 문과계열의 경우는 이과에 비해 그 율이 거의 2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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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trick Ongley CMB총재에게 명예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 오른쪽은 이만갑 대학원장 (1980.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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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정원제(卒業定員制)는 일정 인원의 졸업정원을 기준으로 하여 일정 비율의 학생을 초과모집하고 이들 가운데 졸업할 때까지 성적이 불량한 학생 순으로 초과모집한 학생을 유급, 탈락시키는 제도이다. 서울대학교는 이 제도에 따라 졸업정원이 5,020명으로 증가되었고, 이를 기준으로 30%가 증가된 6,530명의 입학정원을 갖게 되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숫자였다.
1981년에는 5,020명보다 272명이 많은 신입생이 입학하였으므로 졸업정원을 초과하여 모집한 학생을 인위적으로 탈락시켜야 하는 규정이 마련되어야 했다. 81년 7월 3일에 제정되고 9월 4일에 개정된 바 있는 '서울대학교 학사감원(學事減員) 규정'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는 학사감원(學事減員) 대상이 다음과 같이 규정되었다.
1) 입학 후 4개 학기 이상 이수한 자의 수가 학과별 기준 졸업정원의 110%를 초과하는 경우 학사감원 기준성적순(基準成績順)에 의해 학과별 진급인원에 포함되지 아니한 자(즉 2학년에서 3학년 진급 시 20% 감원).
2) 졸업사정에서 제외된 자.
3) 학과 배정 자격을 갖춘 자로서 배정에 응하지 아니한 자.
4) 학과 배정 후 임의로 배정을 포기한 자.
또한 학사감원 기준 성적을 취득한 전 교과목의 평점합계를 학기당 수강신청기준학점(受講申請基準學點)의 합계(66학점)로 나누어 산출한다고 하였다. 다만 67학점 이상 수강 이수한 경우에는 취득한 전교과목의 평점합계(評點合計)를 수강신청학점 합계로 나누어 계산하도록 되어 있었다. 즉 2학년 말에 졸업정원의 20%를 탈락시키고 나머지 10%는 4학년을 마치면 수료증을 주도록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3학년 진급 시 일률적으로 20%를 탈락시키는 것은 상당히 진통이 예상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진통을 완화시킬 필요에 따라 학사징계제도(學事懲戒制度)가 대폭 강화되었다. 즉 강제탈락(强制脫落)과 함께 자연탈락(自然脫落)을 병행하려는 것이었다. 학사감원규정 제정과 함께 학칙개정을 통해 학사징계가 강화되기도 하였다.
전에 비하면 학사징계의 기준평점 평균이 상향조정되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학사제명 대상자의 경우에는 한 번이라도 학사징계를 받은 일이 있는 학생은 다음 학기 또는 지속적으로 2,0을 훨씬 상회하는 성적을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또한 학사감원 · 학사징계 강화와 함께 1982년 2학기부터는 전공과정에서도 상대평가제(相對評價制)가 실시되었다. 실시 목적은 전략과목(戰略科目)이라 하여 학점을 잘 주는 일부 과목에 편중된 수강신청을 하는 폐단을 없애고 공부하는 분위기의 조성을 위해서였다.
상대평가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원칙은 세워져 있었지만 그 시행이 강제되지는 않고 있다가 계열별 모집이 실시된 이후 과 배정 기준에 입학 후의 학업성적이 포함되면서 75년부터 기초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강제성을 띠고 실시해 왔다.
'서울대학교 학업성적 처리규정'에는 기초과정(基礎課程)의 성적분포 기준을 A:20%, B:30%, C:40%, D이하 10%로 정하고 있었고, 전공과정(專攻課程)도 이에 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전공과정에서는 지켜지지 않았고 전공과정의 성적 평가는 교수의 재량권을 많이 허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전공과정에 대해서도 강제성을 띠고 기존규정을 확인 실시하게 된 것이다. 다만 D이하를 C에 포함시켜 C이하 50%로 조정한 내용의 '성적처리 지침'을 시행하였다.
결국 졸업정원제는 학사감원 규정, 학사징계 강화, 상대평가 실시 등으로 구체화 되었는데 그 특징은 정원과 성적, 그리고 인위적 등급화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르기 시작하였는데, 첫 번째 학사감원을 하자마자 이들이 표면화되었다. 81년 입학자가 3학년이 되는 83년에 법대 2, 의예과 2, 미대 3, 음대 6 총 13명이 학사감원규정에 따라 강제 탈락되었다. 법대생 2명의 경우 평점평균이 2.5를 넘고 있어서 여러 가지 파문이 생기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