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졸업정원제 시행 당시부터 강제탈락생 구제책의 하나로 '전학(轉學)ㆍ전과(轉科) 규정'에서는 전학 또는 전과 시행시기를 학년 말, 허용범위는 전학과에 대해 매 학년 말 학과별 기준졸업정원(基準卒業定員)의 결원이 있을 경우 허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전연 현실성이 없었다. 실제로 탈락당한 학생들의 경우 81년 입학당시의 미달사태로 인하여 본인들이 원한다면 전과나 전학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에서는 계열별 모집이 실시된 이후 학과배정과 관련하여 규정제정 당시에도 계열별 모집이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상층되는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81년도 입학자의 경우에는 극심한 미달사태로 강제탈락생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82년 입학자의 학사감원시기인 84년 2월에는 탈락자가 대량으로 발생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학생들의 집회에서는 언제나 빠짐없이 졸업정원제 철폐가 요구되었고 강제탈락(强制脫落)이 가장 큰 이슈로 등장했다. 교수들마저도 졸업정원제 개선을 건의하는 상황이 되었으나, 나는 졸업정원제 토론금지라는 학교방침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난처한 입장이었다. 명백한 모순을 지닌 졸업정원제는 곧 전체 사회문제로 등장하였고, 학내외의 여론은 폐지 또는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침내 문교부 졸업정원제에 따른 학사감원은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탈락률(脫落率)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정도의 융통성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입학정원의 증가와 졸업정원제의 실시는 교육여건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강의실 및 실험실습실의 부족, 대단위 수업으로 인한 교육의 질적 저하, 교수 인력(敎授 人力)의 부족, 연구기능의 약화 등이 그것이었다. 이들 문제들은 '7 · 30 조치'당시에 이미 예상되었던 것인데 나에게는 현실적으로 가장 절박한 과제로 나타난 것이다.
먼저 강의실 부족과 관련하여 서울대는 두 가지 조치를 취하였다. 하나는 81년 1학기부터 실시한 전일제(全日制) 수업이다. 이것 역시 '7ㆍ30 조치'에서 그 내용이 발표되어 있었는데 서울대에서는 1학기부터 기초과정(基礎課程)은 9교시까지, 전공과정(專攻課程)은 11교시까지 강의를 하도록 수업시간을 편성하였다. 기존 시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증원 인원을 수용하려는 의도에서 취해진 조치였다.
다른 하나는 종전에 등록과 함께 실시하던 수강 신청을 83년 1학기부터는 시기를 앞당겨 먼저 학기 중에 실시하도록 하였다. 수강신청을 미리 받아 수강인원에 따라 강의실 배정을 함으로써 그간 수강인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강의실을 배정한데서 나타났던 강의실 혼잡을 덜어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을 나누어 적정규모의 수강인원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변화는 81년부터 수강신청에 OMR카드를 사용하여 컴퓨터에 의한 전산처리체계(電算處理體系)를 마련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었다.
이와 같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였지만 교수진의 부족은 점점 그 심각성을 더해갔다. 80년도까지 교수진은 꾸준히 확충되어 왔으나 81년 이후에는 교수의 증가가 학생의 증가에 미치지 못하였다. 나는 교수진 증가에 가능한 모든 힘을 다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7ㆍ30 조치'는 앞에서 적은 것 외에도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대학입시제도(大學入試制度)에 예비고사(豫備考査)와 고교 내신(高校 內申)성적을 반영하는 제도로 바뀌었으며, 대학별 본고사는 폐지되었다. 또한 선지원 후시험 방식이 선시험 후지원 방식으로 전환되는 바람에 극심한 눈치작전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 제도는 예측했던 것보다도 수준을 더욱 명백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82년도에는 예비고사가 학력고사로 그 명칭이 바뀌었는데, 예비고사(豫備考査)이건 학력고사(學力考査)이건 상위 성적의 학생은 거의 예외 없이 서울대학교로 몰리는 바람에 우수학생들의 지나친 편재가 걱정되기도 하였다.
나는 국회 문공위(文公委)에 출석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그 중 입시제도에 관하여는 서울대학교의 경우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답변한 일이 생각난다. 어떤 제도이건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학교별로 격차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일이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은 못된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신입생에 대하여는 '오리엔테이션'행사가 있었다. 장충체육관 등 다수를 수용할 수 있는 곳에서 열렸는데 학생 수 때문에 1ㆍ2차로 나누어서 거행하기도 하였다. 총장을 비롯한 여러 보직(補職)교수의 이야기가 있었고 특정 교수의 기조연설도 있었다. 이와 같은 모임이 어느 정도로 실효를 거둘 수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신입생들의 명랑하고 건강한 표정만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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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 총장을 모시고 / 앞줄 왼쪽부터 권중휘, 최규남, 윤일선, 신태환 선배 총장. 뒷줄 왼쪽부터 나, 고병익, 윤천주 선배 총장, 이현재 부총장(1981. 7.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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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에는 각지를 순방하면서 학부모 간담회(學父母 懇談會)를 가졌다 대체로 국립대학교의 강당을 빌려서 시행하였다. 생각과는 달리 모든 대학에서 기꺼이 협조해 주었던 관계로 장소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이 제도는 내가 창안한 것이 아니고 전부터 내려오던 하나의 관행이었는데 얼마간 중단된 일도 있었다. 71년 여름방학 중 학부모 간담회에 참석차 대전(大田)에 머무르고 계시던 최문환(崔文煥) 총장이 쓰러진 일은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나는 교무처장, 학생회장, 사무국장을 대동했으며 단과대학장과 교수들의 연고를 고려해서 참석토록 하였다. 부총장과 교대로 이 모임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다수의 학부모들이 모이곤 하였다. 서울대학교 학생을 자녀로 가졌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느껴졌다. 학사 전반에 관한 설명이 있은 후 질의응답시간을 갖는 것이 상례였다. 대체로 장학금 문제, 기숙사 문제가 주된 내용이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학생지도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 자녀를 맡겨놨는데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학생데모를 왜 막지 못하느냐고 다그치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꾸짖기도 했다.
학부모 간담회가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견이나 느낌을 알 수 있고 학교에 대한 요망사항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학부모에 따라서는 졸업정원제에 대하여 상당히 걱정하기도 하였다. 탈락생 중에 자기 자녀가 끼게 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쨌든 탈락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총장 재임 시에는 탈락자가 아직 생기지 않았지만 결국 졸업정원제(卒業定員制)는 입학정원제(入學定員制)로 전환되고 중도탈락자도 학사자격고사(學士資格考査)를 통해 모두 구제되었다.
한편, 과외금지문제도 서울대 학생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과외지도를 통해 학비를 조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외금지조치가 취해지자 대학에서는 직업보도문제가 중요한 업무로 등장했다. 학비조달을 할 수 있도록 취업을 알선해 주어야 하는데 결코 간단하지가 않았다. 여기저기에 청탁편지를 보내고 찾아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과외금지문제에 관하여는 그 후에도 중요한 관심사였기에 참고가 될까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겨 둔다.
과외금지(課外禁止)에 대하여는 많은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정부에서는 강력한 공권력(公權力)을 통해 형사처벌, 세무조사, 공직추방, 퇴학 등의 방법으로 이 조치를 지속하였다. 80년부터 87년 말까지 과외금지조치로 적발된 숫자는 과외교습자 형사입건 2백 63명, 과외교습자 및 학부모 면직 1백 49명, 과외교습자 및 과외학생 정학 6백 43명, 세무조사 4백 7명 등 2천 4백 74명이 되었다.
6공화국 출범 후 교육의 민주화 · 자율화가 추진되면서 과외금지정책의 타당성 여부에 관한 논쟁이 다시 가열되었으며, 단속이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었던 일은 주지되어 있는 바와 같다. 문교부는 과외를 전면 금지한지 9년만인 90년 2월 2일에 대학생과외를 풀어주고 방학 중 재학생들의 학원수강도 허용해 주었다. 과외부활조치가 학부모의 부담증가, 사회적 위화감 조성, 학교교육 정상화의 손상 등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인데 이에 대한 대책이 쉽게 마련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우리들은 잘 경험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