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는 이렇다 할 심벌이 없다. 서울대가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보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느낌도 준다. 그러나 점차 역사(歷史)가 쌓여지고 전통(傳統)이 자리를 잡게 되니 심벌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연립(聯立) 대학형식에서 종합(綜合) 대학형식으로 바뀌어가는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심벌’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현재 서울대학교의 명물이라면 관악(冠岳) 캠퍼스의 철제 대문(鐵製 大門)과 서울대학병원의 시계탑(時計塔) 정도이다. 철제 교문이 설치되기까지에는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 많은 응모작품을 놓고 학장회의에서 의견교환을 하던 일이 생각난다.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리하여 몇몇 교수들에게 전권을 맡겨서 새로 구상한 것이 현재의 교문이다. 78년에 세워진 이 교문은 국립 서울대학교를 뜻하는 교표를 따서 설계된 것이다.
병원의 시계탑(時計塔)은 대단한 뜻을 지니고 있다. 대한제국(大韓帝國)시절의 작품이며 문화재(文化財)로 지정되어 있다. 의학(醫學)의 요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계탑 건물은 오랫동안 원장실, 행정실, 교수실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1천 베드 병원이 건축됨에 따라 의학박물관, 병원연구소 등이 자리하게 되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이 시계탑(時計塔)은 어느 모로 보거나 우리나라 의학(醫學)의 상징이며, 우아한 모습 앞에서는 자연히 머리가 숙여진다. 87년 10월 26일에는 앞뜰에서 지석영(池錫永) 선생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시계탑(時計塔)과 동상(銅像)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는 서울대학교도 ‘심벌’이 필요하다고 가끔 느꼈다. 명문기관이나 조직 중에는 반드시 나름대로의 ‘심벌’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명문대학에서야 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생각이었다.
고려대(高麗大)의 ‘호랑이’나 연세대(延世大)의 ‘독수리’는 잘 알려져 있는 대학의 심벌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풍(校風)도 이들 상징물(象徵物)을 따라가는 느낌을 준다. 그 만큼 상징물은 대학생들에게 대단한 자극과 영향을 준다고 하겠다.
서울대는 이러한 상징물, 즉 교수(校獸)나 교조(校鳥), 그리고 교수(校樹)나 교목(校木)을 선정하려는 노력을 계속했었다. 교수(敎授)와 학생(學生)들로부터 의견들이 속출했는데 결론을 얻기는 힘들었다. 특히 교수(校獸)의 경우는 그러했다. 곰, 황소, 불사조(不死鳥), 사자, 해타(海駝) 등 많은 동물이 등장했다. 심한 예로는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으니, 미꾸라지로 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농조(弄調)의 의견도 있어서 대소(大笑)하던 일이 생각난다. 제시된 동물의 대부분은 이미 타 대학에서 심벌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일을 추진하는 동안 국내외 대학의 ‘심벌’에 관하여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가 창학이념(創學理念)이나 권학경교(勸學敬敎)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좀처럼 의견의 일치가 보이지 않아 나는 학(鶴)을 제안했다 학(鶴)의 우아한 자태(姿態)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이며, 그의 울음소리가 10리 밖에서도 들린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과연 새 중의 새라고 할 수 있으며 예로부터 평화(平和)와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상징으로 꼽혀 왔다. 학의 일성(一聲)이나 학천년(鶴千年)이란 표현이 이 점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학(鶴)이 우리 전통예술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식자(識者)들은 주지(周知)하고 있다. 십장생도(十長生圖)에서 학(鶴)이 춤의 명수로 소개되고 있으며 예식장(禮式場)의 장식이나 병풍 등에서도 이런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한마디로 학(鶴)은 우리에게 친밀감을 주면서도 고고한 자세로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학(鶴)을 교조(校鳥)로 선정한 나는 높은 탑 위에 학(鶴)의 조형물을 만들어 본부건물(本部建物) 앞뜰에 세울 생각이었으나 재정상 문제로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이렇게 되고 보니 교조(校鳥)에 대한 인식은 점점 쇠퇴하였고 교조(校鳥)가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느티나무를 교수(校樹)로 하는 데는 별로 이견(異見)이 노출되지 않았다.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은 왜 그런지 든든하고 힘찬 느낌과 아울러 안정감(安定感)을 준다. 산기슭이나 골짜기에서도 자라지만 흙이 깊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키 26m, 지름 3m 쯤의 큰 나무인데 그 밑에 의자를 만들어놓고 동네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모든 것을 감싸주고 무게가 있는 느티나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느티나무를 교수(校樹)로 정하고 본부(本部) 앞뜰 북쪽에 한 그루를 심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잘 자라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흙이 깊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