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으로 취임한지 며칠 후 대통령(大統領)에게 업무보고를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어서 어리둥절하기도 하였지만 그런대로 잘 넘겼다고 회상된다.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으로부터 여러 가지 말씀을 들었다. 문교부(文敎部)가 해야 할 일에 관하여 폭넓은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업무보고를 마치고 장관실로 돌아와서 얼마 안 되었는데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업무보고 때에 이야기하려고 했었는데 깜빡 잊었다는 말씀이다. 내용은 문교부 예산이 막대한 까닭에 그 처리를 잘해야 되겠으니 기획관리실장(企劃管理室長)을 예산(豫算)을 잘 아는 경제기획원(經濟企劃院) 출신으로 교체하라는 것이었다. 부총리(副總理)와 상의하여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분부도 있었다.
청천벽력과 같은 지시였는데 인사문제인 까닭에 함부로 입을 벌릴 수도 없었다.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고 우선 문교부예산(文敎部豫算)에 관하여 현황을 알아보았다. 예산분야는 기획관리실(企劃管理室)의 예산담당관(豫算擔當官)과 보통교육국(普通敎育局)의 재정(財政)과장이 맡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상당한 실력의 보유자이고 나무랄 데가 없는 인사(人士)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문교부(文敎部)의 예산은 국방부예산(國防部豫算) 다음으로 컸으며 국가예산(國家豫算)의 20%를 상회(上廻)하고 있었다.
다음날 부총리(副總理) 겸 경제기획원장관(經濟企劃院長官)인 신병현(申秉賢) 선생을 찾아갔다. 대통령의 지시내용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더니 잘 알고 있다고 하신다. 신부총리(申副總理)와 나는 같은 날 입각(入閣)했는데 이 사정을 잘 안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이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다고 하고 귀청하였다.
장관실(長官室)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 예상(豫想) 밖의 지시에 관하여 어떻게 답신해야 좋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장관으로서는 아주 난처한 지시사항이었지만 우물쭈물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약 10일 후에 업무보고 차 청와대로 갔다. 보고 끝머리에 기획관리실장 건(企劃管理室長 件)에 관하여 말씀 올렸다. 첫째로는 문교부에는 유능한 예산 담당자가 있어서 예산을 관리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는 점, 둘째로는 기획관리실장(企劃管理室長)이라는 자리가 직업공무원으로서는 천신만고 끝에 얻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 자리를 타 분야 인사에게 넘길 경우 부작용이 대단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서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하였다. 담당자들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예산 전문기관에서 파견하여 연수를 받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과 장관으로 취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기획관리실장(企劃管理室長)을 타 부처(他 部處) 인사(人士)로 메꾸게 되면 장관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도 아울러 설명을 올렸다.
대통령께서는 경청하신 후 일리가 있다고 하신다. 어찌하여 이러한 의견이 제시되었는지 모를 일이라고 독백하신다. 어쨌든 이 문제는 깨끗하게 종결되었다. 당시 기획관리실장(企劃管理室長)은 손성식 씨(孫聖植 氏)였는데 이분을 만날 때마다 하마터면 이상하게 될 뻔했었다고 고소(苦笑)를 하기도 한다.
83년 10월 29일 그러니까 장관으로 취임한지 2주일째 되는 날 일어난 일이다. 아직도 서울대 총장 공관에서 이사를 하지 않고 공관에서 문교부에 출근하던 때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문병 차 서울대학교 병원(病院)을 방문 중이었다. 입원실에 가 있었는데 급하다고 하여 받아보니 총장 공관 수위의 전화였다. 청와대의 정무수석(政務首席)으로부터 전화가 있어서 문병차 병원에 갔다고 하였더니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문병을 마치고 곧 공관으로 돌아갔다.
30분 정도 지난 후에 정순덕(鄭順德) 정무수석(政務首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동아일보 석간(夕刊)을 읽었느냐고 한다. 아직 안 읽었다고 하였더니 읽어보라고 하며 장관에 취임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조언하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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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교부장관 임명장을 받고 있다 (1983. 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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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면에 ‘학기제(學期制) 변동(變動)없다’는 것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는데 대통령께서 이 기사를 읽으시고 장관이 바뀌었다고 해서 계획된 정책도 바뀌느냐고 하시며 심기가 좋지 않으시니 빨리 조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 대통령께서 손제석(孫製錫) 교무수석(敎務首席)을 찾으셨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자기가 대신 뵙게 되었다는 것, 오늘 관계국장을 불러서 설명을 듣고 다음날, 즉 일요일 날 관계공무원들로 하여금 대책안을 작성하여 그날 저녁으로 손 수석(孫 首席)에게 대책안을 전하고 설명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 월요일 아침 청와대 수석비서관(首席秘書官) 회의(會議)에서 이 건(件)이 제안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 등이었다.
정 수석(鄭 首席)은 대단히 친절하였으며 나는 그의 말대로 우선 오덕열(吳德烈) 대학국장(大學局長)과 최병완(崔炳玩) 총무과장(總務課長)에 연락하여 곧 공관으로 오도록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10월 29일자 동아일보 1면에는 ‘대학(大學) 학기조정(學期調整) 내년(來年) 시행(施行) 보류(保留)’라는 제하(題下)의 기사가 큼지막하게 머리기사로 실려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교부는 84학년도부터 실시키로 확정 발표했던 여름학기 신설을 포함한 대학 학기 조정방안의 실시를 보류할 방침이다. 문교부의 이 같은 방침은 개편된 학기 조종안에 대해 대학 측에서 현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여론이 일고 있으며 조정된 학기제를 실시하기에 앞서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법 및 교육법 시행령의 개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문교부 당국자는 29일 대학 학기 조정방안을 84학년도부터 실시하기로 결정했던 당초 방침을 보류하고 그 실시 시기를 일단 85년도 이후로 미루어 그때 가서 전면 실시하거나, 주요대학을 대상으로 실험 운영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하거나, 당초 계획을 백지화할 것인지를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교부는 지난 4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건의한 학기운영 조종안을 검토한 끝에 6월 4일 이를 84학년도부터 실시하기로 확정 발표했었다.
문교부는 또 지는 6월 10일자로 각 대학에 보낸 공문에서 대학 학기 조정시행방안이 확정되었으므로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자체적인 계획수립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었다.
그러나 그 후 학기조정안(學期調整案)의 실시 여부가 불분명해지자 각 대학은 졸업정원제 보완에 따른 학칙개정작업을 하면서 내년도 1학기 개시일을 종전처럼 3월 1일로 정할 것인지 또는 학기조정안의 내용대로 열흘가량 앞당겨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등 큰 혼선이 빚어졌다.
지는 26일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대학총학장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돼 총학장들은 이에 대한 문교부의 명확한 지침을 밝혀줄 것을 촉구했으나 문교부 측은 뚜렷한 방침을 시달하지 않고 넘어갔다. 학기조정과 관련한 각 대학의 움직임을 보면 일부대학은 내년부터 시행할 것을 전제로 학칙개정, 학사일정의 조정, 각종 간행물의 내용을 고치는 등의 진행을 하고 있으며 학기 조정안 보류설이 나돌자 학칙개정과 각종 간행물의 제작을 미루고 있는 대학도 있어 혼선을 빚고 있다.
지난 6월 문교부가 확정발표한 대학학기 조정방안은 84학년도부터 1학기는 2월 20일에 개강 월 중순까지, 2학기는 9월 첫 주부터 12월 셋째 주까지 각각 16주간으로 편성, 여름방학을 현행 6주에서 12주로, 겨울방학은 10주에서 8주로 조정해 기간이 늘어난 여름방학 동안에는 여름학기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이상과 같은 보도는 상당한 근거에 입각한 것이지만 내 자신은 장관 취임 후 신문 기자는 물론 누구와도 상의하거나 발설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적이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