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업정원제의 맹점은 우선 그 획일성(劃一性)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대학들로 하여금 일률적으로 졸업정원의 30%를 더 뽑게 했다가 학생들의 수준이나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초과 모집 분을 졸업 전에 떨구어 내도록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개선책을 제시, 학년별 탈락비율 및 탈락방법을 대학 자율에 맡기고 유급제(留級制), 4학년 수료제(修了制) 등을 가미하긴 했으나 이 제도의 고민을 각 대학에 떠맡긴 결과일 뿐, 본질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반응들입니다. 여자대, 종합대학 내의 가정대 및 의학계 학과는 초과모집 비율을 자율화했지만, 이 조처는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 하여 또 다른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합니다.
“이 제도의 ‘획일성(劃一性)’은 계속해서 검토해야 할 과제입니다. 앞으로 개선 내용을 시행하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기다려 다시 보완점이 나타나면 손질을 해야 되겠지요, 획일성을 해소시킨다 하여 초과 모집 비율을 전면 자율화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번 이를 자율화시킨 대학들의 초과모집 비율 책정 결과를 볼 때 희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더군요. 이들 대학 및 학과는 강제탈락(强制脫落) 대상이 특히 많아 자율화시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많은 대학에서 30% 가깝게 책정하지 않았습니까. 우수한 학생이 강제 탈락 당하는 일은 없어야 되겠지요. 전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고 그 때문에 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켜 개선책이 나오게 됐지만, 앞으로는 탄력적인 제도운영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조기졸업제도(早期卒業制度)를 적극 활용토록 추진할 생각입니다. 우수 학생에게 조기졸업의 특혜를 부여, 전반적인 면학분위기를 촉진하고, 대학이 졸업정원제로 인해 안고 있는 고민, 즉 강제탈락 대상을 줄이는 측면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대학 4년 과정 이전에 1백 40학점 이상, 우수한 평점을 받아 이수한 학생은 조기졸업할 수 있고 이 조기졸업 분은 졸업정원 관리대상에서 제외시키도록 돼 있다. 따라서 조기졸업자가 많을수록 초과모집 분 가운데 중도탈락 대상자가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고 이를 악용하는 사례는 없어야 되겠습니다. 대학교육협의회(大學敎育協議會) 같은 자율 기구를 통해 대학평가작업을 강화, 대학끼리 서로 끌고 끌어 올리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일정수준에 오른 학생만이 조기졸업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려 합니다.”
- 지난 번 개선 때 문교부가 탈락 방법 및 비율을 대학자율에 맡기기로 했다고 발표한 지 며칠 후 졸업정원의 몇 % 이상은 4학년에 진급시킬 수 없다고 못박아 대학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었습니다. 어떤 인사는 이를 가리켜 조령모개(朝令暮改)식 문교행정의 표본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순은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졸업정원제를 거론하게 됩니다만, 이 제도 등장 이후 나타나고 있는 가장 큰 폐해는 탈락자에 대한 구제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잠시 한눈을 팔다가, 또는 적성(適性)이나 능력(能力)에 맞지 않아 적응을 못한 끝에 탈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창창한 앞길이 막혀버린대서야 교육적인 차원에서 곤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관성 ‧ 계속성을 유지하면서 기존 정책을 발전시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의 말썽이 어떻게 해서 빚어졌는지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그런 앞뒤가 맞지 않는 시책은 없을 것으로 믿어도 좋습니다. 탈락자문제를 생각하면 우울하고 답답하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모여 있다는 서울대만 해도 제 손으로 상당수의 학생을 학사징계에 의거, 제적시켰습니다(이 부분에서 권 장관은 ‘자꾸 서울대, 서울대 하는데 몸담고 있던 곳이어서 아는 곳이 그곳뿐이기 때문에 인용하는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재기(再起)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방송통신대학(放送通信大學), 개방대학(開放大學)에 들어가 대학과정을 밟을 수도 있고, 다시 입시를 거쳐 일반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습니다. 탈락학생들이 심기일전하여 새 인생을 개척하려 한다면 재수(再修)를 한다고 해서 막을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 서울대 총장시절에 주로 1, 2학년생들에게 엄격한 학사관리를 적용했습니다.”
- 요즘 대학인들이 흔히 토로하는 탄식은 ‘자율권이 없다’, ‘모든 것을 문교부가 간섭한다’는 하소연으로 집약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약간은 남아있던 대학의 자율권(自律權)마저 문교부가 모두 빼앗아 버리고 대학교수 및 학교운영자들은 ‘지시(指示)’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타율(他律) 풍토에 젖어 학교운영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 문교부에 떠넘기는 사례도 있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대학교육은 자율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타율풍토 속에서는 우선 오늘날 선진각국이 추구하는 이른바 ‘교육(敎育)의 수월성(秀越性)’은 기대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사실, 서울대 총장으로 있을 때 ‘이런 일은 문교부가 처리해 주었으면……’하고 기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개혁을 단행할 필요가 있을 경우, 학교 자체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도 많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졸업정원제 실시, 학원안정 도모 등을 위해 타율이 깊숙이 개입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단계가 지났다고 봅니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기본 전제(前提)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으로 자율권을 부여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중간과정 없이 한꺼번에 자율권을 넘겨주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의 요인이 되기 십상이고 현실적으로 난점도 많습니다. 대학교육협의회(大學敎育協議會)를 진정한 자율기구로 육성, 대학의 문제를 대학인 스스로가 해결하고 문교부는 그 뒷바라지를 하는 역할에 그치도록 힘쓸 참입니다. 그런데 ‘자율(自律)’에 관한한 분명히 해둘 점이 있습니다. 뭐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자율은 아닙니다. 학칙을 준수하고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자치능력(自治能力)을 보일 때 자율권은 확대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문교부도 좀 더 약아져야 합니다. 종래 대학이 전혀 자율권을 행사(行使)하지 못한 것은 아닌데, 문교부가 하지 않아도 좋을 사소한 문제에까지 간섭함으로써 모든 것을 거머쥐고 있는 것처럼 오해를 뒤집어 쓴 측면도 있거든요.”
- 우리 교육의 양적(量的)인 팽창속도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교육의 기회가 공평하게 부여되기는 해방 후 38년에 불과한 짧은 연륜이지만, 이제 각 급 학교의 교육인구는 선진국 수준까지 부풀었습니다. 학령으로 본 취학률(就學率)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1백%에 가깝고 고교는 88%, 대학은 30%에 이릅니다. 그러나 교육의 질적인 수준에서는 아직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교행정부터가 교육의 질 문제 보다는 제도나 시책에 얽매여 원시적인 차원에서 씨름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이제는 ‘질(質)’ 향상에도 눈을 돌릴 때가 아닙니까?
“양질(良質)의 교육은 우리 교육이 당명하고 있는 제 1의 과제일 것입니다. 양적인 팽창은 더 이상 추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문교부가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 교육을 질적인 측면에서 고찰할 때 취약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최근 조기(早期)교육 — 사회(社會)교육, 직업(職業)교육 등이 강조되고 있고 특히 조기교육의 신장세는 대단하나 아직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대학만 해도 미흡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비중(比重)과 실록(實祿)을 지닌 교수가 고학년을 담당하고 젊은 교수가 1학년을 맡는 게 상례로 되어 있는 것부터 문제라고 봅니다.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참교수가 갓 입학한 1년생을 상대로 강의함으로써 존경심과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에 젖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새로운 학문에 맞추어 교재(敎材)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시설을 갖추며, 교수를 비롯한 전체 교원의 부단한 자기연마(自己鍊磨)와 사회의 뒷받침, 학생들 스스로 공부에 전념하려는 마음가짐도 절실합니다. 이야기의 순서가 바뀌었지만 국민기초교육과정(國民基礎敎育課程)에 있어서는 초등학교부터 여건개선이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과밀수용(過密收容), 우수교원 확보의 어려움 등 때문에 충실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 ․ 고교 역시 마찬가지지요. 모두가 힘을 합쳐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양질(良質)의 교육을 위해 노력할 시점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 교육의 질(質)을 논하기에 앞서 국어교육(國語敎育)을 이야기할 때는 어문정책(語文政策)이 표류하고 있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표준말, 맞춤법, 외래어 표기법, 우리말의 로마나이즈 등 소위 어문관계 4개 분야가 하나도 통일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글 전용’, ‘국(國) ․ 한문(漢文) 혼용(混用)’ 시비는 또 어떻습니까. 한글 전용도 아니고 한자 병용을 허용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교육이 10여 년 간 지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매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충고하더군요. “어문정책에 관한한 절대로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는 언질을 던지지 말아라. 그랬다가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다”고……. 평소 어문관계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은데 의견은 정반대여서 종잡을 수가 없었지요. 내년에 학술원(學術院) 부설기관으로 국어연구소(國語硏究所)가 설립될 예정이므로 거기서 잘 연구해 통일된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우리의 역사교육(歷史敎育)도 차제에 개선할 점이 없는가 돌이켜봐야 할 것입니다. 내용구성(內容構成) 및 전개방법(展開方法)에 있어 민족의 수난, 사대주의(事大主義) 간신배의 농간, 당파싸움 등에 치우쳐 과거에는 주인의식 및 자부심 나아가 민족의식(民族意識)을 키워주지 못하고 패배주의에 사로잡히게 한 측면도 있습니다. 역사책을 들여다보노라면 울화가 치밀 정도지요. 긴 역사에 비해 그 내용이 자랑스럽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없는 사실도 만들어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2세들에게 심어주는 일본과는 대조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미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유신(維新)’ 시절부터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했고, 요즘은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지만, 작년의 일본교과서(日本敎科書) 파동(波動)을 계기로 우리 역사교과서도 개편하는 등 물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겠지요. 계속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도 역사교육에서 다룰 사항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민족은 너무 쉽게 망각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긴 안목을 통해 일에 대처해야 하는데 그때그때 일이 터지면 흥분했다가 얼마간 시일이 흐르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는 듯 잊어버리고 맙니다. KAL기(機) 사건만 해도 아직 두 달도 안됐는데 벌써 잊히고 있는 인상입니다."
- 최근의 학원사태는 양극화(兩極化)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공부에만 전념하는 학생들이 상당수에 이르는 반면, 한 번 낙인이 찍히면 앞길이 막히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체제저항(體制抵抗)을 택하는 학생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부는 체제저항에 관한한 초강경대책으로 일관해 왔고, 이 때문에 학원이 경직된 측면도 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대처할 방침인지요?
“대학은 학문의 도장이기 때문에 연구 분위기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대다수 학생이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데, 이를 방해하려는 일부 학생이 있다면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시켜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차원에서 대응할 생각입니다. 밖에 알려져 있는 것처럼 학원사태가 근심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안정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대다수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