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래에 이르러 해직교수(解職敎授) 및 처벌학생 구제문제가 자주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해빙(解氷)무드와 맥을 같이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5 · 17 이후 학원에서 떠난 교수 및 학생들 가운데 아직 공식적으로 구제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측면(側面)에서 볼 때, 한 번쯤 실수를 범할 수도 있는데, 영구적으로 사회의 그늘에 묻히게 하는 것은 교육적인 견지에서 재고되어야 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한쪽은 동료이고 다른 한쪽은 제자들입니다. 어떤 형식으로건 노력은 해보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해직교수의 문제를 얘기할 때 그만둔 학교로의 복직은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몇몇 분들은 이미 연구기관 등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요를 일으켰다가 제적(除籍)당한 학생들의 복학(復學)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 언질을 주기가 힘듭니다. 요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성향을 보면 과거의 주의 · 주장과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체제 부인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북한(北韓)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 같은 내용도 흔히 들어있습니다. 간단히 구제문제를 거론할 계제가 아닙니다."
- 화제를 입시제도(入試制度)로 돌려 보겠습니다. 해마다 입시철만 되면 현행 입시제도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합니다. 그뿐 아니라 입시제도는 각 급 학교의 교육풍토(敎育風土)를 좌우하고도 있습니다. 현행 대학 입시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첫째, 도박입시를 자초(自招)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이른바 ‘선시험(先試驗), 후지원(後志願)’ 방식으로 인해 수험생들에게 먼저 학력고사를 치르게 한 후, 취득점수를 알려주고 대학을 지원케 함으로써 도박판의 끗발싸움 같은 양상을 빚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테스트 방식이 객관식(客觀式) 일변도라는 점입니다. 주관능력(主觀能力)의 측정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고교교육 및 성적측정도 객관식 위주로 이루어져 ‘선다형(選多型) 시대(時代)’ 라는 유행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셋째, 대학의 선발기능이 배제된 점입니다. 자기가 가르칠 학생을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 선발하지 못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대학은 학문탐구(學問探求)가 본업이고 그 학문은 수없이 세분화되어 있으므로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인재의 선정은 꼭 필요한 조건일 것입니다.
“입시제도로 고통 받는 국가는 우리나라뿐이 아닙니다. 막힌 사회인 공산권 국가들까지 이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람직한 입시제도를 택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현 입시제도가 ‘선시험(先試驗), 후지원(後志願)’ 방식을 채택함으로 인해 눈치싸움을 유발시키고 요행수를 바라게 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달렸다고 봅니다. 어차피 완전한 제도는 바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돌이켜 볼 때, 역시 그때에도 눈치는 치열했습니다. 전반적인 폐단은 그 때가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 낫다는 확신이 설 때 비로소 바꾸어야 혼란과 폐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새 입시제도를 채택한 이후의 입시 양상을 보면 해마다 안정 바탕이 마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년 입시를 치르고 나면 보다 정착된 제도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현행 ‘선 시험, 후 지원’ 방식을 그대로 밀고 나갈 계획입니다. 그러나 내년 입시(入試)를 치르고 난 후 꼭 보완해야 할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에 인색하지는 않겠습니다. 측정방식(測定方式)의 개선은 필요하지만 어려운 문제입니다. 현 제도는 국가관리(國家管理)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70만 명에 가까운 수험생들을 상대로 동시에 학력고사를 치르면서 주관식 테스트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속하는 일입니다. 대학의 선발기능이 배제된 점 역시 국가선발의 차원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특정 방식에 있어 보다 나은 방법을 찾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매년 출제(出題)팀을 구성, 그때그때 문제를 구성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출제 상설기구를 만들어 연중 출제하면서 문제은행식으로 전환하는 한편, 주관능력(主觀能力) 측정을 배려해 출제토록 하면 어떨까 검토해 보려 합니다.”
- 올해는 고교평준화시책(高校平準化施策)을 단행한 지 10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 시책은 고교입시과정에서의 과열상을 해소한 공로 이외에, 고교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렸다 해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한 학급에 혼성편성, 정도에 맞는 교육을 실시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또 모든 학교를 획일화(劃一化) 함으로써 학교 특색을 살릴 수 없게 만들었고 특히 전체고교의 절반, 서울 시내의 경우 70%에 이르는 사립학교의 설 땅을 앗아버렸다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사립대학의 설립 희망자는 많으나, 고교설립 희망자는 거의 없다는 점은 교육투자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생각할 때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때의 학교가 그리운 것이 사실입니다(권(權)장관은 경기(京畿)를 나왔다). 또 그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나 고교교육이 보편화되고 국민차원에서의 교육에 대한 기회균등문제를 고려해야 할 시점에서 이 제도가 등장한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부분적으로는 손해를 본 학교나 사람들이 많을지 몰라도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피해가 없었다고 봅니다. 또 그럭저럭 제도가 정착되어 있으므로 제도의 후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 제도의 근간은 고수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허점(虛點)은 보완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재교육(英才敎育)의 문제를 우선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나날이 첨예화하고 있는 국제화시대에 ‘범재교육(凡才敎育)’만을 실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평준화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도 이는 필요할 것입니다. 또 하나, 평준화 지역(平準化 地域)(서울을 비롯한 20개 도시)과 비평준화지역(非平準化地域)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문제도 고려되어야 할 요소입니다. 당장 일원화 시키는 것은 현실상 어렵지만, 울산(蔚山) 같은 신흥도시는 비평준화지역에 속해 있고 이보다 규모가 작은 도시가 평준화되어 있는 불합리는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재교육(英才敎育)이 필요한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최소한 길은 열어놓아야 하겠습니다. 그 일환으로 과학고교(科學高校)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영재교육 문제는 개념부터 정립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천재를 뽑아 특수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특정 분야에서 수월성(秀越性)을 지닌 학생을 교육시켜 전문인으로 양성하는 것이 영재교육입니다. 이원화되어 있는 문제는 그렇게 함으로써 도시지역과 농 ∙ 어촌지역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평준화지역(平準化地域)의 불균형문제는 현저하게 불합리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될 때는 언제든지 시정할 생각입니다."
- 평준화 이후 사학(私學)이 겪고 있는 재정난은 흔히 하는 엄살이 아닌 심각한 형편에 이른 것 같습니다. 설립된 지 오래된 중 ∙ 고교는 고호봉(高號俸)교사들의 인건비 부담 때문에 시설투자를 거의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낡은 교실, 책걸상 등을 보수하지 못해 교육시설로서 낙제점인 경우가 상당수에 이릅니다. 이 점 문교부가 신경을 써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까지 사학(私學)에 대해서는 고호봉교사가 많은 학교의 인건비 부족분(不足分) 만을 정부가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시설비 지원도 추진할 생각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교육을 대신 맡고 있는 것이 사학인데 의붓자식 취급해서야 되겠습니까. 사학운영자들은 사립학교법(私立學校法)의 개정도 열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는 사학쇄신시책의 줄거리를 법제화한 내용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어 한마디로 곤란한 일입니다. 3년 전에 그 시책을 단행할 때는 그만한 필요와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지금이라고 여건이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이 기사는 당시의 나의 심경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많은 인터뷰가 취임한지 1주일 만에 이루어졌던 까닭에 새로운 경험보다는 평소에 지니고 있던 철학에 바탕을 둔 내용이었다. 사실상 나는 제도의 근본적 변혁에 대하여는 소극적이었다. 제적생(除籍生) 복교(復校)는 힘든 문제라고 하였고, 해직교수(解職敎授)의 복직문제는 구체안을 제시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학의 자율성(自律性)신장에는 앞장서겠다고 다짐하였다. 국회 개회 중에 취임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소신에 관하여는 국회에서의 답변을 통해서 나름대로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나 자신이 대학(大學)과 함께 생활해오던 처지여서 대학(大學)의 사정이나 위상에 관하여는 비교적 지식이 있었으나, 보통교육 즉 초(初) ∙ 중학(中學)교육이나 유아교육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가능한 빨리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도 허다하게 있었다.
대학교육정책상 중요한 과제로는 대학자율화(大學自律化) 문제, 졸업정원제(卒業定員制), 대학입시제도(大學入試制度), 해직(解職)교수문제, 제적(除籍)학생문제 등 많은 과제가 있었고 보통교육 분야에서는 교원(敎員)의 처우개선(處遇改善), 의무교육기간(義務敎育其間)의 연장문제, 교복착용(校服着用)의 자율화(自律化)문제, 콩나물교실문제, 영재교육(英才敎育)제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과제들이 놓여 있었다. 어느 것 한 가지도 손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고 아마도 역시 계속 되는 이러한 과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줄로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