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豫算案)은 대체로 잘 수용되었는데 물론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다. 교원(敎員)의 처우개선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이 문제는 언제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는데 교원(敎員)의 수(數)가 방대하고 보니 막대한 예산이 요구되게 마련이다. 우선 교직수당을 매년 1만 5천원씩 인상해서 1986년까지 10만 5천원으로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6만원이던 교직수당을 7만 5천 원으로 인상하기 위해서는 연간 1천 1백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더욱이 83년부터 85년에 걸쳐서 초∙중등교원 간의 호봉격차를 해소하는 과제가 진행중에 있었는데 이 목적만으로도 375억 원이 소요되었다.
더욱이 교원(敎員)의 장기근속수당(長期勤續手當)문제에 직면하자, 보다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른 직종의 공무원에게는 장기근속수당이 지급되는데 교원은 제외되었었다. 교원에게는 교직수당 등이 지급되고 있으니 장기근속수당은 뒤로 미룬다는 것이다. 설득을 거듭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언쟁을 하면서 노력한 결과 타 직종에 비해서 50%의 장기근속수당을 지급한다는 결론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제는 그 후 잘 풀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은 84년 12월에 상정된 95년도 문교부(文敎部) 예산안(豫算案) 제안 설명에서도 되풀이되었다. 다만, 재외국민교육(在外國民敎育)에 관한 항목을 추가하였는데 이것은 84년 8월 6일부터 20일까지 대만(台灣), 일본(日本), 미국(美國)을 방문하고 현지에서 여러 가지로 느낀 바 있어 교육정책상 반영시켜 보자고 하는데 그 뜻이 있었다.
문교부(文敎部)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아쉬웠던 것 중의 하나가 의무교육기간(義務敎育其間)의 연장문제였다. 중학교 교육까지를 의무교육으로 하자는 데에 반대하는 인사는 없었으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것과 초등학교 졸업생의 대부분이 중학교로 진학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 과제는 쉽사리 풀릴 수 없었다. 정부의 재정상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 정책을 보류시킨다면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관계 인사들과 수없이 많은 토론도 하였고 도움도 요청하였다. 결국 85년과 86년에는 도서 벽지에서 단계적으로 확대 실시한다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국회에서는 절름발이 의무교육이 아니냐고 호된 힐난을 받기도 했지만 관계법(關係法)의 개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건설(國史編纂委員會 建設) 국사관(國史館)의 신축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국사관의 성격과 더불어 신축위치도 문제였다. 국사관 신축에 있어서는 이종찬(李鍾贊) 의원(당시 민정당(民正黨) 원내총무(院內總務))의 발상(發想)과 열성(熱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작고한 이종현(李宗鉉) 박사 후임으로 당시 건국대(建國大) 교수이던 박영석(朴永錫) 박사를 임명하였는데 이분의 활동은 대단하였으며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를 부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학술원회관 건립(學術院會館 建立) 문제도 나에게는 흐뭇한 추억거리가 된다. 30여 년간 셋방살이를 해오던 학술원(學術院)이 오고 갈 데가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경복궁(景福宮) 내에 위치한 구 박물관(舊 博物館) 건물에서 일을 보고 있었는데 빨리 비워달라는 독촉이 시작된 것이다. 공화당(共和黨) 시절에 김종필(金鍾泌)씨의 특별한 배려로 이 건물사용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교수 출신인데다가 학술원(學術院) 회원이었던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회관 건물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문교부에서 올린 건축 예산안이 경제기획원(經濟企劃院)에서 삭제되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끝에 당시 부총리(副總理) 겸 경제기획원(經濟企劃院)장관이시던 신병현(申秉鉉) 선생을 찾아갔다. 학술원의 위상과 중요성에 관하여 설명을 드렸다. 배석한 관계국장은 불요불급(不要不急)한 건(件)이라고 하며 동의해 주지 않는다. 신 부총리(申 副總理)께서 결국 단안을 내려주셨다. 지금도 신(申)부총리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난관을 겪어야 했다. 국회문공위(國會文公委)에 회부되니 많은 의원이 반대하였다. 학술원에 대한 인식이 예상 외로 빈약한 데에 나도 놀랐다. 반대하는 의원 한분 한분과 설득 ∙ 진정 ∙ 사정 등을 통해 겨우 동의를 얻어냈다. 의원 중에는 학술원에 대하여 곡해(曲解)하고 있는 분도 있었다.
국립중앙도서관(國立中央圖書館) 건축은 전임 장관 때 결정된 사업인데 역시 간단치 않았다. 우선 건축 단가가 저렴했는데 착공한 후에 적당한 단가로 올린다는 계획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 사업에 있어서는 초대 관장이었던 권숙정(權肅正)씨의 노고가 많았다. 국사관(國史舘)이나 학술원 회관(學術院 會館)의 건축은 바탕만 마련해 놓았고 임기 중에 착공을 못하였는데 도서관은 진의종(陳懿鍾) 총리를 모시고 84년 3월 19일에 기공식을 올렸다.
|
|
| ▲ 국립중앙도서관도 필자가 문교장관 재임 중에 지었다 |
|
대학문제로 많은 시간을 뺏기기는 하였으면서도 보통교육(普通敎育)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강조했다. 실제로 나는 국민의 기초교육 이상으로 중요한 과제는 없다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었다. 문교시책 상 가능한 한 보통교육의 발전이 반영되도록 노력하였다.
유치원이나 중∙고등학교, 실업학교 등을 즐겨 방문했으며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84년 3월 6일에는 여주(驪州) 자영농고(自營農高)입학식에 참석하였더니 매스컴에서는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고교입학식에 참석하였다고 보도하였다.
특수교육(特殊敎育)에 대하여도 대단한 관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나 별로 실적을 남기지는 못하였다. 특수교육에 관해서는 국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루어졌다. 장차 교육계에서 이 분야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지만 당시의 사정으로는 교육인력과 재정이 문제였다.
재임 중에 이론상으로 확실한 대답을 구하기 힘들었던 정책 중의 하나가 영재교육정책(英才敎育政策)이었다. 중등교육에 있어서는 평준화정책이 실시 중에 있었던 관계로 이 정책과 영재교육정책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관련시키느냐에 대하여 상당히 고민했다. 문교부직원은 물론이고 교육개발원의 연구 인사에게도 문의했지만 만족할 만한 이론이 나오지 않았다.
문교부 공무원과 교육개발연구원, 경기과학고등학교장 등을 미국으로 보내서 영재교육 분야를 살피도록 하였지만 내가 바라는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영재교육제도가 문교부의 법규만으로는 뒷받침하기 힘든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대학제도에 있어서 그러하였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과학기술대학의 탄생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 대학은 과기처 산하에 설치되었다.
갑자년(甲子年)은 나에게는 다망한 한해였다. 대학 문제로 많은 시간을 뺏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선 교육현장을 찾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선학교 시찰은 줄잡아 1백여 교였는데 도서∙벽지 학교도 많이 방문했다. 회의 참석이 2백17차례, 행사 참석이 83차례, 간담회에는 2백96차례 참석했다. 접견인사는 국내 인사가 7백58명, 국외인사가 83명으로 8백39명이었다.
다음해에도 연초부터 대학순례를 비롯한 바쁜 일정이 계속되었다. 한 가지 두드러진 현상은 민정당(民正黨)이나 경제기획원(經濟企劃院)에서 많은 교육정책이 발표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문교부에서는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예컨대 민정당(民正黨)에서 학제(學制)개편, 초등학교 취학연령 인하, 학력고사 과목 축소 등의 정책이 나오는가 하면 경제기획원(經濟企劃院)에서는 사립학교 공납금 자율화, 고교평준화시책 보완 등 주요 교육현안에 대한 정책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선거를 앞두고 정책을 남발한다는 평도 들었고 문교부 내에서는 우리나라에 문교부가 몇 개 있느냐고 불평하는 인사도 많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