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정책의 하나가 제적(除籍)대학생에 대한 대책이었다. 80년 5‧17 후 80년에 538명, 81년에 300명, 82년에 198명, 83년에 327명 등 1,363명이 제적된 바 있었다. 학원사태(學園事態)에 대처하는 정부의 방침은 다분히 기계적이었던 것이 사실인데 교육적 차원에서 대처하겠다는 뜻으로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제적학생 전원에게 복교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83년 12월 21일, 세종문화회관(世宗文化會館)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대학 총‧학장회의에서 나는 인사말을 통해 이 방침을 시달하였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실형을 받았어도 법절차가 끝나면 다음 학기부터 복교가 허용되도록 하고 계류 중에 있는 학생은 관계당국과 협의를 거쳐 조속하게 해결토록 조치하였다.
제적(除籍)학생 복교(復校)를 허용하며……
권(權)문교, 대학 (大學) 총‧학장회의 인사말 요지(要旨)
그동안 우리의 대학들은 시대적인 변천 과정을 보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우리 대학들은 대학이 짊어지고 있는 소임을 다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는 우리나라의 오늘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들이 오늘의 발전에 만족하여 발전적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산고(産苦)를 외면한다면, 앞으로 전개될 우리의 번영은 기약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대학들이 더욱 치열해질 국제적인 교육 경쟁에서 승리하자면 무엇보다 학원의 총역량을 대학교육의 질적인 수준 향상에 결집시켜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건이 전제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 첫째는 대학의 자율성(自律性)이 신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은 한 나라의 최고의 지성인들로 구성된 사회이다. 그러한 지성사회(知性社會)가 자율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고루한 인습과 안일에 젖어 창조적인 발전을 지향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금후의 문교정책은 각 대학이 자율역량(自律力量)을 충분히 발휘해갈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조성해 가는 데 역점을 둘 생각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졸업정원제(卒業定員制)와 대학입시제도 등 기존 정책을 효과적으로 발전시켜 가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은 대학의 자율적인 역량과 대학 간의 공동 노력을 통해 해결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학원의 안정화(安定化)가 이룩되어야 한다.
학원의 안정화 없이 우리의 대학들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극소수이긴 하나 일부 학생들 가운데 이데올로기의 편파적인 흡수 등으로 말미암아 급진주의적(急進主義的) 좌경사상(左傾思想)에 빠져 부질없는 폭력을 휘두르거나 자폭적인 시위선동을 함으로써 학원의 면학 분위기를 깨뜨리고 질서를 어지럽힌 경우가 있었다.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젊은 학생들에 있어서 현실을 비판하고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일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학이라는 사회 속에서 그 사회의 규율(規律)을 준수하고 질서(秩序)를 유지하는 가운데 정당하게 행사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준법정신(遵法精神)이 결여된 시위나 선동은 무법자의 행위이며 학내는 물론 사회의 질서마저 파괴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 가운데 소요가 되풀이되고 문제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을 분석해 볼 때,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학생들 자신에게 있다고 보겠으나, 한편으로는 우리 교육자들에게도 많은 책임이 있다는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우리 교수님들은 선진 외국의 경우와 같이 강의시간을 엄격히 지켜 수업제일주의(授業第一主義)로 더욱 밀도 높은 수업을 실시하고, 과제물 부과의 철저와 학습방법의 개선 등을 통하여 학생들이 촌각도 방심함이 없이 학업에 전념하여 불필요한 시간적 낭비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학생지도(學生指導)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역량을 발휘하여 문제학생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함은 물론, 이른바 학원사태(學園事態)를 일으켜 학우들의 면학(勉學)을 방해하고 학내질서와 법질서를 어지럽혀 온 의식화된 문제학생들을 관용만으로 지도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니,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앞으로는 교육자로서의 본분과 정성을 다하여 종래와 같이 문제학생을 획일적(劃一的)인 처벌방식으로 학원 밖으로 내보내거나 교육적인 지도권 외에 방치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하겠다.
다시 말하면, 최대의 이해(理解)와 인내(忍耐)로 예방과 선도에 주력하여 끈질기게 설득하고 순화에 힘써 제적이 되거나 사법적 처리를 받는 등 불행한 희생을 당하는 제자가 한 사람도 없도록 보호와 지도에 만전을 기해야 하겠다.
그것은 바로 교육자로서의 막중한 사명과 신성한 의무를 다하는 길이기도 하며, 정부에서도 그와 같은 노력을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경주해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학생문제와 관련하여 오늘 여러 총‧학장님들에게 특별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소위 제적학생(除籍學生)의 구제문제이다.
제5공화국 출범 이후에 학원사태와 관련하여 학원을 떠난 학생 가운데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개전의 정이 뚜렷한 사람에 대해서는 84학년도 1학기를 기하여 전원 복교(復校)를 허용키로 한 정부의 방침을 밝히는 바다. 이번 이 제적학생 구제조치는 그동안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정부의 국민화합적 포용 결단의 일환으로서 한때의 잘못으로 소외되었던 제적학생들에게 새 희망과 개과천선의 길을 열어주자는 데 그 목적과 참뜻이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고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결의 아래 학업에만 전념함으로써 올바른 인생을 개척하고 국가사회를 위해 헌신‧봉사하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는 자에 대해서는 여러 총‧학장님의 책임 아래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
이제 학원의 안정(安定)을 저해해야 할 구실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학생들의 면학 열기를 돋우기 위한 여러 가지 여건 조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과제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시점에서도 또 다시 학원의 안정을 파괴함으로써 악순환을 계속 책동하는 일이 있다면 이는 다시는 용서받을 수 없는 국가 사회에 대한 거역행위(拒逆行爲)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역사 앞에 크나 큰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만일에 냉소(冷笑)와 방관을 지식인의 표시인 양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는 조국과 역사 앞에 겸허하게 서서 자신들에게 지워진 사명을 다하는 데 솔선수범해야 되겠다.
그것은 누구의 권유에서가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나 오늘에 살고 있는 모든 국민들에게 내려진 지상명제(至上命題)인 동시에 민족사의 미래에 책임을 져야 할 지성인들의 마땅한 도정인 것이다.
이 조치는 구속(拘束), 제적(除籍) 대신 선도(善導)를 중심으로 한다는 데에 초점을 둔 것이며 학원사태에 대한 대책에 일대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즉 지금까지 소요 — 처벌 — 소요 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던 처벌 일변도의 학원대책이 부드럽고 교육적인 방향으로 전환된 것이다.
총‧학장의 책임 아래 모든 것을 처리해 줄 것을 강조했는데 대학이 자율적(自律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서만 학원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소신을 나는 언제나 피력해 왔었다.
이 조처는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캠퍼스의 봄이 왔다’느니, ‘한겨울 캠퍼스에 봄소식이 전해졌다’느니 하고 매스컴에서는 요란하게 보도했다. 복교조치(復校措置)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인사도 있을 정도로 이 조치는 사회 각계에서 환영을 받았다. 각 정당에서도 열렬하게 환영했으며 다시는 불행이 없어야 한다고 기대를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