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교부장관(文敎部長官)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모교인 서울의대(醫大)로 돌아가서 교수생활을 계속할 계획을 세웠다. 모교에서도 적극적이었고 이현재(李賢宰) 총장은 자기 일같이 앞장섰다. 그리고 4월에는 WHO가 마련한 동경(東京)회의에 참석할 것도 생각했었다. 이 회의(會議)는 문교부장관(文敎部長官) 재임 중에 교섭을 받은 것인데 당시로서는 사절할 수밖에 없었다. 보건분야의 첨단기술에 관한 회의라고 되어 있었지만 내용은 일차보건의료(一次保健醫療)가 중심이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상당한 호기심이 있는 회의였다.
2월 25일은 연세대(延世大) 졸업식 날이었다. 졸업식이 끝난 후에 연세대(延世大)로 안세희(安世熙) 총장을 방문하게 되어 있었고 그 후에는 서울의대 동기생 모임인 근인회(槿仁會)가 나의 퇴임을 위해서 마련한 만찬회에 참석할 예정으로 있었다. 시간을 봐서 문교부장관(文敎部長官) 재임 중에 수고한 몇몇 총장을 방문하고 사의(謝意)를 표하는 것이 일과였다. 25일에는 마침 나의 비서관이었던 성기선(成耆旋) 과장이 동행해 주었다. 성북동(城北洞)집에서 떠나려고 하는데 문교부(文敎部)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날 저녁에 장관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었다. 사정 설명을 하고 다음날 만나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오후 5시경에 연세대(延世大) 안세희(安世熙) 총장을 만나서 그간의 협조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성(成)과장이 장관을 꼭 만나야 되겠다고 하니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한다. 장관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성(成)과장이 받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여섯시쯤에 L호텔에서 손제석 장관(孫製錫 長官)과 회동했다. 근인회(槿仁會)에는 한 시간 정도 늦겠다고 연락을 취했다.
손(孫)장관은 대통령의 지시이니 한국교원대(韓國敎員大) 총장직을 맡아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뜻밖이었다. 전문가도 아니고 4년 임기를 채울 수 있는 연령도 아닌 까닭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손(孫)장관 자신도 이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에게 같은 뜻을 말씀드렸지만 완강하시다는 설명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대통령에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부득이 오늘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4월에 해외에 나가서 한 달쯤 체류할 계획이니 발령을 낸다고 해도 5월 초로 미루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사실 동경(東京)회의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수주일 동안 있으면서 교수생활의 준비를 하고자 하였었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안가서 임명장을 받으러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3월 5일 총리실(總理室)에서 전달식이 있었다. 교원대학(敎員大學)에 관하여 노신영(盧信永) 총리와 잠시 간담하였다. 이렇게 빨리 임명장을 받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다음날 입학식(入學式)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85년 3월 6일, 제1회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19개학과 520명이다. 84년 3월 15일에 한국교원대학교(韓國敎員大學校) 설치령(대통령령 제11382호)이 공포된 후 1년 만에 입학식이 거행된 것이다. 그 동안 이규호(李奎浩) 전 문교부장관(文敎部長官)이 초대 총장으로서 학교를 꾸미고 신입생을 받은 후에 대통령 비서실장(大統領 秘書室長)으로 전출하였던 것은 주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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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대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취임식 / 오른쪽은 정희채 문교부 차관, 왼쪽은 집사람(1985. 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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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비가 내린 끝이어서 입학식(入學式)날은 좋은 일기가 아니었다. 교원대(敎員大)는 충북 청원군 강내면(忠北 淸原郡 江內面)에 위치하였는데 진입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아서 자동차편이 어려울 정도였다. 장관(長官) 재임 시 기공식에 참석한 일이 있었는데 다시 와서 보니 그때와 다른 것은 교양학관(敎養學館)과 기숙사 2동이 서있는 것뿐이었다.
입학식(入學式)은 교양학관(敎養學館) 앞뜰에서 거행되었다. 신입생들은 대단히 진지했다. 시(市) · 도(道)교육감(敎育監)이 추천한 학생들이어서인지 그들의 얼굴에서 의지(意志)를 읽을 수 있었다. 되돌아가고 싶은 심정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신입생들의 모습을 보니 한번 일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교원대(敎員大)생활이 시작되었다. 총장으로서 할 일이 산적(山積)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중에서도 교수진 확보, 캠퍼스 조성, 교원대(敎員大)에 대한 인식고양(認識高揚) 등은 중요 과제였다. 모두가 시급하면서도 시간을 요하는 과제인 것은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어느 직장에서나 인재가 필요하게 되는데 대학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교수채용에 대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는 것을 나는 잘 경험해 왔다. 공채(公採)를 해보면 지원자는 많지만 마음에 드는 인사는 많이 않은 것이 상례이다.
캠퍼스 조성은 학교건물의 신축이 선결문제이다. 예산당국과의 절충은 언제나 중요하다. 당시 건설사무소장인 윤길상(尹吉相) 부기감(副技監)은 문교부장관 재임 시에 내가 보낸 사람이지만, 오래 전부터 나와는 교분이 두터운 관계여서 호흡이 잘 맞았다. 윤(尹)소장은 후에 서울대학교 시설관리국장으로 전출되었다가 문교부 교육시설국장으로 영전된 바 있다. 오늘날 위용을 자랑하는 교원대 건물의 신축에는 그의 공이 대단히 크다.
또한 총무과장이던 홍희식(洪喜植) 씨는 충북대학(忠北大學)의 터줏대감과 같은 분이었는데, 교원대(敎員大)의 설치가 결정되자 교원대(敎員大)로 전출되어 서울사무소(事務所) 시절부터 심혈(心血)을 기울여 왔으며 나의 재임기간 중 궂은일을 맡은 후, 다시 충북대(忠北大)로 옮겨가 90년 5월에 정년을 맞이하였고 수년 후에 별세한 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