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학술원 방문 (126회)
  제16장 관련 단체 활동

회장으로 취임한 후 나는 앞으로의 구상에 골몰했다. 학술원의 활동이 활발할 수 없게 되어있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나 그렇다고 이에 만족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학술원의 설치목적에는 학술진흥을 위해 공헌도 하고 국제적 교류(國際的 交流)도 하기로 되어 있다.

학술원상시상(學術院賞施賞)도 주요 기능의 하나이다. 나는 우선 학술원의 존재를 일반 사회와 정부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국보적인 원로학자를 모시고 있는 학술원에 대한 인식이 너무도 빈약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될 때가 많다. 나는 그 책임이 학술원에도 있고 일반사회나 정부에게도 다 같이 있다고 믿고 있다.

재정상으로는 빈약한 학술원이고 보니 많은 비용이 드는 사업은 착수하기가 힘들다. 나는 학술강연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것을 구상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언론사와 공동으로 지상토론회(紙上討論会)를 갖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조선일보(朝鮮日報)를 방문하였다. 방일영(方日榮) 고문(당시 회장), 방우영(方又榮) 회장(당시 사장), 방상훈(方相勳) 사장(당시 부사장) 등 경영진에게 학술원의 입장을 설명하고 매월 한 번씩 지상토론회를 열어 그 내용을 조선일보(朝鮮日報)에 실리도록 하는데 합의를 보았다. 안병훈(安秉勳) 편집인, 인보길(印輔吉) 편집국장 등과도 물론 상의하였다. ‘학술원 토론(學術院 討論)’은 93년 2월부터 매달 조선일보(朝鮮日報)에 실렸다. 한 면을 완전히 제공해 준 조선일보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토론이 끝나면 단행본으로 제작할 예정으로 되어있다.

내가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 학술원과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와의 교류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해는 우리 학술원회원이 방문하고 다음해에는 상대국 학술원회원이 내방하도록 되어있다. 항공료는 파견 학술원이 부담하고 체재비는 방문국 학술원이 부담한다. 체재기간은 대체로 1주일이다. 아직 시작한 단계인 까닭에 성과여부를 평가하기에는 빠르다.

나는 92년 10월에 워싱턴 소재 미국학술원(美國學術院)(US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을 방문했다. 회장인 Frank Press 박사와 사무국장이 환대하였다. 미국학술원에 관한 예비지식이 별로 없었던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회원은 1,600명 이상이고 학술원에서 일하는 행정직원이나 연구직원이 1,200명을 넘는다는 설명을 듣고 부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선진국과는 별도의 문서 없이 상호간 교류한다고 하며 우리나라를 선진대열에 넣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미국 아카데미는 공학 아카데미(Academy of Engineering), 의학연구원(Institute of Medicine)과 함께 미국 국립연구위원회(National Research Council)를 구성하고 연구비 배정에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부럽기만 하다. 이 보다 앞서 Hawaii에 들러서 태평양과학회의(太平洋科學會議)(Pacific Science Association)를 방문했다. 우리나라와도 깊은 인연이 있는 조직이다. Bishop Museum에 소재한 P.S.A는 예상했던 것보다 빈약한 느낌이 들었다. 재정난을 호소하며 나에게 도움을 달라고 청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92년 11월에는 파키스탄의 수도 Islamabad에서 열린 아시아학술원 연합(Federation of Asian Scientific Academies and Societies, FASAS)에 참석했다. 아시아 12개국의 학술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도와 말레이지아가 중심이며 FASAS 사무실은 뉴델리에 있다. 나는 이 회의에서 임기 3년의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차기 임원회는 93년 10월 30일, 31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의결하였다.

92년 11월에는 곽말약(郭沫若<궈모러>) 탄신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토론회에 참석차 중국을 방문하신 차주환(車柱環) 부회장에게 부탁하여 중국과학원(中國科學院)과 사회과학원(社會科學院)을 방문하고 우리 학술원과의 교류관계를 알아보도록 하였다. 차(車)부회장께서는 13일에 사회과학원(社會科學院), 17일에 중국과학원(中國科學院)을 방문하시고 교류관계를 추진하는데 긍정적인 결론을 얻고 귀국하셨다. 차(車)교수께서는 중국문학 전공이시며 중국에 관한 조예가 깊으시고 중국어도 유창하신 까닭에 충분히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시고 좋은 반응을 얻어 내신 것으로 믿고 있다.

92년 12월 8일에는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의 섭외담당책임자가 내한하여 교류관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전해 왔다. 양 과학원과 절충을 거듭한 끝에 중국과학원과는 4월 5일, 중국사회과학원과는 7월 1일에 각각 교류협정을 맺게 되었다.

93년 3월 29일 오전에 나는 일본 학사원(學士院)을 방문했다. 일본 학사원은 일본의 학술원인데 회원 수는 우리와 같이 150명이며 평균연령이 80세라고 하니 우리보다 더 노령인 셈이다. 환대를 받고 또 정중한 안내를 받아 학사원 내부를 샅샅이 시찰하였다. 듣던 대로 권위와 예우기관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하였다. 오후에는 일본 학술회의(學術會議)를 방문했다. 여기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 일본 학사원에서 원장과 함께

학사원이 문부성(文部省) 산하인데 대하여 학술회의(學術會議)는 총리실(總理室) 산하이다. 학사원 회원이 종신제인데 대하여 후자는 3년의 임기제이다. 3회에 걸쳐 연임이 가능하다고 설명해준다. 전자에 비하여 후자의 활동이 적극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교류문제가 거론되자 학사원은 예산이 산정되면 시작하자고 한다. 후자는 매년 2개국을 대상으로 하여 10여 명 정도로 팀을 구성하여 파견하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해 준다. 우리나라도 방문했었다고 한다.

93년 8월 12일 오전에 영국 왕실학회(英國 王室學會)(Royal Society)를 방문했다. 자연과학 학술원(自然科學 學術院)인데 33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명실 공히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학술원의 하나이다. 예상외로 환대를 받았다. 내가 방문하기 전에 서울 British Council을 통하여 학술교류 협정서의 초안을 보냈는데, Royal Society에서는 크게 환영하였고 이미 깊이 있게 검토하였다는 설명이다. 93년 10월 4일부터 9일까지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국제과학연합임원회(International Council of Scientific Unions, ICSU)에서 조인하기로 합의하였다.

오후에는 인문(人文) · 사회학술원(社會學術院)인 영국학술원(英國學術院)(British Academy)을 방문하여 역시 환대를 받았다. Royal Society에 비하면 역사가 짧기는 하지만 역시 권위를 과시하고 있었다.

 
  학술원 회장에 피선 (125회)
  학술원 기금의 확충 (127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