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식(閔寬植) 의장만큼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의 인생은 바로 활동 그것이다. 연령과는 관계없이 뛰는 성격이다. 그의 집념은 대단하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이 그로부터 나왔다는 인상마저 줄 정도이다. 그 결과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해오셨다. 그의 학력이나 경력은 이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에 대한 호칭도 여러 가지가 있다. 민(閔)박사, 민(閔)장관, 민(閔)회장, 민(閔)원장, 민(閔)의장 등 여러 가지다. 나는 이 중에서 민(閔)의장이란 호칭을 잘 사용한다. 민(閔)의장은 1937년에 경성제일고보(京城第一高普)(현 경기고(京畿高))를 졸업하고 수원농대를 거쳐 1942년에 일본 교토대학 농학부 농예화학과(京都大學 農學部 農藝化學科)를 졸업하셨다. 1963년에는 교토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셨다. 이 외에 많은 명예학위를 수여받으셨다. 특이한 것은 1947에 독학으로 약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약사 면허를 취득한 일이다.
민(閔)의장의 경력은 화려하다. 해방 후에는 서울대 농과대학과 공과대학에서 잠시 강의를 하셨다. 그 후 정계로 들어가 54년부터 67년까지 제3, 4, 5, 6대 국회의원으로서 활약하셨다. 서울 동대문구(東大門區)는 그의 아성이다. 57년에는 제 12차 유엔총회에 한국대표로서 참가하셨다. 60년에는 대한테니스협회장으로 활약하였고 64년부터 71년까지 대한체육회 회장직을 다섯 차례나 맡으셨다. 대한축구협회 회장직과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직을 겸직하기도 하였고 대한(大韓)올림픽위원회(委員會) 위원장직을 수행하기도 하셨다.
1966년부터 80년까지 대한약사회(大韓藥師會) 회장직을 일곱 차례에 걸쳐 역임하셨다. 71년부터 74년까지 문교부장관으로서 쌓아올린 업적은 대단한 바 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아시아정책연구원을 창립하고 원장직에 취임하여 빛나는 연구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77년부터는 남북조절위원회(南北調節委員會) 부위원장 겸 공동위원장 대리직을 맡고 있으며 78년부터 84년까지는 한국과학기술단체(韓國科學技術團體) 총연합회장직을 세 차례에 걸쳐 역임하셨다. 79년에는 서울 종로ㆍ중구에서 출마하여 제10대 국회 부의장직에 선출되었고 80년에 국회가 해산될 때까지 국회의장 대리로서 그 존재를 과시하셨다.
일단 정계에서 물러난 후에는 학구생활에 정력을 쏟았으며, 일본 교토대학 법학부와 동경대학 법학부에서 연구를 계속하셨다. 86년부터는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서울올림픽대회 운영협의회 공동의장으로 활약하면서 86아시아경기대회와 88올림픽대회를 크게 성공시켰으며 우리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셨다. 89년부터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고문 등으로 활약을 계속하고 계신다.
민(閔)의장의 약력을 일부러 적는 것은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아마도 민(閔)의장의 경우와 같이 여러 가지 일을, 그것도 굵직굵직한 일을 알차게 한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극히 제한적으로 선택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 집념과 노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수필도 쓰신다. 스포츠는 만능이다. 특히 테니스 분야에서는 우리나라의 대부 격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테니스 붐은 바로 민(閔)의장의 작품이다. 특히 그의 문교부 장관시절에 이 바람은 강했다. 중복되는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출판기념회에서의 ‘경과보고(經過報告)’에서도 민의장의 경력을 비교적 소상하게 소개하였다.
내가 민(閔)의장을 알게 된 것은 의대학장 시절부터이다. 즉 1970년 초반부터이다. 물론 그의 명성은 그 훨씬 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직접 사귀게 된 것은 이 때부터이다. 재빠른 판단과 재빠른 행동에 감탄했다. 70년대 초에 서울대 병원에서 인턴파업이 발생했다. 지금은 헐리고 없지만 시계탑 옆 건물에 있던 A강의실에서 인턴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국무총리였던 김종필(金鍾泌)씨와 문교부장관이던 민(閔)의장이 일부러 찾아와서 이 모임에 참석하신 것이다. 두 분의 설득으로 파업은 끝났다. 두 분의 진지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민(閔)의장에게는 많은 것을 조르기도 했고 또 도움도 받았다. 한남동(漢南洞)으로 이사 가기 전에는 창신동(昌信洞)에 거주하셨는데 댁에도 여러 차례 갔었다. 이렇게 하는 동안에 점차로 교분이 넓어지고 그의 인생철학(人生哲學)에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창신동(昌信洞) 댁에 마련되어 있었던 수집품 전시장은 유명하였다. 외국의 지하철 승차권까지 빼놓지 않고 수집하고 있었다. 생애를 걸어오는 동안 있었던 일을 수집품을 통해서 빠짐없이 알리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인 박물관인데 누구나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면 감탄을 연발하게 되었다. 한남동(漢南洞)으로 저택을 옮기신 후에는 이 전시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궁금했는데 오히려 더욱 훌륭하게 꾸며 놓은 것을 보고는 역시 다르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그의 창의력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아시아 정책연구원 주최로 민(閔)의장은 빈번하게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서 그때그때의 현안에 관하여 심도 있는 토의를 하는 것이었는데 웬만한 대학(大學)이 하기 힘든 것을 민(閔)의장은 거뜬히 해치우곤 하셨다. 나는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가끔 이 모임에 참석해서 견식을 넓히곤 했다. 지혜와 끈기에 대하여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
89년 2월 말에 나는 제10대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90년 2월 28일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과총(科總)에 차기 회장제도를 도입한 것도 민(閔)의장의 아이디어라고 듣고 있다. 과총(科總)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그는 이 단체에 대한 지원 노력을 계속했으며 명예회장으로서 십분 그 존재를 과시하였다. 나는 이 직책을 통해서 인간 민관식(閔寬植)을 보다 깊이 알게 되었다.
민(閔)의장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좋을 수만은 없었다. 보통사람이라면 좌절하고 말았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부인 김영호(金英鎬) 여사의 내조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김(金)여사의 정성은 대단하며 많은 사람이 선망한다. 경제적으로도 비상한 노력을 하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민(閔)의장의 활동은 전적으로 김(金)여사의 덕분이라고 풀이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