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陸英修) 여사의 서거(逝去)_2 (152회)
  제19장 믿기 힘든 일들

이 일이 있은 후 세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는 소문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떠돌았다. 첫째, 어리숙한 서울대학병원이 어떻게 그렇게도 민첩하게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느냐, 둘째는 국립극장 행사장 일반석에 앉아있었던 탁(卓)여사가 어떻게 날쌔게 단상으로 뛰어 올라서 육(陸)여사를 감쌀 수 있었느냐, 셋째는 어떻게 범인 문세광(文世光)이가 행사장에 잠입할 수 있었느냐 등이었다.

나는 요사이도 다카야스(高安) 동경(東京)대의 학부장의 기지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집사람의 기지와 비교해 보면서 너털웃음을 웃어보기도 한다. 다카야스(高安) 교수는 곱추의 몸으로 비뇨기과의 세계적인 학자로 등장했으며, 명문 동경(東京)대학의 의학부장으로서 이름을 날리기도 하였다.
 
다카야스(高安) 박사는 동대(東大)에서 정년한 후 야마나시대학(山梨大學)의 학장으로 활동하다가 2년 전에 은퇴한 것으로 전해 듣고 있다. 우리 의과대학 신입생 모집에서 신체장애자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진 데에는 다카야스(高安) 교수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요사이도 가끔 육영수(陸英修) 여사와 관련된 일들이 회상된다. 71년 현충일(顯忠日) 전날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 날은 많은 분들이 국립묘지를 청소하고 꽃단장을 새롭게 하는 것이 관례였다. 나와 학생과장이던 이광호(李洸鎬) 교수는 간호학과 학생 40명과 함께 6월 5일 아침에 국립묘지로 갔다. 이미 많은 분들이 작업 중이었다. 대부분이 여학생과 부인들이었고 남성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작업을 시작한지 약 30분이 지난 무렵에 어떤 남자 한 분이 다가오더니 영부인(令夫人)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빨리 가자고 했다.

나는 이(李)교수와 함께 따라갔다. 현충문(顯忠門) 옆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육영수(陸英修) 여사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여성들뿐인데 남성이 보이기에 만나보고자 했다고 하셨다. 서울의대에 관하여 이것저것 물으셨다. 화제는 광범위하였다. 그중에서도 청소년 선도 문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 나와 이(李)교수는 경험담을 많이 털어 놓았다. 특히 이(李)교수는 방송매체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경청하시던 육(陸)여사께서 공보처장관 부인께서 잘 듣고 장관께 전하라고 하셨다. 육(陸)여사와 자리를 함께 한 부인들이 각료 부인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1974년 8.15 광복절기념식장에서 피격당하는 육영수 여사 [사진출처 : 서울시 아카이브]

육(陸)여사의 자상하면서도 해박한 지식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육(陸)여사는 청와대(靑瓦臺) 내의 야당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는데, 그만큼 육(陸)여사는 모든 것을 여러 측면에서 살피셨다고 생각된다.

서울의대에서는 여름방학 기간 중에 무의촌 진료봉사(無醫村 診療奉仕)를 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나는 학생과 레지던트로 구성된 봉사단(奉仕團)을 인솔하기도 하였고 학장에 취임한 후로는 현지를 방문하여 격려를 하기도 하였다.

72년 여름방학이 끝난 며칠 후로 기억된다. 청와대(靑瓦臺)에서 무의촌 진료봉사 학생들을 데리고 오라는 전갈이 왔다. 오후 4시까지 와달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랴부랴 학생들에게 연락을 하니 약 20명이 모여들었다. 준비가 없었던 상태였고 아직도 잔서(殘暑)가 심한 때였던 관계로 대부분의 학생은 넥타이를 착용하지 못하였다.

옛 청와대에 도착하여 회의실 같은 곳으로 안내 받았다. 가운데 테이블에는 다과가 놓여있었다. 이윽고 육영수(陸英修) 여사께서 나타나셨다. 나는 불러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옷차림이 좋지 않아 송구스럽다고 사과하였다. 육(陸)여사께서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옷단장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시면서 학생들의 참모습을 보니 반갑다고 오히려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봉사활동에 관한 보고를 올렸고 의대 학생들의 생활상에 관하여도 설명을 올렸다. 육(陸)여사께서는 봉사정신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학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있기에 우리나라의 앞날은 양양하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약 한 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육(陸)여사께서는 이왕에 청와대에 왔으니 각하에게 인사드리는 게 좋겠다면서 집무실로 안내해 주셨다. 집무실에 들어서니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께서는 책상에서 무엇인가를 쓰고 계신 중이었다. 대통령께서는 남방셔츠 차림이셨고 집무실 카펫은 오래되어 여기 저기 닳고 닳은 흔적이 눈에 띌 정도였다. 한마디로 ‘검소(儉素)’의 상징 같은 느낌이었다.

육(陸)여사는 학생들의 봉사정신이 기특해서 초청하였다고 설명하셨다. 전연 예기치 못했던 방문객들을 맞이한 박(朴)대통령께서는 몹시 흐뭇해하시며 나에게는 학생들을 잘 이끌어 달라고 특별히 당부하셨다.

그 당시는 매년 서울대학교 최우수 졸업생이 청와대로 초청되어 오찬을 대접 받았다. 각 단과대학장들도 함께 참석했던 관계로 내 자신도 청와대를 처음 방문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무실에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그랬지만 학생들의 인상은 각별했던 것 같다.

그 후 육(陸)여사께서는 무의촌 진료용 마이크로 버스 한 대를 보내주셨다. 비운(悲運)으로 서거하신 대통령 내외분에 대한 흠모의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외분의 명복을 비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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