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정원제는 계속해서 현안문제로 남아 있었다. 이 제도의 적용을 받기 시작한 81학년도 이후 관심사는 탈락학생(脫落學生)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였다. 나는 여러 단계의 검토를 거쳐 81~83학년도 입학생에 대해서는 졸업정원의 10%, 84학년도 입학생(1학년)에 대해서는 7%의 초과졸업을 인정하고 이들이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그 구체적 방법은 대학자율화에 맡기기로 했다. 84년 7월에 발표한 이 결정으로 졸업정원제는 사실상 폐지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 가지 흥미 있는 일은 이러한 방침이 서기 전에 여자대학의 일부 학과에 대하여는 신입생 초과모집 비율(超過募集 比率)을 학교 자율에 맡겼는데 그 결과는 별로 감원시킨 것이 없고 졸업정원제(卒業定員制)의 경우와 거의 같은 수의 학생을 모집한다는 것으로 그쳤다. 다시 말해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학생을 모집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립대(私立大)의 경우에는 학생의 공납금이 학교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터여서 학생 수의 감원은 학교재정에 어려움을 준다는 논법이다. 또한 학생 수의 감원은 학교재정에 어려움을 준다는 논법이다. 또한 학생 수가 많을수록 일류대학이 되는 것이라는 사고가 의외로 큰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한 번은 주요 4개 대, 즉 서울대(大), 고대(高大), 연대(延大), 이대(梨大) 총장들이 함께 TV에 출연해 학원문제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이현재(李賢宰) 서울대 총장, 김준엽(金俊燁) 고대 총장, 안세희(安世熙) 연대 총장, 정의숙(鄭義淑) 이대 총장이 1시간이 훨씬 넘게 좌담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학원문제는 사라져버렸고 사립대(私立大) 총장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립대(私立大)의 재정난이 심각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등록금 자율화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TV좌담을 시청했다. 몇몇 장관들의 평가가 기억난다. 4개대 총장이 한자리에 모여서 토론했다는 데 뜻이 있는 것이지 학원문제가 심층으로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을 비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점잖은 대학총장들이 돈 이야기를 하겠느냐는 동정론(同情論)도 있었다.
대학입시제도(大學入試制度)가 모든 국민의 관심사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선 시험 후 지원제도가 파생시킨 여러 가지 부작용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학교별 차이를 지나치게 명료하게 드러내는가 하면 배짱지원, 눈치작전 등 한없이 많은 맹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제도를 당장 바꿀 수도 없었다.
어느 제도이건 장단점은 다 있는 법인데 단점이 적을수록 좋다는 것은 극히 평범한 원리이다. 국회에서는 가혹할 정도로 추궁을 받는가 하면 언론과 일반 국민은 매일같이 이 제도에 대한 의견과 비판은 계속한다. 나 자신은 이 제도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너무나 객관식(客觀式) 일변도라는 점과 대학의 자율성이 지나치게 박탈되었다는 점이라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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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교부장관 시절, 국회본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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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어떠한 방법이 있겠는가에 대하여 많은 전문가들과 협의하였고 실무자에게 숙제를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대학입학학력고사 문제의 객관식 출제에 따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전담기구를 두어 문제의 질적 개선을 연구토록 하였고 대학별로 작문(作文)시험을 치룰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도록 하였다. 궁극적으로는 대학별 본고사(本考査)가 부활돼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 당시의 사정으로는 이상론에 불과했다.
이 작문시험은 86학년도부터 실시키로 했고 출제내용과 방법 등은 모두 대학에 일임하였다. 점수의 반영비율도 총점의 10% 범위 내에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토록 했다. 작문시험은 일과성(一過性)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지금도 그 당시의 아쉬웠던 심정이 생각난다.
한편으로는 내신등급(內申等級) 점수 차를 줄이는 작업을 했다.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이 차지하는 전체적인 비율과 등급은 종전과 같으나 85학년도부터 등급 간의 점수 격차를 평균 2.6점에서 2점으로 줄이기로 했다. 종전에 내신 1등급에서 15등급까지의 점수 격차가 36.7점이었는데(내신 30%반영 시) 이것이 28점으로 줄어 내신 점수 격차가 차지하는 비율도 7.6%에서 5.8%로 줄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내신 성적의 학년별 산출비율(算出比率)에 등차를 두도록 했다. 즉 1학년 20%, 2학년 30%, 3학년 50%로 하였다. 이와 같은 대입제도 개선안이 당시 지적되었던 모순되었던 해결하는 데는 미흡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긍정적 반응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많은 나라에서 교육개혁의 방향을 자율화(自律化), 다양화(多樣化), 개성화(個性化)로 잡고 있는데 이들이 일조일석에 마련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세인들은 숙지하고 있다.
재임기간 중 학도호국단에 대하여는 심심치 않게 비판이 가해졌고 학생들이 내거는 ‘이슈’의 하나로 등장했었다. 85년 1월 24일, 대학교육협의회 이사회에서는 ‘대학의 학도호국단 개편 및 학생자치기구 신설을 위한 대정부 건의안’을 심의 통과시키고 정부에 제출하였다. 나는 이 건의안을 수용하고 학생자치기구를 부활시키며 명칭이나 운영은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는 법회 개정작업에 착수토록 하였다. 이리하여 학도호국단은 사실상 폐지되었으며 전시나 비상시에만 그 기능을 갖도록 하였다.
2월 12일의 국회의원 총선거(國會議員 總選擧)일을 앞두고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았다. 학생의 정치활동을 규제하고 있는 까닭에 학생의 선거운동이나 총선 개입은 징계한다는 지침을 시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부학생의 성향은 정치지향적이어서 유세장 폭력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여 그대로 방치하기가 힘든 상황에 도달했다. 나는 2월 6일, 정치인은 학생을 이용 말라고 하는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총선(總選)은 여러 가지 숙제를 남겼는데 그 중의 하나가 대학생의 정치활동문제였다. 한편 각 대학에서는 학생회칙을 작성하는 데 많은 진통을 겪기도 했다. 나는 총선이 끝난 수일 후에 단행된 개각으로 문교부장관직에서 물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