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애폴리스 추억(追憶)_2 (165회)
  제20장 수상(隨想)

④김석환(金錫煥) 선생과 진병호(秦柄鎬) 선생

1955년 미네소타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함께 지낸 분으로 김석환(金錫煥), 진병호(秦柄鎬), 한심석(韓沁錫), 남기용(南基鏞), 이성호(李聖浩) 선생 등 여러 선배님들이 계셨는데, 모두가 각 전공분야에서 특출한 존재를 과시하고 계셨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김석환(金錫煥) 선생은 산부인과학, 진병호(秦柄鎬) 선생은 외과학, 이성호(李聖浩) 선생은 순환기 내과학, 한심석(韓沁錫) 선생은 소화기 내과학, 남기용(南基鏞) 선생은 생리학의 권위들이시다.

김(金)선생과 진(秦)선생은 구 경성제대 의학부 제3회 졸업동기이시며 한(韓)선생은 제9회, 그리고 남(南)선생과 이(李)선생이 제12회 졸업동기이시다. 이들 선배는 많은 에피소드를 남기시기도 하였는데, 그 중 김(金)선생과 진(秦)선생에 얽힌 이야기는 재미있다.

당시 미네소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사이에 체결된 미 국무성 계획의 인사교류 방침에 따라 교환교수 자격으로 미네소타대학교에 파견된 분들이다. 두 선배가 동기동창이시기 때문에 두 분 사이가 돈독(敦篤)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두 분 사이의 기류가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당시 김(金)선생은 모교의 산부인과 주임교수이고 진(秦)선생은 대학병원장이셨다.

서울대학교에서 파견된 분들은 누구나 생리학(生理學) 강의를 의무적으로 듣고 얼마간의 간격으로 시험을 치르도록 되어 있었다. 성적은 A, B, C 등으로 발표되었다. 김(金)선생님과 진(秦)선생님은 빈번하게 사모님들 앞으로 편지를 보내시는 모양이었다. 두 사모님 역시 가까운 처지인 것은 짐작할 만하다. 두 분은 가끔 만나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성적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 미네소타보건대학원 시절, 학우들과 (1955. 10. 7.)

한번은 두 선생님 사이에서 언쟁(言爭)이 벌어졌다. 한 분이 치사하게 시험결과를 마누라에게 보고하는 놈이 어디 있느냐고 하니 다른 한 분은 사실대로 쓴 것인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대든다. 아마도 한 분이 A성적을 얻었다고 쓰신 모양이다. 사모님이 자랑하였는데 또 한 분의 사모님은 전연 소식을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남편 되시는 선생님에게 아무개는 좋은 성적을 얻었다고 자랑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시험을 치렀기에 한마디 말도 없느냐는 호령을 내린 것 같다. 분명히 한 분은 B나 그 이하의 성적을 얻으신 것 같았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두 분 사이에는 더욱 감정이 격한 언성이 오고갔다. 한 분이 양말을 꿰매고 있었는데, 이 광경을 본 다른 한 분이 애처롭다고 부인에게 쓴 모양이다. 두 사모님이 만나셨을 때 이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양말 같은 것은 사서 신을 것이지 꿰매는 꼴이 무엇이냐고 남편에게 쓴 것이 동기가 된 것이 분명하다.

우연히 두 선생님과 식사를 하고 있던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두 분은 나의 존재는 아랑곳없이 삿대질을 하신다. 여기서도 병원장(病院長) 행세를 할 셈이냐고 다그치니 여기서는 산부인과 과장이 필요 없다고 맞고함을 친다.

이 해프닝이 생긴 뒤로부터 두 분 사이는 영영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자리를 같이 하려 하시지 않았다. 1년간의 연수가 끝난 후 두 분은 각각 일정을 달리하여 구라파로 떠나시게 되어 있었다. 56년 7월에 나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과 보건대학원을 방문하기 위해 보스턴에 가 있었다. 숙소는 YMCA호텔이었다. 일반적으로 YMCA호텔은 저급이었지만 보스턴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객실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이 호텔에 숙박했었다.

어느 날 점심때인가 호텔로비에서 한 분 선생님을 만났다. 그 전날 저녁에 투숙(投宿)했다고 말씀하신다. 이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또 한 분의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제기랄, 저 친구가 보기 싫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원수 외나무다리에서 또 만나게 되는군.”하고 푸념하신다. 나는 들어오시는 선생님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선생님도 저기 와서 계시다고 하였더니 물끄러미 바라보시면서 말씀이 없었다.


⑤탁월(卓越)한 공적상(功績賞)

 여러 가지 인연으로 해서 미네소타대학의 보건대학원에는 그 후에 여러 차례 방문했고 의대학장이던 N. L. Gault 박사의 알선으로 의과대학에도 몇 차례 찾아갔다. 1979년 6월 9일 미네소타대학교의 C. Peter Magrath 총장은 나에게 공적상(Outstanding Achievment Award)을 수여하였다. 나는 수여식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였는데 그 내용이 괜찮았던 것 같았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던 일이 지금도 흐뭇하게 느껴진다.

미네소타 보건대학원에서 매년 연차보고서를 간행하고 졸업생 2, 3명에 관한 프로필을 실어주는데, 1988~89년판에는 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A public-spirited commitment to improving health throughout the world is the common thread in the diverse and illustrious career of E.Hyock Kwon(M. P. H. 1956, public health administration). Recognized for his work in developing and promoting public health programs in his native Korea and in other countries, Kwon was a key force in establishing health issues as a planning priority within the Korean government. His efforts in health policy development, family planning, and other areas have been recognized through prestigious awards from Korea as well as the United States, where he has received the government's Medal of Freedom and the University of Minnesota's Outstanding Achievement Award. During the course of his career, Kwon has served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s dean of the school of Public Health, dean of the College of Medicine, director of the Institute of Reproductive Medicine and Population, and president of the university. He also has served as the Republic of Korea's minister of education and as its minister of health and social affairs ; as chairman of the board of the Korea Health Development Institute ; and as president of the National Education University. He currently is chairman of the Korea Green Cross Corporation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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