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敎授)와 학생(學生)_1 (170회)
  제20장 수상(隨想)

오랫동안 대학에 몸담고 있던 처지에서 언제나 대학을 중심으로 사색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간간히 수필을 써서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몇 편을 전재한다.


대머리 학장과 장발 학생

어느 봄날 오후의 의과대학 학장실. 그날따라 몹시 우울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봄만 되면 홍역처럼 치러야 하는 대학가 소요. 그래서 교수들은 필요 이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유형, 무형의 간섭이나 압력을 견뎌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혼자 앉아 있으려니까 비서양이 학생들의 면담신청을 전해왔다. 이윽고 학생 4명이 들어왔다.

용건을 묻자 학생들은 그들의 요망사항을 끄집어냈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다만 별로 무리한 주문이 아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학가가 조용하지 않았던 때여서 학장으로서 매일 매일 심신(心身)양면으로 피로했던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불쾌한 일을 겪고 심사가 울적해 있던 터라 학생들의 요청을 싹 무시하고 별안간 한 학생의 장발에 대해서 화풀이를 했다.

‘이 사람아, 자네 머리가 그게 뭐야. 머리나 깎고 학장실에 들어올 것이지.’

짧은 침묵이 지났다. 그런데 지적당한 학생이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은 표정을 하면서 나의 화풀이를 슬쩍 받아넘기지 않겠는가.

‘학장님, 학장님 머리가 없으시니까 공연히 저에게 화를 내시네요.’ 순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학생들도 웃었다. 완전히 승부가 난 셈이다. 학장이 완패(完敗)한 것이다. 한참동안 서로 웃다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지금도 가끔 이 일을 회상하면서 혼자 웃을 때가 있다.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고 부덕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보직자가 겪게 되는 에피소드의 한 토막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요사이의 학생과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의 학생의 모습과 비교해 보기도 한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이와 같은 에피소드가 생길 수 없었다. 다시 말해서 교수 앞에서는 하고 싶은 말일지라도 함부로 하기가 힘들었다. 더욱이 농조의 발언은 용납될 수 없었다. 잘잘못이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불문율(不文律)이 교육의 원리와도 같은 느낌조차 주었던 것이다.

이제는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정당성(正當性)이 있는 경우에 발언을 하지 못하면 겸손하다는 평을 듣기 보다는 어딘가 모자란다는 비난을 듣게 된다. 모든 사고방식이 상당히 과학적으로 된 것이다. 학생이 그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의문이 있다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와 학생 사이의 사랑과 의리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아무리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양(洋)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변할 수 없는 것이 사제지간의 사랑과 의리가 아니겠는가.
 

신세 잊지 않겠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학교 저 학교로 출강하기에 바빴다. 예방의학(豫防醫學)이나 공중보건학(公衆保健學)이란 과목이 위생학(衛生學)이란 이름으로 많은 학교 교육과정에 끼어 있던 탓으로 괴로울 정도로 출강요청을 받았었다.

강의는 이럭저럭 해가게 마련이었지만 학기 말이 되어 시험 때가 되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학교마다 시험문제를 같이 할 수 없어서 출제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빼앗긴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문제가 아니다. 많은 답안지를 채점(採點)한다는 것은 정말 피로하고 귀찮기 조차한 노릇이다. 양심상 적당하게 얼버무릴 수도 없는 일이요, 남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옛날에는 어떤 일본인 교수는 채점하기가 싫어서 답안지를 바람에 날려 멀리 날아가는 답안지에 좋은 점수를 주고 바로 언저리에 떨어지는 경우에는 하위점을 주었다는 믿어지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열심히 시험공부를 한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채점도 끝나고 재시험도 끝나 마음이 홀가분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이날따라 포근한 날씨였던 것이 생각난다. 남향(南向)인 내 연구실에는 따뜻한 햇빛이 함박 비쳤고, 구공탄 난로는 빨갛게 달아올라서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느닷없는 노크소리에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책이 의자 밑으로 떨어진다. 무의식적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문에 들어선 사람은 어느 모로 보거나 나무랄 데 없는 신사다.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맞이했다. 자리에 앉기를 권하고 담배를 대접했다. 이 신사는 서슴지 않고 입에 문다. 성냥불을 켜 올렸다 상대편이 도대체 누군지 알 수 없다. 여러 학교에 출강하고 있는 관계로 학생 개개인을 알 수는 없지만 아무리 보아도 학생 같지는 않다.

“용건이 무엇입니까?”
“저 D대학 0학년 학생인데요.”

말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예상이 빗나간 까닭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맛이 쓰기 짝이 없었지만 별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무슨 특별한 용건이라도?”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질문이 터져 나갔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이번 학기말(學期末)시험을 치렀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치른 것 같지 않아서 선생님께 부탁을 올리려고 왔습니다.”
“어떻게 해달라는 이야기인가?”
“좀 잘 봐주십시오. 신세는 잊지 않겠습니다.”

뻔뻔한 친구다. 지금 같으면 그렇지도 않았겠지만 그때만 해도 팔팔했던 시절이었던지라, 그야말로 이성을 잃을 정도로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사람아 당장 담배 꺼버리게! 그리고 당장 내 앞에서 꺼져버리게!”

이 친구 상당히 침착하다. 뭐 그렇게 화낼 것 없지 않느냐는 표정이다. 선생님께서 잘 대해 주시니까 그저 좇았을 따름이라고 점잖게 변명한다. 그러고 나서 묵묵히 일어서더니 나가버렸다.

누가 이겼는지 졌는지 지금도 판단이 잘 안 간다. 교수와 학생사이에 승패(勝敗)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학생이나 내 자신이 어딘가에 잘못된 점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느 의미에서는 참다운 의미의 교수도 아니고 참다운 의미의 학생이 아닌지 모른다. 어쨌든 이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고소(苦笑)를 짓지 않을 수 없다.


품행방정(品行方正)

직업이 직업인지라 외국방문객을 맞이해야 할 때가 많다. 좋고 싫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 중에는 정말 훌륭하여 만나서 크게 도움이 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에 찾아 왔는지 알 수 없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방문객의 대부분이 외국대학의 교수(敎授)인 까닭에 생소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대방의 인품(人品)이나 역할(役割)에 따라서 대접의 내용도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일반적으로 대학이나 연구개발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 호화롭게 대접하기는 어렵다.

한번은 상대편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장소에 갈 수 없겠느냐는 주문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이나 ‘캬바레’와는 인연이 먼 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여서 단골집이 있을 리 만무했고 어디로 안내해야 좋을지 선뜻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동행하기로 되어 있던 동료 교수들과 상의했다. 그 중의 한 분이 안내할 만한 곳이 있다는 이야기다.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 예정된 장소로 갔다. 어지간히 북적거리는 곳이었지만 그런대로 실내장식은 나쁜 편은 아니었다. 맥주 몇 병 갖다 놓고 잡담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주빈격인 A교수는 자못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다함께 나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참 추고 있으려니까 어떤 젊은이가 춤을 추면서 꾸벅 인사를 한다.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얼마 후에 또 한 명의 젊은 친구가 인사를 한다. 이 친구는 알만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의과대학 졸업생임이 틀림없다.

밴드 음악이 끝나고 휴식시간이 왔다. 두 번째로 인사했던 친구가 다가오더니 선생님도 이런 곳에 잘 오시느냐고 묻는다. 사연을 이야기 해 준 후 첫 번째 인사를 했던 친구를 찾아  보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음악이 시작되었다. 우리 일행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돌면서 살펴보았더니 인사하던 두 친구가 다 눈에 띄었다. 두 번째 친구보고 저기서 춤추고 있는 저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모르겠다고 한다.

다시 휴식시간이 왔다. 두 번째 친구가 첫 번째 친구를 데리고 왔다.

“선생님, 여기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O학년 학생입니다.”
“이 사람아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왜 이런데 오나?”
“선생님 말씀이 공부할 땐 실컷 공부하고 놀 때는 남에게 빠지지 않게 실컷 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머리가 개운치 않길래 머리 좀 식히려고 여기 왔습니다.”
“이해할만한 이야기인데 이런 곳에서 인사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아이 선생님도 참, 저희들이 예과(豫科)에서 학부(學部)로 진학했을 때 선생님께서 저희들 보고 언제 어디서나 선배님들에게는 꼭 인사를 올리는 습관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훈시하시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겼을 따름입니다.”

이쯤 되면 할 말이 없다. 잘 놀라고 부탁하고 나서 총총걸음으로 내 자리로 돌아갔다.

동료 교수들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배꼽을 잡는다. 교수의 말씀을 그렇게 잘 듣는 학생이니 그야말로 품행(品行)이 방정(方正)하고 표창감이 아니냐는 것이다. A교수에게 당신네 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부럽다는 대답이었다. 인사가 다 뭐냐고 말하면서 한국적 맛이 담뿍 담겨져 있는 정경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뭐가 먼지 모르겠다. 가끔가다 소위 가치관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해석을 할 때가 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렵게만 되니 아예 더 이상 에피소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주례 유감(主禮 有感)_2 (169회)
  교수(敎授)와 학생(學生)_2 (1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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