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敎授)와 학생(學生)_2 (171회)
  제20장 수상(隨想)

교수의 위선

대학이라는 특수한 울타리 안에서 연구와 교육 위주의 교실생활(敎室生活)을 하다보면 남모르는 애환을 느끼게 될 때가 많다. 누가 일부러 만들어내는 풍조(風潮)도 아니건만 그때그때 특이한 풍조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맛도 모르고 먹을 줄도 모르는 술이지만 일과가 끝난 후 술집을 누비고 다닌 때가 있었다. 같은 캠퍼스에서 생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무시간 중에 서로 만날 기회가 그다지 흔하지 않은 우리의 처지에서 가끔 막걸리 타령을 한다고 해서 나쁠 것이 없다. 훈장도 사람인데 술 좀 먹는다고 해서 안 될 것이 무어냐고 하는 배짱도 생긴다.

막걸리나 배갈로 시작해서 정종이나 맥주 파티로 연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말하자면 3차로 진전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몇몇 교우와 어울려 3차까지 발전한 좌석에서였다. 잘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이지만 이쯤 되면 세상이 자기 것 같아진다.

주문도 안했는데 보이가 맥주 다섯 병을 가져왔다. 왜 가져왔느냐고 했더니 저편에 앉아 계신 분이 갖다드리라고 해서 가져왔다는 얘기다. 그 분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기에 모셔 오라고 했다.

보이와 함께 온 젊은이가 반갑게 인사하지만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얼근하게 한잔 한 모양이다.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3학년의 아무개라는 자기소개이다. 이쯤 되면 직업의식이 앞선다.

“이 사람아 공부안하고 왜 이런 데 와있어? 시간이 아깝지 않아?”
“아이 선생님두, 시험이 끝나서 친구들과 한잔 하고 있는 판입니다.”
“맥주는 도루 가져가. 자네들 술은 마시지 않겠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희들의 성의입니다.”
“이 사람아, 이런 곳에서는 못 본 척 하는 거야.”
“어떻게 선생님을 뵙고도 못 본 척합니까?”

이쯤 되면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젊은 친구는 극히 유쾌한 모양이다. 정중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어느 쪽이 교육자이고 어느 쪽이 피교육자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학생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학생이 보고도 모른 척 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선생의 모습을 본 학생은 자기의 성의(誠意)를 다한 것이다. 무슨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떤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스승에게 도리를 지킨 것뿐이다.

그런데도 농담이나마 모르는 척 하라는 것은 일종의 위선(僞善)이 아니겠는가.

이와는 약간 다른 성질의 이야기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나는 정부와 학교 당국 및 미국 인구 협회(美國 人口 協會) 후원으로 64년부터 소위 ‘도시인구조절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는데 이 연구를 통해서 본래의 연구사업 외에 여러 가지 부차적인 교육자료를 얻게 되어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이 연구사업이 시작될 무렵 미국 인구협회의 고위간부인 벨포(Marshal C.Balfour) 박사를 초청하여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특별강연을 가졌다.

Balfour 박사는 세계적인 관심사로서의 인구문제 내지 가족계획에 관하여 설명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족계획을 국책(國策)으로 채택한 것을 현명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질의응답에 들어가자 한 학생이 정면으로 가족계획 자체를 반대했다. Balfour 박사는 노련한 전문가이지만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으며 나의 심경은 말이 아니었다. 산통이 깨진 셈이다.

예정 시간이 끝난 후 그 학생을 교수실로 오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약속한 시간에 학생이 나타났다. 나는 교수의 체면도 있고 해서 다소 자제하면서 가족계획을 그렇게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자기 생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적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것도 아울러 이야기한다.

그의 주장이 어찌나 단호한지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교수로서의 입장이 난처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때의 심경으로는 이 학생에 대해서 적지 않게 감정을 상했던 것으로 생각되나 입장을 바꾸어보면 이 학생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음이 확실하다. 자기 소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밝힐 수 있는 정신을 오히려 찬양할 만하다. 그 후 재차 이 학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으며 B박사가 말한 대로 ‘용감한 학생’이라고 불러주었다. 물론 선의에서이다. 얼마 안가서 이 학생은 가족계획운동의 투사로 손꼽히게 되었다.


학생데모와 막후(幕後)교섭

의대교수 시절 어느 봄 세미나 장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미나의 주제는 ‘의예과 교육(醫豫科 敎育)’이었다. 흔히 세미나 워크숍의 중심은 교수나 그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학생이나 수련의와 같은 젊은 층이 초청되기도 한다. 이들의 의견이 필요한 때문이지만 또 하나의 뜻은 이들에게 세미나나 워크숍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데에 있다.

의예과 교육 세미나에도 수련의가 초청되었다. 자기가 경험한 의예과 교육에 관하여 설명하고 의예과 교육의 방향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문득 생각이 난 듯 이렇게 말한다.
 
▲ 서울의대 교수 시절 / 의학교육연수회를 마치고 (1974. 11.15.)

“앞에 계신 권(權)선생님을 뵙게 되어 한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제가 학생 때 학원이 조용치 않고 의과대학에서도 한동안 학생데모사태가 벌어졌는데 당시 학장이셨던 선생님에게 문제해결방법을 놓고 몇 번 저의 의견을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막후교섭을 통해 학생 데모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저의 제의를 일축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저는 이렇게 보수적이고 머리가 굳은 분이 어떻게 학생을 지도할 수 있겠느냐고 투덜댔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의학교육에 대한 주제발표를 듣고 생각해보니 당시 선생님의 태도에 수긍이 가는 군요.”

많은 참석자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웃었다. 사실 학생데모가 한창이었을 때 여러 가지 제의가 오기도 했고 어려운 고비도 많이 넘겼다. 이 수련의가 제의한 막후교섭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의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막후교섭 운운이라는 말 자체가 선뜻 호감을 주지는 않는다. 마치 교수와 학생이 무슨 흥정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학원에서 정치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더욱이 교수와 학생 사이의 정치적 교섭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만일 교수와 학생 사이에 정치가 필요하다고 하면 이 이상의 비극이 또 있을 수 있겠는가.

학생의 제의(提議) 중에는 상당히 건설적이고 가치 있는 것도 많다. 생산적인 제의가 일축될 리 만무하다. 젊은이의 발언이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바람직하다.

세미나나 워크숍 같은 모임에서 발표되는 젊은 층의 의견 중에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 있다. 그런가하면 전연 실현성이 없는 가공적인 것도 있다.

젊은이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선배는 종종 골동품시 당한다. 완고하고 이해성이 없다는 것이다. 후배의 의견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골동품과 같이 취급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다. 소위 대화가 이러한 거리를 좁혀주는 수단이라고들 주장한다.

대화를 통해서 그 거리가 좁혀진 예도 많다. 그러나 제 아무리 시도해 봐도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교수와 학생 사이에 공통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것은 인간성(人間性)의 개별이다. 참다운 인간성이야말로 어떤 경우일지라도 문제해결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해석하는 차원에 있어서 옛날과 오늘날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같이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따져 봐도 인간성의 본질이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교수(敎授)와 학생(學生)_1 (170회)
  교수(敎授)와 학생(學生)_3 (1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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