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이 예언자라고 생각해본 일도 없지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도 간혹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어 앞날을 걱정하기도 한 일은 있었다. 하나는 환경오염문제다. 60년대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차 환경문제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인사는 드물었다. 환경오염을 걱정할 만큼 공업화나 산업화가 진전되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이 분야에 대하여는 누군가가 조사나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환경전문가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1961년에 나는 뜻한 바가 있어서 서울대보건대학원의 정문식(鄭文植) 교수와 김태용(金泰龍)씨와 함께 서울시내 공기오염에 관한 조사를 한 일이 있었다.
90년 3월에 급기야 낙동강(洛東江) 상수원 오염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두산전자 구미 공장에서 유출시킨 페놀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 260만 대구시민을 비롯한 1,000만 영남 전역의 주민에 대한 식수문제이니만큼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되고 말았다. 악취에 발암(發癌)공포까지 곁들인 이 사건은 연일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취급되었고 정부차원에서도 긴급대책이 마련되는 등 숨 가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전국의 상수원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몇 차례 식수오염에 관한 민원이 있었지만 별로 문제되지 않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여러 가지 일들이 백일하에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은 돌발적인 사건일 수가 없다. 평소에 대책이 소홀했던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폐수(廢水)를 불법적으로 방류한 기업체는 물론이지만 감독책임이 있는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고 일반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일단 일을 당하고 난 후에는 수습책이나 사후대책이 중요하다. 이러한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정신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제아무리 환경오염을 경계하고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고 외쳐도 정부나 국민이 별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서 정부, 기업체, 일반국민이 환경오염에 대하여 한 덩어리가 된 것이 분명하다.
일과성(一過性)이 되어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항구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말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비장한 각오를 갖고 대처해야 한다. 감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경험해 왔다.
‘맑은 공기, 맑은 물’을 나는 언제고 강조해왔다. 이 과제는 전문가만의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과제인 것이다.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식이 있는 예방의학자의 한사람으로서 어디에서나 이 슬로건을 내세웠다. 예방의학 실습시간에 학생들을 뚝섬수원지에 데리고 가서 설명을 해주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인식을 주려고 시도했던 일이 그리워진다. 하수종말처리시설(下水終末處理施設)을 훨씬 많이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당국에 건의했던 일도 생각난다.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핀잔을 받고 어리둥절한 때도 있었다.
정부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를 들어 본다. 우선 수질관리부문만 해도 환경처, 건설, 내무, 보사, 수자원공사 등으로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다원화되어 있는 처지에서는 책임을 지기 힘들다. 따라서 수질관리체계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세워져야한다.
또 하나의 예로는 예산부족을 들 수 있다. 수질개선을 위한 환경기초시설투자 예산은 지원해주지 않으면서 십자가만 지게 한다는 것은 이론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89년에 수질파동을 겪었고, 90년에도 겪었다. 1, 2차 수질파동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맑은 물’ 공급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공약을 지키기 위한 예산에 대하여는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전문인력(專門人力)이 부족하다는 것도 빈번하게 지적되지만 종전과 같은 체계나 예산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다.
필자가 보사부장관시절에는 환경청이 그 산하에 있었다. 그래서 가끔 보고도 듣고 환경청을 방문할 기회도 있었다. 때로는 지방환경청이나 수원지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권한은 없지만 책임만 지게 되는 입장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환경청이 환경처로 승격한 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줄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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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보사부장관 / 앞줄 왼쪽부터 김판술, 고재필, 신현확, 나, 김정례, 뒷 줄 왼쪽부터 천명기, 문태준, 박양실, 이해원, 홍성철, 서상목, 송정숙 장관 (1994. 1.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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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걱정은 교통문제였다. 72년부터 81년에 걸쳐서 서울시정평가(市政評價)교수와 수도행정자문(首都行政諮問)위원으로 위촉된 일이 있었다. 보건분야의 교수로는 나하나 뿐이어서 외로운 때도 있었다. 정기적으로 회의가 열리는 것이 아니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소집되는 것이었다. 명칭에 비해서는 시정이나 수도행정에 공헌한 바가 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서울시측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할 수는 없었다고 회상된다. 왜냐하면 회의 때 시장이나 부시장이 출석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주로 기획관이 일을 담당했던 까닭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이 모임을 통해서 얻는 바가 상당히 있었다. 한편으로는 보건분야에 있어서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한번은 교통문제를 토의하였다. 나는 당시 교통사고의 역학(疫學)에 관한 연구를 지도한 일이 있을 때여서 나름대로 견해를 이야기했고 대책으로서 안전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러다가 교통난문제에 부딪혔다. 교통난이 눈앞에 다가 올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고 있는 일이었다. 문외한이기는 하지만 나는 지하철 건설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시청의 담당자는 뜻밖의 답변을 서슴지 않았다. 서울시내의 교통사정은 대단히 좋으며 버스만 가지고도 넉넉히 교통문제는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서울의 교통은 아주 훌륭한 편이라고 고집한다. 이분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착각을 해도 대단히 큰 착각을 한 것이 분명하다.
몇 년 후에 서울시는 부랴부랴 지하철 건설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행정에 있어서 장래에 대한 예측은 언제나 중요한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평가교수제도나 자문위원회제도가 마련된 것이라고 나는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89년 10월 28일부터 11월 3일에 걸쳐 노벨상수상자 11명이 내한하여 노벨상 수상자 서울심포지엄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한국경제신문사가 마련한 이 행사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는데 참석자는 73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지에베(Ivar Giaever) 박사, 73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조셉슨(Brian D. Josephson) 박사, 76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히터(Burton Richter) 박사, 79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글래쇼(Sheldon Lee Glashow) 박사, 67년 화학상을 수상한 포터(George Porter) 박사, 79년 화학상을 수상한 브라운(Herbert C. Brown) 박사, 80년 화학상을 수상한 길버트(Walter Gilbert) 박사, 86년 화학상을 수상한 허쉬바흐(Dudley R. Herschbach) 박사, 76년 의학상을 수상한 가이듀세크(Daniel C. Gajdusek) 박사, 85년 문학상을 수상한 소인카(Wole Soyinka) 박사 등 11명과 심포지엄 위원장인 드보노(Edward De Bono) 박사였다.
심포지엄에서는 제3세계의 부채, 공해와 생태계, 일반적인 건강과 AIDS, 교육, 실업문제, 인간가치 등의 주제를 놓고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학계의 중진들과 인터뷰, 텔레비전 대담 등을 통해 인류공동의 문제해결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수상자들은 11월 1일과 2일 포항(浦項)제철을 둘러보고 경주(慶州)관광을 즐기기도 하였다. 특히 포항공대 학생들과의 일문일답은 노벨상을 열망하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수상자들의 격의 없는 대화로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이들 일행이 2일 저녁에 서울로 온 후 과기처장관이 초청한 만찬회가 있었는데 나도 참석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수상자 대표의 인사말이었다. 대한민국에 와보니 참으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데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는 실망했다. 그 한가지란 교통난 문제이다. 사실 우리나라 교통난은 심각하다. 미봉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근본대책(根本對策)이 요구되는데 그 하나가 지하철의 확장이라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