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날짜가 생각나지 않지만 문교부장관(文敎部長官) 재임시절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육감인 Honig 박사 내외분을 초청한 일이 있다. 캘리포니아주(州)에서 우리 한국어를 제 2외국어로 채택했다고 듣고 있어서 고맙다는 뜻으로 초청한 것이다.
Honig 박사는 자기 배경에 대한 설명을 서슴지 않고 했다. 미국(美國) 어린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으니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것과 특히 과학(科學)교육이 뒤지고 있으니 이 점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유세를 하였는데 선거에서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자기 견해에 공감한다는 증거라고 했다. 자기 집의 가업으로서 맥주공장을 경영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편이라고 털어놓는다.
내외분은 8일간 머물렀는데 어지간히 활동적이었다. 쉬지 않고 곳곳을 찾아다닌 것으로 알고 있다. 출국 전날 저녁을 같이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교과서라고 하며 이를 선물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일정한 교육과정(敎育課程)이 없고 교과서도 그렇다고 하며 한국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돌아가게 되면 신세를 갚는 의미에서 미국에 있는 한국 학생들이 손해를 보지 않게 하겠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영어(英語)가 신통치 않아 이 분야에서 과락(科落)이 많은데 과목당 성적이 아니라 전 과목 평균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인 학생이 훨씬 유리하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이를 제도화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였다.
둘째로는 도덕교육(道德敎育)이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했다. 나 자신은 우리나라의 도덕교육(道德敎育)에 대해서 그다지 만족하고 있지 않은데 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84년에 도쿄(東京)에 들렀을 때 일본의 모리(森喜郞) 문부상(文部相)과 식사를 나눈 일이 있다. 그때도 도덕교육(道德敎育)이 화제로 되었는데 모리 대신(森 大臣)은 우리나라에서 이를 수입(輸入)할 용의가 있다고 한 일이 생각난다.
도덕교육(道德敎育)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로부터 장관실(長官室)로 걸려오는 전화가 그것이다. 나 자신이 직접 받은 일은 없고 비서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다.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았는데 우리 선생님을 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장관이라고 하니 우리 선생님을 혼내달라는 것이 대부분의 내용이라고 했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면 전화번호부에 다 나와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한다는 것이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나라 어린이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평가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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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의종 국무총리 등과 문교장관인 필자가 경기과학고등학교를 시찰하고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1984. 9.20.) [출처 ; e영상역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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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는 도덕교육(道德敎育)을 ‘수신(修身)교육’이라고 하였다. 물론, 일본식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우리나라의 퇴계학(退溪學)에 일본 천황제도를 붙인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니 일본의 도덕교육(道德敎育)도 우리나라에서 본떠 가지고 간 것이 분명하다. 일본에서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외국 사람들에게는 우리나라의 도덕교육(道德敎育)이 대단히 부러운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나도 모르게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우선은 가르치는 사람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점을 강조해 왔다. 한마디로 참다운 스승이 아쉬운 것이다. 어린이들이 따라야 하는 스승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과제는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인사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가끔 교장직에서 퇴임한 분들이 이 과제를 맡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결국 생각에 불과했다.
대학에서도 그 사정은 비슷했다. 국민윤리교육(國民倫理敎育)이 도덕교육(道德敎育)인 셈인데 그렇게도 비중을 두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후에 국민윤리(國民倫理)과목은 폐지되다시피 되었다. 여기에 있어서도 교수들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교부장관 시절 도덕교육(道德敎育)에 대한 집념은 나름대로 강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다. 도덕교육(道德敎育)이 일과성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한편, 도덕교육(道德敎育)이 학교교육(學校敎育) 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누구나가 지적하는 바와 같다. 가정과 사회교육(社會敎育)이 함께 호흡을 해주어야한다. 장관시절에는 상당히 소리 높여 외쳤지만 갈수록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선진국에서는 도덕교육(道德敎育)이라는 과목이 별로 없다. 도덕에 관한 것은 종교교육(宗敎敎育)에서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의 배경이 다른 만큼 도덕을 향한 접근 방법에도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어쨌든 전 세계에서 도덕은 모든 인류가 모색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