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문제(人事 問題) (160회)

인사문제 중에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전남(全南)대학교 총장 문제이다. 오항기(吳恒基) 총장의 임기만료로 84년 6월 12일에 정덕규(丁德圭) 교수가 총장으로 취임했다. 정(丁)교수는 선이 굵은 정치학자였으며 많은 포부를 가지고 있고 추진력도 대단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서울대법대 학장,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역임하신 이한기(李漢基)박사의 서랑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여름방학 동안에 학생지도 차 지방에 출장 중 먹은 음식이 잘못되어 취임 얼마 후인 7월 17일에 별세를 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학사문제협의차 영남(嶺南)지방을 순회하고 호남(湖南)으로 갔다가 이 비보를 전해 들었다. 마치 영결식에 참석차 광주(光州)시를 방문한 격이 되었다. 즉시 서울로 연락해서 훈장을 추서토록 하였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다는 회신이 왔다.

박찬경(朴贊競) 총무처장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궁화장으로 해달라고 졸랐다. 박(朴)장관께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하시더니 영결식에 늦지 않게 무궁화장을 보내주셨다.

또 하나의 급선무는 후임 총장 문제였다. 당시 전남대 대학원장이던 김영인(金永寅) 교수로 하여금 총장직무대리직을 맡도록 조치하였다. 그리고 김(金)교수를 후임 총장에 모시도록 대통령께 상신하라고 서울에 연락했다. 정희채(鄭熙彩) 차관이 즉각 청와대로 가서 결재를 받았다. 절차를 밟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金)교수는 7월 31일까지 총장직무대행으로 있다가 8월 1일에 정식으로 취임했다.

김(金)교수는 약리학 전공의 중진교수였으며 나와는 오래 전부터 교분이 있었다. 총장직을 맡아주셔야 하겠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사양하던 김(金)교수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김(金)교수는 88년 7월 31일까지 만 4년간의 총장 임기를 깨끗하게 마쳤다. 그동안 거센 학원문제 때문에 수고도 많았다. 만날 때마다 미안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사히 임기를 마치게 된 김(金)총장에게는 지금도 경의를 표하고 있다.


▲ 박하욱 총장 / [출처 ; 전남대 홈페이지]

광주(光州)를 방문할 때에는 빠짐없이 김(金)총장과 만나서 구회(舊懷)를 푸는 것이 하나의 재미로 되었다. 93년 5월 24일 오전에 나는 학술원회장의 자격으로 병환 중에 계신 박하욱(朴夏郁) 선생을 광주시 동구 장동(光州市東區壯洞)의 자택으로 문병한 일이 있었다. 박(朴)선생께서는 서울공대(工大) 교수를 거쳐 전남대(全南大) 총장을 두 번에 걸쳐 역임하신 우리나라 응용화학의 권위자이시며 학술원 회원으로서도 눈부신 활동을 하신 분인데 역시 연령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으신 것 같다.

93년 2월 25일은 김영삼(金泳三) 대통령께서 취임하시고 문민정부(文民政府)가 출범한 날이다. 취임식에는 모든 학술원 회원이 초청되었다. 박(朴)선생도 노구를 이끄시고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광주(光州)에서 올라오셨던 것이다. 그날 무리를 하신 것이 병환의 원인이 된 것 같아 더욱 송구스러움을 느꼈다. 박(朴)선생은 지나오신 일들을 재미있게 들려 주셨으며 특히 월계수(月桂樹)에 관하여는 남다른 지식을 보여주셨다. 자택정원은 여러 종류의 나무로 차 있었다.

점심때 김영인(金永寅) 전 총장, 의대학장, 병원장 등과 자리를 같이 하고 옛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84년 6월에 있었던 인사문제가 주요화제로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金)총장은 그때의 일을 소상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김(金)총장의 말씀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사이에 별로 차이가 없는 것이 재확인 된 셈이다.

식사 후 오래간만에 함께 광주(光州) 교외의 유적지를 답사하였다. 비교적 광주(光州)에는 자주 내려갔던 셈인데 이런 시간을 가져보기는 처음이었다. 김(金)총장은 옛적과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약리학 이외에 의사학(醫史學)을 공부하고 강의도 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옛 일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의대학장시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73년 어느 가을 날 아침 학장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 국회의원(國會議員) 사무소인데 오후 2시까지 와 달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용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오후에 와 보면 알 일이라고 했다. 약속시간에 찾아갔다. 낯모르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Y의원의 보좌관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더니 이력서를 건네주면서 이 사람을 서울의대 조교수로 임명하라고 명령조로 이야기 한다. 이력서의 주인공은 나도 알 만한 사람이었다. 도저히 의대 스탭으로는 적절치 못한 사람이었다. 교수임명은 학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 교실에서 하는 일이라고 설명하였더니, 대단히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학장이 하면 되는 일이지 왜 말이 많으냐고 했다. 어이가 없어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의원은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출타 중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학장실(學長室)로 돌아온 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대학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고사하고 너무나 예의가 없는 태도가 불쾌했다. 다음날 잘 알고 지내는 국회의원 친구에게 상의하였다. 이 친구는 어디엔가 연락을 취하더니 Y의원은 전연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라고 귀띔해 주었다. 나는 Y의원 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전번에 만났던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다음 일갈했다. 쓸데없는 일하면 Y의원에게 알리겠다고 하였더니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이력서의 주인공이 자기 친구인데 찾아와서 하도 조르기에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인사문제와 관련해서는 김(金)총장의 경우와 같이 감상어린 이야기도 있지만 인사문제로 인하여 생긴 오해도 여러차례 있었다. 궁지에 몰린 부하직원을 백방으로 노력해서 겨우 구해 주었더니 자기 인생을 망쳐놓았다고 우겨대는 사람도 있었다. 오해치고는 좀 지나친 오해였다.

기관의 장으로서 어려운 일의 하나가 인사문제라는 것은 당연하다. 제아무리 공정하게 처리했다고 해도 반드시 뒷말이 있게 마련이며 불평이나 불만이 따르게 된다.

모 명문대학의 총장을 지낸 K씨는 내가 서울대 총장시절에 총장이 된 분이다. 말하자면, 총장동창인 셈이다. 평소 나는 K씨를 존경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서울대에서 문교부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K총장과의 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직계자녀들에 대한 특혜입학(特惠入學)문제가 터진 것이다. 그것은 학내에서 시작하여 언론에 보도되었던 까닭에 문교부 장관으로서는 지극히 당혹하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K총장을 도왔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된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학년말이 되어 이 문제가 다시 살아났다. K총장은 사퇴할 수밖에 없다고 작심하고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85년 2월의 일이다. 나는 졸업식 후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였다.

K총장이 언제 사표를 냈는지 나는 모른다. 사대(私大)의 경우이니 이러한 인사문제는 재단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다. 더욱이 나는 그 해 2월 12일에 실시되었던 총선(總選) 6일 후인 2월 18일에 문교부를 떠났다. K총장의 사퇴가 표면화되기 전의 일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가. 2월 25일에 거행된 그 대학의 졸업식에서 K총장의 사퇴가 정부의 조작 때문이며 K총장을 옹호하자는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 학생시위는 수일간 계속되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민주화(民主化) 활동을 하는 총장을 탄압했다는 주장이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전직 장관인 내 자신이 집중적으로 성토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장관과 총장은 입장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 까닭에 이견(異見)이 있을 때가 허다하게 있게 마련이다. 특히 학원(學園)사태가 생길 때에는 그러하다. 그러나 제아무리 처지가 다르다 해도 우정(友情)마저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신조(信條)이다.

그런데 참으로 모를 일이 생겼다. 내가 문교부를 떠난 지 5년 후에 K총장은 나를 혹독하게 비난(非難)하는 내용의 글을 모 월간지(月刊誌)에 실었다. 뿐만 아니라 단행본(單行本)의 일부로 수록하여 출간하기도 하였다.

나는 지금도 그 진의를 모른다. 그분의 영달(榮達)에 지장을 줄까 염려하여 이번에는 더 이상 쓰는 것을 삼간다. 우리 주위에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 예상외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