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환경장관(蘇聯 環境長官)과의 만남 (161회)
  제19장 믿기 힘든 일들

가끔 구 소련의 자연관리(自然管理) 및 환경보건(環境保健) 장관이었던 보론쵸프(N. N. Vorontsov) 박사와의 만남이 회상된다. 91년 7월 8일 모스크바 환경처장관실에서 이루어졌는데 당시 주(駐)소련대사였던 공노명(孔魯明)씨도 배석하였다. 나는 환경처장관으로 임명된 후 얼마 안 된 때였지만 그래도 환경외교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었다. 환경외교에 관하여 나에게 큰 자극을 준 것은 장관으로 취임한지 수주일 만에 열렸던 한(韓)․일(日) 환경회의(環境會議)였다. 이 회의에 대하여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 때가 세 번째였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교대로 개최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회의가 열리기 전에 일본 대표단 4명이 인사차 나와 집무실로 찾아왔는데 지구환경(地球環境)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한다. 다음해에 있을 Rio회의에 대비하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부언했다.

경제대국이 된 일본(日本)으로서는 Rio회의를 십이분 활용하여 환경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잡아보겠다는 욕심이 생길만도 하다. 어쨌든 이들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여러 가지를 시사하였다. 나에게는 지구환경에 대하여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긴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환경에는 국경(國境)이 없고 한 지역이나 한 나라의 문제가 손쉽게 국제적 문제로 진전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환경문제 중에서도 국제적 협력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과제가 허다하게 있다. 특히 중국이나 소련과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서는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다.

나는 환경문제와 더불어 재소 과학자협회(在蘇 科學者協會) 창설 등의 일도 있고 하여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소련 환경장관과의 만남에서는 동북아시아의 환경문제가 중점적으로 거론되었다. 협의체(協議體) 구성에 관하여는 의견의 일치를 보기도 하였다. Vorontsov 장관은 대단히 박식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장관으로 취임할 때까지 7년 반 동안이나 ‘블라디보스토크’에 소재한 생태학연구소(生態學硏究所)의 소장직을 맡았던 경력이 있어서 우리나라, 북한, 일본, 중국 등의 환경 현황이나 문제점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초면이어서 그의 인품(人品)을 상세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추진력이 강한 학자출신 행정가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격의 없는 논의를 하였고 함께 텔레비전 토론에 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장래를 약속하면서 다음과 같은 ‘프로토콜’에 조인하기도 하였다.


PROTOCOL of the meeting between the Minister of Enviro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Minister of Nature Management and Environmental Protection of the USSR.

Consultations on environmental issues between the Minister of Enviro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Kwon, E-Hyock and the Minister of Nature Management and Environmental Protection of the USSR N.N. Vorontsov took place in Moscow on the 8th of July 1991.

Both sides exchanged views on environmental problems and recognized the need to solve them not only through national efforts but on the international level as well.

Besides cooperation in multilateral fora, bilateral relations give an opportunity to focus on specific problems in the solving of which the two countries could assist each other to their mutual benefit.

Such assistance inter alia may develop through direct contacts between industries, scientists and organizations of both countries supported by the Governments.

Both sides agreed that possible areas of cooperation are the following :
     - Protection of marine and coastal environment
     - Conservation of biological resources of North-East Asia and the Far East
     - Improvement of urban environment
     - Monitoring of the environment
     - Management of protected areas and other areas of mutual interest.

The idea of establishment of an international advisory body on ecological problems of the region with participation of the Koreas, the Soviet Union, China and Japan was raised at the meeting. The details will be discussed at a later stage.

It was agreed that possible form of cooperation as well as a programme of joint projects will be subject to further discussions.

Minister Kwon, E-Hyock extended an invitation to Minister N.N. Vorontsov to visit the Republic of Korea in convenient time. The invitation was accepted with gratitude. The date of the visit will be determined through diplomatic channels.

The meeting was held in the atmosphere of friendship and mutual understanding.

     Kwon, E.Hyock
Minister of Environment of the Republc of Korea
 
     N. N. Vorontsov
Minister of Nature Management and Environmental Protection of the USSR


귀국하고 얼마 안 되어 소련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91년 8월 19일이었다. 이날 오후 4시에 환경처의 주요업무를 대통령(大統領)에게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청와대(靑瓦臺)로 떠났다. 차중에서 라디오를 들으니 쿠데타가 일어났고 미하일 고르바쵸프 대통령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충격적인 뉴스였다. 공산당 골수파들이 일으킨 쿠데타인 것이니 고르비의 운명은 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모스크바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고르비 덕택이었다. 그는 소련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상 세계사(世界史(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노태우 대통령(盧泰愚 大統領)의 업적 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는 북방외교(北方外交)라고 하겠다. 북방외교(北方外交)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한소수교(韓蘇修交)라고 할 수 있다. 노(盧)대통령과 고르비는 3차에 걸쳐 정상회담(頂上會談)을 가진 바 있었다. 고르비의 실각은 어느 누구보다도 노(盧)대통령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고를 받으실 기분이 나겠는가 하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하기도 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소련 쿠데타가 머릿속을 메웠다. 약속시간보다 5분 늦게 대통령 집무실로 안내되었다. 대통령께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온후한 표정으로 맞이해 주셨다. 예정대로 보고를 마쳤다. 대통령께서는 착잡한 심정이셨겠지만 평상시와 다름없이 여유가 있어 보였다.

소련 쿠데타는 3일천하(天下)로 끝났다. 크림반도 휴양지 별장에 가 있던 고르비를 감금하고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워 야나에프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대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모든 국가 권한은 야나에프 대통령대행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國家非常事態委員會)’로 이양된다고 전해지기도 했었다.

3일춘몽(春夢)으로 막 내린 소련 쿠데타는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쿠데타를 불발(不發)로 막 내리게 한데 있어서 나는 두 사람에게 특히 경의(敬意)를 표한다. 한 사람은 러시아 공화국(共和國)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고, 다른 한 사람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다. 옐친 대통령의 용감한 모습은 전 세계인에게 감동(感動)을 주었다고 믿는다.
 
▲ 탱크에 올라가 쿠데타를 물리치자는 열변을 토하는 옐친

쿠데타가 터지자 불법(不法)이라고 외치고 고르비가 되돌아와야 한다며 모든 러시아인은 쿠데타를 물리치는 대열(隊列)에 참가하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는 세계의 영웅(英雄)이요, 구국(救國)의 영웅(英雄)으로 등장했었다. 급진주의자(急進主義者)로서 고르비와는 정적(政敵)이었지만 조국을 구하고 친구를 구하는데 있어서 옐친은 이제까지의 인상과는 달리 결연(決然)하고 의연(毅然)한 자세를 보였다. 탱크 위에서 절규하던 그의 텔레비전 영상(映像)이 지금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그의 위대성을 다시 한 번 보였다. 쿠데타가 발생하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외치고, 하루가 지나자 쿠데타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나는 지나치지 않느냐고 내심 걱정하기도 하였다.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 그의 외침이 소련 국민들에게 큰 힘을 주고 쿠데타를 밀어내는데 십이분 작용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정치는 어려운 것인가 보다. 고르비와 옐친은 끝내 헤어지고 말았고 부시 대통령은 대선(大選)에서 패(敗)하고 말았다. 한편 나와 보론쵸프 장관 사이에 맺어졌던 프로토콜이 이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낡은 사문서(死文書)로 돼버렸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여러 정책이나 과제는 현재도 변함없이 값진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보론쵸프 장관에 관한 소식도 끊어졌다. 그는 쿠데타 직후 소집된 각의(閣議)에서 쿠데타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반대했던 대표적 각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에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많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 또 있다. 러시아가 핵(核)폐기물을 동해(東海)에 투기한 것이다. 93년 10월 17일 상당한 양의 핵(核)폐기물을 투기하였는데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Green Peace 등 국민 환경 보호단체들로부터 즉각 중단하라는 거센 항의를 받았다. 러시아는 10월 22일 2차 투기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국제적 압력에 굴복하여 이 계획을 취소한다고 예정일 전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조치가 영구한 것인지에 관하여는 아직도 의문점이 많다. 어쨌든 방사성 폐기물을 동해(東海)에 투기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러시아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이 직접 영향을 받은 동해(東海)와 국동지역 해역에는 지난 66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6백85조 베르렐(방사능 단위)의 핵(核)폐기물이 투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러시아의 해양투기를 비난하던 일본이 93년 10월 현재로 러시아의 투기량 3백70억 베르렐의 10배가 넘는 4천억 베르렐 정도의 방사성 폐기물을 매년 동해(東海)에 투기해 왔다고 하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행한 것은 일본이 투기한 폐기물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론이다.

 
  인사 문제(人事 問題) (160회)
  교수직(敎授職)과 서리직(署理職) (1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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