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고향은 대구 달성공원이다. 세상에 나와 내 우렁 찬 첫 울음을 달성공원 옆 시장 북통(北通 / 현 북로)에서 터트렸으니, 몸과 마음의 고향 모두 달성공원인 셈이다. 1932년 3월 25일 달성공원 근처에서 태어난 나는 공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호흡했고, 어린 시절에는 내내 달성공원에서 뛰어놀았으며, 학창시절에는 또한 그곳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깊은 사색에 잠기기도 했으니 달성공원은 진정 내 마음의 고향임에 틀림없다.
산에 올라가 큰 짐승을 두 마리 잡는 꿈을 꾸신 뒤 나를 낳으신 어머님(박순금朴順今:1907년 12월 26일 경남 동래군 사하면 당리 출생, 199년 3월 10일 돌아가심)은 어렵지 않은 살림살이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갔다.
본래 합천군 출신의 아버지(이덕상 李德祥:1906년 12월 30일 경남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출생, 합천 이 씨 첨사공파 33세손, 1964년 6월 22일 돌아가심)는 결혼 후 대구에 정착했는데, 32년 내가 태어날 땐 정미소를 경영하고 있었기에 우리 집은 비교적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대구시내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던 사람을 조합원으로 하는 양곡조합 이사장은 동암(東唵) 서상일(徐相日) 선생이 맡고 있었는데 동암 선생의 사무실은 대구시내 달성공원 앞 조양회관에 있었다.
동암 선생은 1910년대에 광복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펼쳤는데, 가끔 우리 집에 들러 아버지와 뭔가 밀담을 나누고 돌아가시곤 하여 나는 몹시 궁굼하게 여겼었다. 그 의문은 해방이 되고 곧 풀렸다. 해방 후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바에 의하면 동암 선생은 일제시대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는데, 아버지께서도 동암 선생을 만나실 때마다 큰돈은 아니지만 독립운동 자금을 드렸다는 것이었다.
동암 선생은 1945년 광복 후 송진우, 장덕수 선생등과 함께 한국민주당을 창립하였으며,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장과 1960년 사회대중당의 대표총무위원을 지내시기도 하였다.
3남 1녀의 차남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민 나는 갓난아기 때는 무척 순했다고 한다. 얼마나 순했으면 잠잘 때 숨소리도 없어 어머니께서 혹 죽지나 않았는지 깜짝 놀라 내 코에 귀를 갖다 대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꽤 활달한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어린 나는 아버지의 큰 자전거를 몰래 끌고 나가 하루 종일 타고 다니다가 양쪽 무릎이 상처투성이가 돼 들어오기도 했고, 잠자리채를 갖고 나가면 해가 져 컴컴해져도 돌아오지 않가 가족들이 찾아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씨름을 할 때는 언제나 앞장서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때 달성공원은 정말 아름다웠다. 여름이면 우거진 숲에서 매미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비라도 올라치면 개구리의 합창이 발길을 더욱 끌었다. 겨울이 되면 하얀 눈송이는 새겨진 발자국이 다칠까봐 조심스레 내렸고, 바람이라도 불면 공원은 온통 눈보라로 뒤덮였다. 이토록 아름다웠으니, 난 달성공원의 품에 안겨 자랄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 내 키는 큰 편이었다. 아버지는 동기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나를 만 여섯 살이 되던 해 3월에 집 근처의 수창국민학교에 입학시켰다. 취학 적령기보다 1년이 빨랐으나, 아마 생일이 2월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비록 초등학교였지만, 당시에는 시험을 치른 뒤 입학했다. 필기시험을 아니고 구두시험이었다.
유복하게 자랐기에 난 성격이 명랑한 편이었다. 몸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말랐지만, 힘은 좋은 편이라 운동은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해마다 가을 운동회 때는 100미터 달리기 시합에서 언제나 1등을 했고 특히5‧6학년 때 담임이었던 나카노[中野] 선생님은 스모를 좋아해 자주 시합을 시켰는데, 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날쌘 동작으로 매번 1등을 할 정도로 씨름에는 소질이 있었다.
내 기억에 일본인 선생으로서는 좋은 인상을 준 나카노 선생을 80년대 초 우리 동창들이 한국으로 초청해 관광을 시켜드린 적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