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상도동은 김동영(金東英) 의원, 동교동은 이용희(李龍熙) 의원을 내세워 단일화 및 후보·총재 역할 분담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리고 9월 19일에는 김영삼 씨가 후보와 총재를 분리하는 내용의 역할 분담론을 공식 제기했다. 자신을 후보로, 김대중 씨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침내 10월 10일 김영삼 씨가 제일 먼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3일에는 선거대책을 맡은 6인 소위를 구성, 독자 출마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김대중 씨도 10월 28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두 김 씨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역사의 시곗바늘은 다시 1980년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10월 27일 국민투표에 부쳐진 개헌안은 93.3%라는 높은 지지율로 최종 확정됐다. 개정된 헌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총강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이 명시됐고 국회의 국정감사권이 부활되었으며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통령의 비상조치권과 국회해산권은 폐지되었다.
그리고 민주당을 탈당한 김대중 씨는 11월 12일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다음해 4·29 총선에서 황색바람을 일으켜 제1야당으로 부상했던 ‘평민당’의 출발이었다. 아울러 3김씨 중 1명인 김종필 씨도 미국에서 돌아온 뒤 조심스레 정세를 관망하다가, 1987년 10월 30일에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이로써 3김씨는 1980년대 초반에 이어 다시 대통령 선거에 나서게 됐다. 물론 이는 정부·여당이 바라는 바였다. 표가 분산되면 될수록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할 것은 뻔한 이치였다.
1987년 겨울 정국은 바야흐로 대선 정국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라는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야당은 처음부터 어려운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양 김씨의 과열된 경쟁은 국민을 크게 실망시켰다. 결국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한국 정치의 뿌리 깊은 병폐가 두 김 씨 사이에서 다시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경쟁은 중재할 수가 없었다. 6·29 선언이 있은 지 며칠 후인 7월 15일 나는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 회장 자격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김 추기경도 내게 걱정하는 말을 했다.
“두 김 씨가 꼭 단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그분들에게 단일화를 설득했으나 도저히 양보할 기미가 없습니다. 더 이상 그 문제를 말하기는 거북할 지경입니다.”
당시 김 추기경은 불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던 김대중 씨에게 먼저 “이번에는 양보하고 5년 후에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권유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
|
| ▲ 포옹은 했지만... / 김대중 씨가 사면복권되어 김영삼 씨가 동교동을 찾아가 포옹하고 있다 |
|
그래도 일반 국민들은 끝까지 후보 단일화에 기대를 했으나, 결국 두 김 씨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대선 바람은 우리 국민당에도 불어왔다. 소속 의원들로부터 내게 대선 출마 압력이 들어왔다.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정권 창출을 목표로 하는 공당으로서 대통령 후보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특히 대통령 후보를 못 낸 정당의 이름으로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은 지극히 불리한 일이다.’
더구나 일부 의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내가 대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왔다. 그러지 않을 경우 내년의 국회의원 선거 때 당선되기 위해서라도 부득이 당적을 옮길 수밖에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단호했다.
‘이번 선거야말로 국민 여망에 따라 군정軍政을 종식시키고 문민정치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이다. 때문에 야권은 마땅히 하나로 합쳐도 부족한 판에, 둘 셋으로 나뉘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기왕에 야권이 나눠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제2야당인 국민당까지 대선에 뛰어들어 야권을 더욱 분열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국민의 기대를 배신하는 행위이다. 국민당은 차라리 이런 과도기에 착실하게 당의 내실을 기하는 것이 앞날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같은 의견에 동조하는 의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바람은 엉뚱한 데서 불어왔다. 김종필 씨의 ‘신민주공화당’으로부터 불어온 것이다. 알다시피 국민당은 일부 소장파를 제외하곤 과거 공화당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김종필 씨가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자 몇몇 의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년 총선을 위해서라면 공화당과 합당하는 편이 낫다.”
“말도 안 된다. 만일 누구든 유신 잔재인 김종필 씨 쪽에 합류하기만 한다면, 나는 그날로 당을 떠나겠다.”
당내 여론은 완전히 두 갈래로 나뉘었다.
사실 나도 김종필 씨가 민주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외국에 나가 있다가 이제야 미국에 돌아와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아무튼 국민당은 내분에 휩싸여 있었다. 김종필 씨는 음으로 양으로 우리 당 의원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빨리 내 입장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