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2월 25일, 7234명의 시국 사범이 석방·사면되면서 제6공화국이 출범했다. 대통령 5년 단임에 국회의 국정감사원이 부활됐고, 당장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국가 대사를 앞두고 있었다.
1988년이 되자 바로 13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런데 13대 총선은 소선거구제로 법이 바뀌었기에 나로서는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6년 만의 소선거구제 채택은 사실 민정당으로서는 실수였다. 3월 8일 민정당은 소선거구제 법안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날치기로 처리해 버렸다. 이유는 한마디로 정세 판단을 잘못한 자만에 있었다. 당시 민정당 채문식 대표와 심명보(沈明輔) 사무총장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은 민심과는 이반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너무 많은 의석을 낼까 걱정됩니다.”
결국 판단 착오로 소선거구제를 택했던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야당이 중선거구제를 원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김영삼 민주당 대표가 설악산으로 산행을 하고 온 후 갑자기 태도를 바꿨고, 따라서 야당조차 의견이 일치되지 않은 가운데 민정당은 소선거구제를 날치기로 통과시켜 버린 것이다.
아무튼 나는 대구 달서구에 다시 출마했다. 비록 국민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이었지만 내가 떨어지면 국민당도 끝장이었기에 더욱 열심히 뛰었다. 당시 선거법은 국회의원을 1명도 내지 못한 정당은 자동적으로 해체하기로 돼 있었다.
4월 26일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철저한 금권·행정과 지역감정 선거였다. 호남에서의 완패를 예상한 여당은 대구·경북 지역에서라도 전원 당선시키기 위해 통·반장이 선거운동에 앞장서는 등 철저하게 행정력을 총동원했다. 심지어 내 선거운동원을 사복경찰이 미행해 꼼짝도 못하게까지 했다. 따라서 지역 출신인 노태우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대구에서는 민정당이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전력을 다했지만 철저한 행정 선거로 민정당 후보에게 패했고, 이로서 국민당은 해체되고 말았다. 선거 직후 나는 대구시민회관 옆 광장에서 부정선고로 인해 억울하게 낙선한 목요상(睦堯相 의원ㆍ그 후 선거구를 자신의 고향인 동두천東豆川으로 옮겼음) 등 야당 후보들과 함께 부정선거 규탄대회를 갖고 울분을 삭이기도 했다.
선거에 패한 나는 서울로 올라와 정동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얻어 그곳에서 지난 26년간의 정치 생활을 되돌아보며 독서와 집필로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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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대 총선결과는 여소야대였다. 제1야당이 된 평민당 김대중 총재의 인터뷰 기사 (동아일보. 1988. 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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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월 30일 개원한 13대 국회는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였다. 때문에 정국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7월 2일 정기승(鄭起勝)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서 파란이 예고됐다. 노태우 대통령은 과감한 북방정책을 표방하며 ‘7·7 선언’ 등으로 정치의 가닥을 잡고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지만,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7·7 선언이랑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일컫는 말로, 민주화로 인해 재야와 학생들 간에 부는 통일의 바람을 정부 주도로 추진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였다.
남북 동포 상호 교류, 해외 동포의 자유로운 남북 왕래, 이산가족 서긴 왕래 및 상호 방문, 남북간 교역, 비군사적 문자에 대한 우리 우방과 북한의 교역 불(不)반대, 남북간 소모적 경쟁과 대결 외교의 종결, 북한과 우리 우방과의 관계 개선 등 모두 6개 항으로 된 이 선언은 후일 공산권과의 수교라는 성과를 낳기도 했으며, 또한 후일 김대중 정권이 추진한 햇볕정책과도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당시 정국은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여야 간 힘을 합쳐야 하는 일도 있었다. 바로 88올림픽이었다.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16일간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올림픽에는 160개 IOC회원국에서 1만 36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 237개의 금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우리로선 단군 역사 이래 최대 행사였다.
또한 세계적으로 동·서 화합의 장이기도 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가 불참했고, 1984년 LA올림픽도 공산권이 불참한 반쪽 대회였다. 때문에 12년 만에 이념을 초월해 전 세계가 거의 모두 참여한 서울 올림픽은 그만큼 의미가 있었다. 비록 남북한 단일팀이 구성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은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종합 4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