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그해 가을부터 국회를 출입했다. 내가 국회를 출입하면서 첫 번째로 목격한 가장 인상적인 사건은 ‘협상선거법’ 통과였다.
3대 국회 말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여야가 각각 제안한 개정 선거법안은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자유당은 언론규제 조항의 신설을 강력히 추진했고 야당인 민주당은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투⁃개표 시 야당 참관인을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는데 역점을 두었다. 자유당이 주장하는 언론규제 조항이란 어느 특정인을 당선 또는 낙선시키기 위해 보도 또는 논평을 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와 같이 자유당의 목적이 언론 규제에 있었던 반면 민주당의 초점은 부정선거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최대한 마련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는 물론, ‘3인조ㆍ5인조 투표’ 등 부정선거가 극심했던 터라 민주당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투⁃개표 시에 야당 참관인을 두어 투표장에서의 무더기 투표, 개표장에서의 환표를 막는데 힘을 기울여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언론규제 조항에 대해 언론계뿐만 아니라 이철승 등 민주당 내 일부 신파의원들의 반대가 심해 협상선거법이 통과되기까지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시 협상 선거법에 대해 민주당 구파는 언론규제 조항을 수용하더라도 부정 투⁃개표 방지를 위해 협상선거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야당에 유리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신파는 이에 반대했다.
그때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민주당 대표인 조병옥 박사의 결단력과 리더십이었다. 투개표 부정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야당 입후보자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조병옥 박사는 언론과 신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협상선거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1958년 1월 1일 협상선거법이 통과되는 날 밤 정치적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되어 “우리가 알아서 통과시키겠습니다. 박사님은 본회의에 나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권유하는 유진산, 김의택 의원 등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본회의장 야당 의석 제일 앞자리에 앉아 손을 번쩍 들고 뒤를 돌아보며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하도록 독려하던 조병옥 박사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협상선거법이 통과되어 전 언론이 일제히 민주당을 공격했다. 특히 신파와 가까웠던 <경향신문>은 협상선거법이 통과 된 후 조병옥 박사가 이기붕, 장택상과 함께 술병을 들고 있는 장면을 시사만화로 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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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5월 2일 치러진 제4대 민의원 선거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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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58년 5월 2일 실시된 민의원 선거결과, 총 233석 중 자유당 126석, 민주당 79석, 통일당 1석, 무소속 27석으로 나타났다. 특히 야당은 새 선거법 시행으로 부정행위가 상대적으로 잘 통하지 않는 도시 지역에서 많은 의석을 차지하여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개헌에 필요한 3분의 2는 156석, 자유당을 126석에 불과). 결국 조병옥 박사의 통찰력으로 야당은 쿤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4대 국회의원 선거는 야당의 투개표 참관에도 불구하고 농촌지역에서는 여전히 부정선거 투성이었다. 자유당 부정선거의 대표적 사례가 경북 영일을구 선거와 그 후 치러진 재선거였다. 당시 경북 영일을구에서는 불법과 폭력이 난무한 가운데 자유당의 김익로 씨가 당선되었으나, 이에 민주당의 김상순 씨가 당선무효 소송을 내 결국 9월 19일 재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나 이 영일을구 재선거는 노골적인 부정선거로 이 나라 선거 사상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나는 재선거를 취재하기 위해 영일로 내려갔다. 내 눈에 비친 재선거는 한마디로 불법이 총동원된 원천적인 부정선거였다. 손에 흰 붕대를 감은 깡패들은 무리지어 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특히 야당 측 운동원과 취재기자들에게 공갈,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투표소마다 유권자들이 번호표를 일일이 검사한 후 투표를 허락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무더기 투표, 대리투표, 릴레이식 투표 등 온갖 부정이 난무했다.
투표가 끝나자 포항 대송초등학교에서 1천여 명의 유권자들과 수십 명의 무장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표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러한 공포분위기 속에서도 유권자는 냉정할 정도로 공정한 투표를 했다. 그토록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부정선거가 감행됐는데도 막상 뚜껑을 열자 처음부터 자유당 공천의 김익로 후보가 민주당의 김상순 후보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