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나는 의장으로서 원만한 의사 진행을 위해서는 황 총리의 답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그건 대통령이 이미 정의를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총리 역시 간단하게 ‘대통령의 생각과 같다’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 사안이었다. 대문에 나는 총리에게 말했다.
“어차피 대정부 질문에서도 또 나올 질문이니 총리는 박 의원의 의사 진행 발언에 대해 답변을 하시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황 총리 역시 내 말에 따라 답변을 하기 위해 발언대로 가려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여당 쪽에서 거세게 항의하는 게 아닌가.
“총리는 의사 진행 발언에는 답변할 필요가 없으니 하지 마시오.”
김영구 총무 · 황명수(黃明秀) 총장 · 이성호(李聖浩) 부총무 등은 책상까지 치며 아우성이었다.
국회의장은 어디까지나 의장이다. 때문에 외국의 국가원수도, 심지어 우리나라 대통령도 국회에서 연설을 할 때면 사회자인 국회의장 자리보다 아래에서 연설을 한다. 또한 사회자의 말에 따라 움직인다. 국가원수도 국회 내에서는 국회의장의 말을 듣는 게 순리인데, 아무리 여당 의원들이 지지(?)하고 있다 해도 총리가 의장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분명히 정부·여당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던 옛날 국회의 폐습에 젖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황 총리에게 다시 재촉했다.
“총리는 의장의 말을 들으시오. 나와서 답변을 하시오.”
그러나 황 총리는 여당 의원들과 내 말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앉았다 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었다. 본회의장은 갑자기 소란해졌다. 여당은 여당대로 소리를 지르고, 야당도 야당대로 맞고함을 지르는 등 혼란해졌다. 황 총리의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다 못한 야당의 김종완(金鍾完) 의원은 황 총리 자리 앞까지 가서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 의장 말은 안 듣고 여당 눈치만 보는 거요?”
|
|
| ▲ 국회본회의장에서 의장석의 필자와 단상의 황인성 국무총리 |
|
결국 황 총리의 어정쩡한 자세 탓에 나는 본회의 정회를 선포했다. 정회 때 나는 단상을 내려와 안타까운 심정으로 총리에게 한마디 던졌다.
“거…… 간단히 한마디만 하면 될 텐데 뭘 그러시오.”
아무튼 정회 후 30분 만에 속개된 본회의에서 우선 여야의 총무단에게 의사 진행 발언을 하게 했다. 이때 여당 총무는 총리의 의사 진행 발언에 반드시 답변할 이유가 없다고 강변했다. 물론 그것을 과거 잘못된 국회의 관례를 기준으로 했을 때였다. 그러나 이제는 ‘여당의 국회의장’은 사라진 판이다. 때문에 예전에 그런 예가 없더라도 국회의장의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한 사회는 의장의 고유 권한인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 진행 발언에 대해서도 의장의 판단에 따라 행정부에서는 답변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날 본회의의 소란은 내가 기어코 황 총리에게 답변을 하도록 해 황 총리가 답변을 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황 총리의 답변은 뻔한 내용이었다.
“대통령께서도 말씀하셨듯이 12·12 사태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테타적인 사건이며, 다시는 이 나라에 되풀이돼선 안 될 불행한 과거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나는 안타까웠다. 그 말은 박계동 의원이 아니라도 어차피 다른 야당 의원이 언젠가는 반드시 질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총리는 어차피 해야 할 답변이었다. 때문에 회의 진행상 총리나 정부·여당에도 결코 나쁠게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여당은 왜 의장이 여당 말을 듣지 않고 야당 요구만 듣느냐고 불평을 했으니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이었다.
총리의 답변이 끝난 후 나는 의원석과 국무위원석을 향해 한마디 했다.
“총리뿐 아니라 장관들도 앞으로 국회에 나와 국회의장이 답변을 하라고 할 때에는 반드시 나와서 답변을 하세요. 국회의장은 개인 국회의장이 아니라, 이 나라 국회의 의장입니다.”
이어 대정부 질문에 들어가선 별 탈 없이 잘 진행됐다.
그날 저녁 TV뉴스에서는 이 일이 크게 보도되었다. 내가 총리에게 손짓을 하며 “답변하세요” 하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됐고, 다음 날 신문에도 ‘국회의장―여당 마찰’ ‘의장 중립에 여야 공수 교대’라며 화제가 됐으며, 나의 ‘대한민국 국회의장론(論)’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