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 선거 결과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평생의 염원인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 교체를 경험하게 되었다.
최종 득표수는 김대중 후보 1032만 6275표(40.3%), 이회창 후보 993만 5718표(38.7%), 그리고 이인제 후보 492만 5591표(19.2%)의 순이었다. 이인제 후보는 결국 5백만 표를 얻는 데 그쳐 끝내 꿈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으나 후회 없는 장정長征이었다.
혹자는 결국 이인제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낳았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나는 당시 이회창 후보가 아량을 발휘해 김영삼 대통령을 내쫓지 않고 이인제 후보도 포용했더라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비록 대통령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국민신당의 패기는 꺾이지 않았다. 국민신당이 조직과 돈도 없는 불모지에서 5백만 표를 얻은 것은 정말 값진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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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경향신문 1997. 12. 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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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 1998년 2월 25일 제15대 김대중 대통령이 정식으로 취임했으나 김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출범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야당이지만 과반 수가 넘는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이 처음부터 협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첫 번째 격돌은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 문제에서부터 빚어졌다. DJP 연합을 대선의 근본적인 패인으로 본 한나라당은 그 연장선인 DJP 연정에 대해 불만이었고, 처음부터 연합정권인 김대중 정부의 취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한나라당은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를 끝까지 반대했고,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해 대통령 취임식 날 오후에 열린 본회의에도 불참함으로써 국회를 유회시켰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정부는 새로운 내각도 구성하지 못한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헌법상 대통령이 신임 총리의 제청을 받아 내각을 구성해야 하는데 총리가 비준을 받지 못해 장관의 임명 제청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임 대통령이 선거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미 ‘김종필 총리’를 결심한 마당에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국회를 거부하며 새 정부의 출범 자체를 막는 모습은 누가 봐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당은 의원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한 ‘크로스보팅 방식’을 최종 당론으로 채택했다.
그리고 2월 27일, 총리 인준 협조를 위해 개최된 청와대 영수회담에서도 나는 나와 우리 당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날 회담에서 나는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국정 공백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여야 모두 당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대국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같은 야당인 한나라당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총리 인준에 반대하던 당당히 국회에 들어가 표결을 통해 당론을 관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김대중 대통령은 “한나라당은 취임식 날 아침에는 축하를 해놓고 오후에는 총리 인준을 위한 본회의를 거부했다. 지난해 외환 보유고 36억 불밖에 되지 않던 국가 부도사태를 막아 이제 겨우 2백억 불 보유로 고비를 넘어서고 있는데, 야당의 비협조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제 신용도가 추락하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라며 섭섭해했다.
내가 극한 대치를 거듭하고 있던 여당과 한나라당의 중재를 자임하고 나섰지만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3월 2일, 우여곡절 끝에 총리 임명 동의안 비준 표결이 간신히 이뤄지긴 했으나 한나라당의 상당수 의원이 백지투표를 하는 것이 드러나 자민련과 국민회의가 이를 국회법상 ‘무기명 비밀투표 위배’라며 투표를 중단시킴으로써 끝내 임명동의안 처리가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김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김종필 총리서리 체제를 택했고, 위헌 시비를 피하기 위해 고건 전임 총리의 제청을 받는 기형적인 방법으로 내각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