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대치 속에 IMF 환란의 원인 규명과 경제위기 진상 조사를 위한 경제 청문회 개최가 이슈로 떠올랐으나 국정조사 계획서 자체가 날치기로 처리되어 야당은 처음부터 무효라고 주장하고 불참 방침을 굳혔다.
한나라당이 끝내 불참함에 따라 한 달여간에 걸친 국회의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특위’는 여당만의 반쪽 청문회라는 원초적 한계로 인해 국민의 기대에 크게 미흡한 채 많은 과제를 안고 끝나고 말았다.
외환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가려 그 같은 국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 아래 열렸던 경제청문회가 진실 규명은커녕 오히려 의혹만 부풀린 채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를 지켜본 나는 청문회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의원들의 철저한 준비와 효율적인 운영, 신문에 응하는 증인들을 진지한 자세와 적극적인 협조도 필요하지만 여야가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재선할 수 있도록 국회 청문회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여야가 정쟁과 대립을 겪은 끝에 가까스로 3월에 국회가 소집되었으나 여야는 국회를 팽개친 채 3월 30일에 실시되는 서울 구로을구, 경기 시흥의 국회의원 재·보선 및 경기 안양시장 보선에서의 승리를 위해 당운을 걸고 총력을 기울였다. 여야는 경제난에 시달리는 국민은 아랑곳없이 지나치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며 사생결단식으로 선거를 치러 그만큼 후유증도 컸으며 재·보선 제도의 개선 목소리도 높아졌다.
3·30 재·보선에서의 탈법·편법 시비로 여야 간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4월 7일에는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서상목 의원은 97년 대선 때 여당인 한나라당이 국세청 간부들을 동원하여 불법적으로 대선자금을 모금했다는 이른바 ‘세풍사건’을 주도한 혐의를 받아왔다.
정치권은 7개월여 동안 ‘서 의원 문제’로 이른바 방탄 국회를 다섯 차례나 열면서 국민으로부터 정치 불신을 받다가 4월 7일에서야 체포동의안이 표결에 부쳐졌으나 예상을 뒤엎고 부결됨으로써 정국에 파장을 몰고 왔다.
재적 의원 297명 가운데 292명이 참석한 이날 표결 결과는 찬성 136명, 반대 145명, 기권 7명, 무효 4표로 나타났다. 동의안 가결을 추진해 온 국민회의와 자민련 소속 의원 중 토표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156명이므로 공동 여당 의원 가운데 적어도 20명이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한 셈이 되었다. 여권은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가장 큰 원인이 내각제를 둘러싼 두 여당간의 갈등에 있었다는 것으로 진단하고 위기에 처한 국민회의와 자민련 간의 공조 체제를 복원하는 데 주력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동의안 부결 직후 국민회의 조세형(趙世衡) 총재 권한대행과 한화갑(韓和甲) 원내총무를 경질하고 권한대행 후임에 김영배 상임고문을 임명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는 4월 9일 회동을 갖고 내각제 개헌 논의를 8월 말까지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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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회의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 한화갑 총무 등 당 3역 / 그러나 이들은 서상목 체포동의안 부결로 경질되가 김영배 의원이 총재권한대행으로 임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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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후 DJP 합의로 내각제 논의는 일단 유보되었으나 내각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두 여당의 공조는 언제든지 깨줄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선거 부정 시비 등으로 DJP 공동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커져가는 가운데 ‘국민의 정부’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고관 집 절도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절도사건 피의자 김강룡(金江龍)이 유종근(柳鍾根) 전북도지사의 서울 관사에서 거액의 달러 뭉치와 귀금속을, 배경환(裵京煥) 안양 경찰서장 안방에서 거액의 현금 뭉치를, 또 김성훈(金成勳) 농림장관의 집에서는 고가의 미술품을 훔쳤다고 폭로하였다.
김강룡의 폭로는 정치권에도 파문을 일으켜 야당은 국회 상임위 소집과 국정조사권 발동 검토 등을 주장하여 신속한 진상 규명을 정부에 촉구했고, 여권은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사회 불안을 유발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악의적 의도라며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등 여야의 공방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고관 집 절도사건은 김강룡이 주장한 내용들이 일부 거짓으로 밝혀지며 법정으로 넘어갔지만, 이 사건은 국민의 정부와 우리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킨 계기가 되었다.
국민의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점차 심화되어 가는 가운데, 공동여당은 또 한 번 국회에서 여야 격돌 속에 변칙으로 의안을 강행 처리함으로써 국민을 허탈케 했다. 5월 3일 밤 공동 여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을 날치기로 처리했다.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만도 네 번째로 수적 우세를 앞세워 날치기를 강행한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여당이 추구하고 내세우는 정치 개혁의 본질과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날치기로 통과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발효되고 5월 24일 17개 부처 각료 중 11명이 교체되는 대폭 개각이 이루어졌다. 사실상 김대중 정권 2기 내각이 출범한 것이다. 그러나 몇몇 부처장관 인사는 국민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김태정(金泰政) 검찰종장의 법무부 장관 기용은 야당 등으로부터 거센 비판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김태정 신임 법무장관은 총장 재임 시 발생한 대전 법조 비리 사건 및 이에 따른 심각한 항명 사태 속에서 국회에서 탄핵소추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총장으로 재임할 때 검찰의 권위와 위상이 훼손되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터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