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인 24일 새벽 나는 한국에서 힘 께나 쓴다는 사람 300여 명을 모아 국회 경위 옷을 입혀 덕수궁에 집결시켜 놓은 것을 확인했다. 이 사실은 당시 국회 사무차장 비서관으로 연대 정외과 동문인 최기연 씨가 귀띔해준 것이었다.
나는 급히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인 조병옥 박사를 찾았다. 조 박사는 당시 본 회의장 뒤 별관 사무실 2층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그쪽으로 가다가 계단 밑에서 마주친 치안국 특수정보과 국회담당 이 모씨는 날 은근히 협박했다.
“이 형이 무엇 때문에 지금 조 박사를 찾아가는 지 알고 있소. 지난번 영일선거 때도 문제가 됐다 살아났는데, 이번에는 정말 몸 조심 해야 할 거요.”
그러나 그렇다고 내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기에 계단으로 그대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소리쳤다.
“큰 일 났습니다. 지금 덕수궁에 무술경위 300여 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아침이 되면 그들이 본회의장으로 난입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본회의장에서 내쫓기는 것보단 차라리 농성을 풀고 침구를 치우고 본회의장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의사진행 발언을 얻어 시간을 끄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러는 동안 언론에서 무술경위 급조 등 자유당의 음모를 계속 보도하다보면 뭔가 정치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마침 그 자리에는 곽상훈, 박순천 씨 등 최고위원들도 함께 있었는데, 내 말을 듣고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게 좋겠어!‘
|
|
| ▲ 보안법 파동 때 사복경관에게 포위 된 조병옥 박사를 취재하고 있다 / 조 박사를 부축하고 있는 조승민 비서 뒤에서 (이명동 사진부장 촬영) |
|
그 자리에서 내 의견을 수용한 그들은 곧 본회의장으로 내려가 침구를 깨끗이 치우고 책상을 한쪽으로 정리한 뒤 의자에 앉아 10시 개회를 기다렸다. 그러나 자유당이 계획을 바꿀 리가 없었다. 오전 9시 40분 쯤 됐을까. 갑자기 사방으로 나 있는 본회의장 문이 열리면서 무술경위들이 물밀듯이 쏟아져들어왔다. 마치 범법자를 소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국민들이 뽑은 선량들인데 저렇게 까지 무자비하게 밖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 이놈들아. 도대체 여기가 어딘데.......”
찢어질 듯 카랑카랑한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박순천 여사가 양팔을 무술경위들한테 잡힌 채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도대체 이런 국회가 어디에 또 있을까?’
그 처참한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해 계속 눈물을 흘렸다. 결국 민주당 의원들을 의사당 복도와 지하에 있는 식당 사이의 좁은 공감에 감금시켜 놓은 채, 자유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날치기로 보안법을 통과시켜버렸다. 정권 말기의 전형적인 폭거였다. 나는 그 당시 이것이 바로 자유당이 ‘종말로 가는 전주곡’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1959년으로 들어섰어도 보안법 파동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야당에서는 ‘보안법 반대 국민 총궐기 대회’를 강행키로 결정, 정국은 급속히 냉각기로 들어서게 되었다.
조병옥 박사는 그래도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 없다’는 신념으로 국립의료원에 입원중인 이기붕 국회의장을 방문하여 비밀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기붕 의장은 “유석(조병옥의 호), 나는 몸이 약해서 안 되겠으니 유석이 대통령을 잘 보필해 드리면 좋겠소”라고 말하면서 조병옥 박사에게 대통령을 한번 만날 것을 제의했으며 조병옥 박사가 이를 수락함으로써 1월 말 이승만 대통령과 조병옥 박사의 영수회담을 갖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