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이기붕 의장은 “선이 굵고 결단력과 리더십이 강한‘ 조 박사를 인간적으로 좋아했으며 또한 마음속으로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도 정당은 다르나 ’유석 정도면 내 뒤를 이어도 안심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을 내심 하고 있었으며, 이 의장도 이승만 대통령의 그러한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 무렵 이재학, 김진만 씨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당 온건파와 내각제를 정강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는 민주당의 유진산, 김의택, 서범석, 유옥우 의원 등 구파는 “헌정 중단 없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각제 개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하에 개헌을 추진하기 위한 물밑교섭까지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당의 정강정책이 내각책임제라 해도 정권을 잡고 난 후에 내각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민주당 신파와 임철호, 장경근 의원 등 자유당 강경파의 집요한 반대로 개헌협상은 무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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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 조병옥 민주당 당수의 영수회담을 합의한 이기붕과 조병옥의 회동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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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안타깝게도 1월 말에 열릴 예정이었던 이승만 대통령과 조병옥 박사의 회담은 자유당 강경파의 훼방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영수회담이 열리는 날 아침, 갑자기 경무대 박 모 비서관이 조병옥 박사 쪽에 이승만 대통령의 스케줄이 변경됐다고 통보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대통령에게는 조 박사가 갑자지 지방 출장을 가는 바람에 조 박사 쪽에서 취소했다는 거짓 보교를 했다.
나는 이 사실을 조 박사의 조승민 비서관으로부터 들어 알게 되었다. 정말 한심한 일이었다. 나는 그때 대통령이 민심의 소재를 정확히 알려면 두루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저토록 비서실에서 장난치는 것도 모르고 있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정치 지도자란 항상 사람을 올바로 써야 하고, 또 그 후에도 계속 올바르게 관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바로 그때 깨달았으며, 이후 오랜 정치 생활을 통해 피부로 체험해왔다.
그해 가을에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둘러싸고 신ㆍ구파 간의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다. 사실 나는 장면 박사의 신파보다는 조병옥 박사의 구파와 인간적으로 더 가까운 편이었다. 그건 조병옥 박사가 대인의 풍모를 지니고 있는데다 선이 굵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무적이고 지나치게 섬세한 장면 박사보다는 조 박사가 다음 해 3․15선거에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길 바랐다. 알다시피 나중에 결국 조 박사가 나서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해 가을 조 박사는 한때 대통령 후보 지명을 포기하기 까지 했다. 신ㆍ구파의 대결이 지나치게 과열돼 적전분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각 지구당에 조 박사를 모함하는 각종 인쇄물이 살포된 일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일어난 난동사건이 “자유당이 구파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모함으로까지 번지자 조 박사는 후보 사퇴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후보사퇴의 결단을 내리기 전인 1959년 10월 9일 새벽 돈암동 자택으로 나를 불렀다.
“중상모략도 모략이지만 이렇게 파멸로 치닫다가는 언제 당이 쪼개질지 모르는 일이니, 차라리 내가 경선을 포기할까 하는데 이 기자 생각은 어떻소?”
“지금은 박사님께서 희생하실 때입니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나는 동의했다.
결국 다음날인 10월 10일 조 박사는 내 뜻을 참고하여 남산 외교구락부에서 자파 민주당 간부들과 신문기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전격적으로 대통령후보 포기 선언을 했다. 포기 선언 전에는 나 이외에 정치참모로서 유진산 의원에게 귀띔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성태, 조영규 등 구파 국회의원들과 당원들이 연일 조 박사 집에 몰려가 울면서 포기선언을 번복해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그는 경선 포기의 뜻을 굽히고 11월 26일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 나가 장면 박사를 484내 481로 누르고 승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