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환 특검팀은 수사시간이 끝나갈 무렵인 6월 20일, 박지원 전 장관의 150억 원 수수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30일간의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하는 ‘수사기간 연장승인 요청서’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식 제출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송두환 특검의 보고를 받고 검토한 결과, 대북송금 의혹사건은 거의 수사가 완결된 상태이며 150억 원 수수 의혹사건이 새롭게 불거졌지만 대북 송금과 150억 원 의혹사건은 법률적, 정치적으로 별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며 특검의 수사시간 연장 요청을 거부했다.
수사시간 연장 불발로 150억 원 수뢰 의혹을 규명하지 못하고 수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 특검팀은 “30일만 더 있었어도 150억 원의 정체를 모두 밝힐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일반 검찰보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적 직무가 보장되어야 할 특검의 수사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중단된 점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검팀이 ‘수사기간 연장을 통해 150억 원의 의혹사건을 조사하되 DJ 조사계획은 없다’는 수사 방향까지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정치적 고려 때문에 특검을 중단시킨 것은 정치적 외압을 배제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특검제 실시의 근본 취지와 특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규명하던 민족 화해 정책에 악영향을 준다는 거부논리 또한 일반 국민의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수록 투명성과 정차적 정당성이 담보되어야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한나라당은 6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정략적으로 특검을 무산시켰다”며 ‘송 특검팀이 밝혀내지 못한 대북송금 나머지 부분과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 새로운 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홍사덕 원내총무의 주도로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박지원 전 장관이 제공받은 150억 원 사건을 포함한 관련 비리의혹 사건과 이와 관련한 청와대 · 국정원 · 금융감독원 등의 비리의혹 사건만으로 그 수사대상을 축소하는 수정된 특검법안을 7월 8일 민주당 의원들의 불참 속에 한나라당 의원과 자민련 의원(김학원)만으로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이후 당내 반발 등 우여곡절 속에서도 한나라당의 홍사덕 총무와 민주당 정균환 총무는 협상을 벌여 특검수사 대상을 현대그룹 비자금 ‘150억 원+α’에 국한해 수사토록 한다는 데 의견 접근까지 보았으나 곧바로 상황은 다시 돌변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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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년 4월 16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해암빌딩내 14층에서 개최된 대북송금 송두환 특별검사팀의 현판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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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있었던 ‘북한이 140여 차례에 걸쳐 핵고폭 실험을 한 사실을 김대중 정부가 1998년 4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국가정보원의 보고 내용이 계기가 되어 한나라당이 다시 강경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급기야 한나라당은 11일 ‘150억 원+α’에 대북송금 사건 및 송금된 돈의 북한 핵 개발비용 전용 여부를 수사대상에 포함시켜 새로운 특검법 수정안을 제출하였으며 민주당은 이에 강력히 반대했다.
즉 한나라당에 의해 제출된 재수정안의 내용은 박지원 씨가 이익치 씨로부터 제공받은 150억 원 사건을 포함한 관련 비리의혹 사건과 북한의 핵고폭 실험에 남북협력기금이 전용되었는지의 여부, 현대를 통해 북한에 제공한 의혹사건 등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한 것까지 확대하여 수사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한나라당이 제출한 대북송금 재특검법안은 민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한나라당과 자민련 · 개혁당 의원만으로 15일 오후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151명 재석의원 중 142명이 찬성했고, 반대 3명, 기권 6명이었다. 개혁당 김원웅(金元雄) · 유시민 의원과 자민련 김종호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으며 기권자는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 · 서상섭(徐相燮) · 김원길(金元吉) 의원과 국민통합21 정몽준, 민국당 강숙자 의원, 박관용 국회의장 등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예상한 대로 22일 국무회의에서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새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 대통령 국무회의에서 “대북송금 사건은 특검에 의해 충분히 수사가 돼 다시 수사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150억 원 수수 사건에 대해선 (나 자신도) 특검법 수용 의사를 (처음에는) 밝혔지만, 오로지 정치적 목적에 의해 법안이 만들어진 만큼 이를 거부하는 것이 옳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노태우 대통령이 1989년 국민의료보험법안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한 이후 처음인 것이다.
노 대통령이 특검법안을 거부하자 한나라당은 이 법안을 국회에서 재의키로 결정을 했으며 7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다시 표결하였다. 표결 결과 재석의원 257명 중 찬성 151표, 반대 105표, 기권 1표로 재석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지 못하여 특검법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나는 그때 한나라당이 강경파들의 논리에 휘둘려 수사대상을 불필요하게 확대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으로 하여금 특검 거부 명분을 준 데 대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했다. 당초 노 대통령과 민주당은 대북송금 부분을 뺀 150억 원 의혹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할 명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청와대와 민주당도 특검 수용 의사를 갖고 있었으므로 만일 한나라당이 홍사덕 총무의 협상안을 받아들였더라면 150억 원 의혹은 특검에 의해 규명될 수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