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송두환 특별검사팀이 기소한 지 석 달여 만에 열린 대북송금 사건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대북송금은 통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남북 정상회담은 합법성, 적법성을 판단할 수 없는 통치행위지만 송금행위 자체는 정상회담과 관련이 있을 뿐 통치행위로 볼 수 없다”면서 “따라서 대북송금 과정에서 빚어진 행위는 사법 심사대상이고 특검이 기소한 내용은 모두 유죄”라고 판정했다.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비밀리에 대북송금이 있었다는 사실은 민족의 순수성과 자존심을 훼손하는 ‘옥에 티’로 기록될 것이다.
이후 여야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과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SK 100억 원 불법 대선자금 수수가 사실로 확인되는 등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은 10월 31일 ‘2002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SK그룹으로부터 정치권에 제공된 불법자금 의혹 규명’, ‘국회의원 정대철, 이상수와 관련된 2002년 대선자금 불법 모금 등 의혹 사건 규명’,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이광재, 양길승 관련 권력형 비리사건 규명’ 등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측근 비리 의혹 수사에 관한 3개 특검법안을 국회에 단독으로 제출하였다.
한나라당이 3개의 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제출한 자신의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법을 수용할 뜻을 내비쳤다.
11월 2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수사 상식을 가진 사람이 봐서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을 담아 구체적으로 다듬어서 입법해 보내주면 성실해 수사하도록 (특검법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나라당이 제출한 3개의 특검법안은 11월 4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었으나 한나라당은 3개의 특검법안 중 2개의 특검법안은 전략상 처리를 일단 유보하고 다른 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쉬운 노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한 특검법안을 우선 처리했다. 이 법안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방탄ㆍ정략 특검’으로 규정, 강력히 반대했으나 민주당은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안은 이후 11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272명 중 193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84표, 반대 2표, 기권 7표로 전체 의원 수 3분의 2(182명)를 넘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하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4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협박정치는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25일에는 마침내 측근 비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특검법의 수사대상은 현재 검찰이 수사 중에 있는 만큼 이번 사건 처리는 국법질서 운용에 나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헌법정신과 원칙을 존중해 정치적 부담과 불편이 따르더라도 재의 요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하자 한나라당은 정권과의 전면투쟁을 선언,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최병렬 대표가 단식투쟁에 돌입하여 정국이 극한 대결로 치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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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전 대통령이 8일째 단식 농성중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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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함으로써 정국이 소용돌이 속에 빠지고 국회가 마비되어 국정이 표류하게 된 데 대해 참으로 유감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노 대통령의 사려 깊지 못한 특검 거부와 야당의 극한투쟁으로 결국 민생만 파탄 나고 국민만 더욱 큰 고통 속에 빠져들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정국 혼란과 국정 마비가 불을 보듯 뻔한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이 수사 중이라는 명분을 들어 특검을 거부한 것은 큰 잘못이다. 우선 노 대통령 자신의 측근 비리 의혹에다 스스로도 “보고를 받고는 눈앞이 캄캄했다.”며 대통령직을 걸고 재신임까지 묻겠다고 한 이상 정치 도의상 당연히 특검을 받아들여야 하고, 특히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184표)으로 통과된 법안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더욱이 야당이 특검법을 제출하자 대통령 스스로 “단서가 될 내용을 담아 구체적으로 다듬어서 보내주면 특검을 받겠다”며 특검을 수용할 뜻을 밝히지 않았던가. 그리고 노 대통령의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특검법을 받아들일 경우, 검찰의 수사권이 훼손된다”는 법리적 논리는 설득력과 정당성이 부족한 것이다.
지난번 대북송금 사건 특검법 때는 수사 중임에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유독 측근 비리 의혹과 관련한 특검법만 조건을 달아 거부하는가. 대통령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가 단식에 돌입하고 국회가 마비되자 특검법안을 거부한 노 대통령은 물론 한나라당에도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국회 마비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12월 2일 개최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나는 노 대통령의 특검법안 거부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민주당도 재의결 당론을 정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야당과 의사일정에 타협이 안 될 경우 의장이 직권으로 특검법안을 상정하도록 민주당 의원만이라도 본회의장에 나가 기다릴 것도 주장하였다. 이어 나는 단식 중인 최병렬 대표를 방문하여 “처음부터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한 것이 잘못되었지만 그렇다고 국회를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특검법안을 재의결에 부치면 가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왜 이렇게 장외투쟁을 계속하느냐. 단식을 중단하고 즉시 국회로 돌아와 표결에 임하라”고 강력히 설득했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특검법안 재의결을 당론으로 결정하자 한나라당도 의원총회에서 재의결로 방향을 틀어 12월 4일 오후 본회의에서 재의결 표결이 이루어졌다.
재적의원 272명 중 266명이 참석한 가운데 무기명 투표로 실시된 특검법안 재의는 찬성 209표, 반대 54표, 기권 1표, 무효 2표로 의결 정족수의 출선의원 3분의 2(178표)를 31표나 초과해 압도적으로 가결되었다.
국회의 재의결 사례는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거부해 국회가 재의결한 이후 처음이다.
국회의 특검법안 재의결로 노 대통령은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고 정신적 여당을 자처하는 열린우리당도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