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충동적,즉흥적 언행...

나는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심정으로 국민투표 제의를 철회하고, 과거와 전혀 다른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 그리고 국정쇄신으로 국민을 편안하고 잘살게 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자신이 재신임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한 12월 15일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국민투표 문제에 대해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국민투표가 안 된다면 다른 방법으로 재신임을 묻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12월 12일 성명을 통해 “노 대통령은 나라의 혼란을 막기 위해 늦어도 12월 15일 이전까지는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지신임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래도 노 대통령이 무리하게 재신임 투표를 공고한다면 즉각 이의 집행정지 가처분신청과 헌법소원을 다시 제출할 것”을 천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한 12월 15일 하루 전날인 14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4당 대표의 회담이 있었다. 주요 의제는 이라크 파병 문제였지만 재신임과 관련해서도 논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4당 대표들은 한 목소리로 노 대통령에게 ‘재신임 국민투표는 위헌’ 이므로 철회할 것을 요구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고 말해 국민투표 방식은 일단 거둬들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양심의 부담과 책임정치 취지를 고려해 나나 나의 주변 수사가 마무리되어 진상이 밝혀지면 국민의 뜻을 살펴서 최종 결단하겠다”고 말함으로써 대선자금 및 측근 비리 수사가 종결된 뒤 어떻게든 재신임을 받겠다는 뜻을 다시 밝혔다.

참다운 지도자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때는 이를 인정하고 깨끗이 시정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노 대통령은 ‘한번 하겠다고 한 것이므로 유야무야 넘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말고 현행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방법은 자진사임과 탄핵, 두 가지밖에 없는데 무슨 방법으로 재신임을 물을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든지 아니면 애당초 자신의 재신임 요구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를 깨끗이 철회하는 것이 정치도리요 순리인 것이다.

▲ 노무현 대통령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민주당 대표, 김원기 열린우리당 의장,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4당 대표회담

노무현 대통령은 12월 14일 회동에서 자신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 불법 선거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노 대통령은 세 번째로 ‘사퇴’를 입에 올린 것이다. 지난 5월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로 국민을 놀라게 하더니, 10월에는 측근 비리가 터지자 ‘재신임 투표’를 들고 나와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법 대선자금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은퇴’라는 사려 깊지 못한 즉흥적 발언으로 국민을 또다시 혼란스럽게 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또한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는 국가의 운명과 국민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의 말은 천금 같아야 한다. 또한 대통령의 자리는 가벼운 말로 그만두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언제든지 물러나도 좋다는 비장한 각오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을 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걸핏하면 국민을 상대로 ‘대통령 안 하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하면 나라와 국민은 혼란과 불안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국정 운영의 최고책임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을 수 있는 지혜와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에서 “군자는 무겁지 아니하면 위엄이 없으니 백성을 위하는 윗사람은 마땅히 무거움을 갖추지 아니하면 안 된다(不重則不威爲民上者不可不持重)”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더 이상 충동적이거나 즉흥적인 언행으로 국민을 불안케 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때로는 침묵으로 무거움을 갖추어야 한다.

한편 그 후 시간이 흘러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의결한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도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은 분명히 ‘우헌’ 이라는 결론을 최종적으로 내렸다.

이라크 파병 때도 노무현 대통령은 불필요한 발언으로 혼란을 야기 시킨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