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파병 당시 찬반 양론이 팽팽한 가운데 노 대통령은 2003년 3월 19일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들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이라크 조기 파병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당부한 데 이어 3월 26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정부의 건설공병과 의무부대 파병 결정은 명분이나 논리보다 북핵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감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대단히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에 기초한 것”이라며 이라크 조기 파병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26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金昌國)가 전원 위원회를 열어 “이라크에 대한 일방적 침공은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적 전쟁”이라고 반전 의견을 채택, 사실상 파병 반대 의견을 제시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수석·보좌진 회의에서 이에 대해 “그런 행위 자체가 인권위의 업무임을 인정해 줘야 한다. 인권위는 이런 일을 하라고 만든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여 노 대통령이 겉으로는 파병 입장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파병을 원치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4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참석의원 256명 중 찬성 179표, 반대 68표, 기권 9표로 파병동의안이 가결되었으나 여당의 반대표가 야당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이날 투표 결과 여당인 민주당(열린우리당과 분당되지 전)은 찬성 49표, 반대 43표, 기권 4명으로 찬반이 비슷한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찬성 118표, 반대 22표, 기권 5명으로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아 야당의지지 없이는 이라크 파병동의안의 가결은 불가능했었다.
특히 여당 중 반대표를 던진 김근태(金槿泰) · 김성호(金成鎬) · 송영길(宋永吉) 의원 등 대부분 의원이 그 후 열린우리당의 창당 주역이어서 이날 투표 결과는 여야가 완전히 뒤바뀐 꼴이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결과도 결국 노 대통령의 이중적인 발언에도 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2차 이라크 파병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도 청와대 및 관련 부처 간에 서로 다른 의견이 공개적으로 표출되어 갈등과 혼란을 심하게 겪었으나 노 대통령은 그대로 방치하였다.
9월 중순 미국의 이라크 추가 파병 요청에 대해 노 대통령이 신중히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나종일(羅鍾一) 국가안보보좌관은 파병을 찬성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은 개인적으로 파병 반대 입장을 밝혀 큰 혼란이 빚어졌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가 파병을 결정한 이후에도 규모와 시기 등을 둘러싸고 관련 부처 간에 사전 조율 없이 각각 다른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혼란에 빠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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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이 통과된 후 파병반대파 의원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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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 이후 이라크 치안 상태가 점차 심각해지고 국내에 파병 반대 여론이 고조되어 가자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11월 27일 정부 부처 간 사전 조율 없이 “3천 명 안팎의 파병이 합리적”이라고 불쑥 언급하였다. 그러자 당장 다음 날인 28일 조영길(曺永吉) 국방장관은 “누가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고 외교통상부 장관도 “NSC관계자의 하나의 아이디어일 뿐”이라며 일축하여 국민들을 헷갈리게 했다.
이와 같이 파병 문제에 대한 정부 내 의견이 중구난방으로 터져 나오고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데도 노 대통령은 이를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방치함으로써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한편 나는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에 대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줄곧 신중론을 펼쳤다. 처음부터 나는 “아무리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이라도 국제적 명분이 약한 전쟁에 전투병 파병을 무조건 동의해서는 안 되며 부득이 파병하더라도 UN 안보리 결의에 의한 평화유지군 형태가 되어야만 국제적 명분이 있어 국민이 납득할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이후 UN 안보리 결의가 있었고 노 대통령이 부시 미 대통령과 약속까지 한 상황에서 나는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 한미 동맹 관계의 공고화 및 이라크 전후 재건사업 참여 등 국익을 고려하여 파병을 한느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APEC 정상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파병을 약속했고 이에 부시 대통령이 감사하다는 공동성명까지 발표한 이상 우리는 국제적 신의를 지켜야 할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다만 파병을 하되 크게 두 가지 점을 유념하여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2월 9일 국방위원회에서 “무엇보다 우리 젊은 군인들의 신변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후세인 대통령이 체포된 후에도 미군 및 동맹국에 대한 저항세력의 무차별 테러행위가 계속 진행되고 있으므로 군인들의 신변 안전에 추호도 소홀함이 없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나는 “이라크 및 아랍권 국가들과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와 전후 복구 사업 참여 등을 고려해 이라크 국민들의 민심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것”도 국방부에 강력히 당부했다.
이날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은 재석 14명 중 찬성 12표, 반대 2표로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반대한 2명은 열린우리당의 장영달(張永達) 국방위원장과 민주당의 한충수(韓忠洙) 의원이었다.
그런데 국방위원회를 오전 10시에 소집한 장영달(張永達) 국방위원장은 집으로 찾아온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만남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아 오전 회의가 무산되고 오후에야 회의를 속개할 수 있었다. 야당 의원들은 오전 내내 장 위원장의 출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국방위원회에서는 파병 동의안이 통과되었으나 이날 본회의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반대로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렇게 대통령이 요청한 파병 동의안을 여당이 반대하고 시간을 끌어 국정 혼란이 야기됨으로써 또 한 번 노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와 여당의 무책임한 행태가 국민의 비판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