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결국 운명의 여신은 자유당 이승만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조 박사는 대선 도중 건강이 악화돼 “낫는 대로 지체없이 달려오리라”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건너가 ‘월터리드’ 육군 의료센터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고, 수술 직후인 1960년 2월 초에는 내게 안부 전화까지 했다.
“아, 이 기자. 수술도 잘됐고, 이젠 열흘 안에 귀국해 3월 15일의 선거를 치룰 생각이오.”
그러나 안부전화를 받고 바로 며칠 뒤인 2월 16일 새벽이었다. 나는 집으로 걸려온 다급한 김성열 정치부장의 전화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만섭 기자, 빨리 신문사로 나와야겠어요. 조 박사가 심장마비로 어젯밤 갑자기 숨을 거뒀어....... 빨리 나와 기사를 써야지요.”
눈앞이 캄캄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는 전화기를 붙든 채 그냥 엉엉 울어버렸다. 한참을 올다 회사로 나온 나를 보더니, 김성열 부장이 한마디를 했다.
“기자는 어떤 상황에서건 냉정해야 하는데, 이만섭 씨는 신문기자로서는 너무 감정이 풍부한 편이라서......”
조 박사의 서거로 대통령 선거는 이미 끝난 셈이었다. 그렇다고 부통령 선거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민주당은 부통령 선거에 전력투구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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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하는 조병옥 박사를 환송하며 / 왼쪽부터 조승민 비서, 나, 조병옥 박사, 이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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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0년 2월 28일 취재 차 대구로 내려갔다. 민주당 장면 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4․19의 싹은 이미 그때 움트고 있었다. 선거유세가 있었던 그날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대구 시내 중․고등학교에 강제 등교령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 이유는 장면 박사의 유세에 시민들이 몰리는 것을 막고 선거열기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경북고 등 시내 고등학교 학생 1천여 명이 ‘학원의 정치도구화 반대’를 외치며 대구시청 앞 광장을 향해 데모 행진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른바 ‘2․28대구 학생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취재 중 내 눈에 비친 무자비했던 경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바쁘게 기사 송고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몸으로 학생들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대구 시청 앞 무도관 뒤편에서 한 고등학생이 경찰에 붙잡혀 심하게 구타당하는 걸 보고 참지 못해 몸으로 구해 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한 자유당 정권은 4할 사전투표, 3인조, 5인조 릴레이식 투표 등 노골적인 부정선거를 감행하였다. 그런 결과로 자유당 정권은 결국 이기붕 883만 7059표, 장면 박사 184만 8758표라는 말도 안 되는 부통령 선거결과를 만들어버렸다. 결국 민심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규탄데모는 마산에서 시작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가 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시작되어 곧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데모는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4월 11일 아침 마산시 앞바다에서 최류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 군의 시체가 떠오르면서 시민들의 격분은 극에 달했다.
나는 그날 아침 급히 기차 편으로 마산에 내려갔다. 도착하자마자 동아일보 마산지국에 진을 쳤다. 마산시내는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성난 시민들이 경찰과 정면 충돌을 벌이다 유혈사태로 번졌고, 12일과 13일이 되어도 분노의 불길은 꺼질 줄 몰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3일 밤 나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경찰이 김주열의 시신을 빼돌린다더라.”
나는 즉시 시신이 안치된 마산 도립병원으로 내달렸다. 병원 앞에는 무장경찰들이 포위해 일체 접근을 막았고, 조금 있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시체를 인수받은 경찰차가 무장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시내를 가로질러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동아일보 지국의 차를 몰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