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혼선으로 인한 우여곡절 끝에, 나흘 뒤인 2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은 재적 의원 271명 가운데 212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찬성 155표, 반대 50표, 기권 7표로 통과되었다.
이날 정당별 투표 상황은 한나라당이 찬성 108명, 반대 4명, 기권 4명이었던 반면, 권고적 반대 당론을 채택한 민주당은 찬성 14명, 반대 34명, 기권 1명이었으며, 본회의 직전 찬성 당론을 확정했던 열린우리당은 찬성 26명, 반대 12명, 기권 1명이었고, 자민련 의원 등 비교섭단체 의원 1명은 파병 안에 찬성했다.
그동안 파병을 반대해 왔던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원내대표와 장영달 국방위원장은 이날 본회의에서는 찬성으로 돌아섰으며, 민주당에서는 나를 비롯하여 조순형(趙舜衡) 대표, 한화갑 전 대표, 유용태(劉容泰) 원내총무, 장성원 정책위의장 등이 소신대로 찬성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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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기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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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참으로 안타깝게도 16대 국회는 국민의 불신을 넘어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과거부터 쌓여온 정경유착의 비리가 한꺼번에 터진 탓도 있겠지만 어느 국회보다 부정 · 비리 사건이 많았고, 사법 처리되는 국회의원의 수도 어느 때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2003년 12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정대철(鄭大哲 열린우리당) · 최돈웅(催燉雄) · 박명환(朴明煥) · 박주천(朴柱千) · 박재욱(朴在旭 한나라당) · 이훈평(李訓平) · 박주선(朴柱宣 민주당) 의원 등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모조리 부결됨으로써 국민들에게 국회 전체가 비리를 옹호하는 집단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이날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속으로 죄질이 무거운 한두 의원만이라도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어 국회의 체면이 서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을 했으나 그것도 허사였다.
특히 2004년 2월 9일에는 대선자금 비리사건으로 구속된 서청원 의원의 석방결의안을 긴급 상정하여 통과시킴으로써 국회는 국민들로부터 결정적으로 불신과 증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날 한나라 · 민주 양당 총무와 사회를 맡은 국회의장은 동료 의원에 대한 인정에만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국민을 두려워했어야 했다.
그때 나는 국방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본회의장에 들어가다가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을 투표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부끄러운 생각에 본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옛 정치인은 명예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기보다 차라리 사업을 해야 한다.
나는 한평생 “우리 정치인 중에 재벌에 약점을 잡히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치를 계속해 왔다. 항상 후배 정치인에게 “여름에 아무리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때 그 물에 독이 있나 없나를 반드시 확인하고 마셔야 한다”고 충고해 왔다.
우리나라 기업인이 이해관계를 떠나 순수하게 정치인을 도와주는 일은 거의 없다. 정치자금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다. 기업인은 물론 정치인끼리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모든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개혁이란 깨끗한 정치를 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나는 16대 국회의 많은 부정 · 비리사건의 표출이 깨끗한 정치를 위한 새로운 계기가 되어, 17대 국회부터는 정경유착의 고리가 완전히 끊어지고 돈 문제로 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후보 그리고 정치인이 패가망신하는 서글픈 일이 다시는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