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되기 직전인 9일 오후 2시경 민주당은 당시 긴급 상임중앙위원 · 상임고문 회의를 소집했다. 한나라당의 일관성 없는 태도로 탄핵소추안 발의가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탄핵안이 정식으로 접수되었기에 당 간부들은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이 분위기를 냉각시키려 했다.
그래서 나는 이 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을 바로 표결에 부치기보다 국회법 130조 1항의 규정에 따라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조사하게 함으로써 시간적 여유를 갖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대통령을 탄핵한 데 대해 국민들을 설득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고 국회 본회의에서의 통과 가능성, 앞으로의 탄핵정국을 분석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나는 법사위 회부를 누누이 강조했다. 또 국회법에서는 법사위에서의 조사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총선 때까지 시간을 끌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상현 고문이 “속전속결로 표결할 것”을 주장했고 조순형 대표를 비롯한 대부분의 당 간부들은 내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김상현 고문의 뜻에 동조했다.
나는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당의 책임자가 아닌 나로서는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에 따라 탄핵소추안은 본회의에 보고한 후 24시간이 지난 뒤인 10일 오후 6시 27분부터 72시간 이내인 12일 오후 6시 27분 사이에 처리하게 되어 있었다.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후,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탄핵소추안 의결을 물리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본회의장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한편 민주당과 한나라당 등 두 야당은 탄핵소추안 의결정족수인 재적 의원 181명(재적의원 271명의 3분의 2)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탄핵에 소극적인 야당의원들은 11일 노무현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고 난 후 태도를 정하기로 해 본회의 통과는 그때까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11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야당의 탄핵 추진과 사과 요구에 굴복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오히려 자신의 재신임을 총선과 연계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으며 심지어 측근들과 친형의 비리를 옹호하는 발언까지 했다. 이에 야당의 온건파 의원들까지도 180도 선회하여 찬성하는 등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바뀌고 말았다.
기자회견 직후 노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盧建平) 씨에게 3천만 원을 주면서 인사 청탁을 한 남상국(南相國) 전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투신자살을 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돈을 주고 그런 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남상국 전 사장의 실명을 거명하며 그에게 인격적인 모욕감과 수치심을 주는 말을 한 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 같았다.
이 사건은 야당 의원들을 더욱 자극했고 야당 지도부로 하여금 탄핵안 가결에 전력을 기울이게 했다.
나는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부드럽게 하고 앞으로 선거 관련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 탄핵소추안이 표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고 또 설사 표결을 했더라도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안타깝기만 했다.
다음 날인 3월 12일 오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지방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면서 이병완(李炳浣) 홍보수석을 통해 “잘잘못을 떠나 국민 여러분께 오늘 같은 대결 국면과 탄핵정국에 이르게 된 것을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뒤늦은 사과 표명을 했으나 이때는 의원들 모두가 본회의장에 앉아 있어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사과 표명의 내용을 전해들은 일부 야당 의원들도 “이제 와서 무슨 사과냐? 오늘 때늦은 사과는 남 전 사장의 자살에 대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더 강경해졌다.
드디어 12일 오전 11시경, 박관용 의장이 예고 없이 국회 경위들을 대동하고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경호권 발동이었다. 국회 경위들이 박관용 의장을 보호하며 의장석에 오르도록 길을 열었고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물리력으로 제압하여 한 명씩 본회의장 밖으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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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 대표를 비롯한 신기남, 임종석 의원이 국회본회의 사회를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선 박관용 국회의장의 의장석 진입을 막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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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야당 의원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또 경위들에 의해 본회의장 밖으로 끌려 나가면서 발버둥 치며 비명을 지르는 등 국회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박관용 의장이 단상에 올라 의장석에 자리 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10여 분에 불과했다.
물리력으로 의장석을 차지하자마자 박관용 의장은 개회를 선포한 뒤 표결 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박관용 의장은 당초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가 할 예정이었던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을 “유인물로 대체한다”며 생략하고 곧바로 무기명 빗물투표를 선언했다.
단상에서 밀려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표결 중단’을 요구하는 등 격렬히 저항하자 박관용 의장은 “계속 난동을 피우면 퇴장을 명하겠다”고 경고했다.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오열하거나 “기표를 중단하라”, “쿠데타를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투표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박관용 의장은 오전 11시 50분께 투표 종료와 개표를 선언했다.
열린우리당 의원을 제외한 국회의원 195명(한나라당 129명, 민주당 53명, 자민련 8명, 무소속 5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가결시켰다.
박관용 의장이 탄핵소추안의 가결을 선포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서류뭉치와 의원 명패, 심지어 구두까지 의장석에 던지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박관용 의장은 탄핵안 가결을 선포한 후 경위들의 보호를 받으며 곧바로 퇴장했다. 이렇게 하여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