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주장했으나 국회 본회의에서 벌어진 그 참담한 광경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국회의장을 두 번 지내면서 날치기를 없애고, 경호권 발동의 악습을 완전히 없앤 나로서는 이런 전통이 우리 국회에서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날 경호권이 발동되고 국회의원들이 경위들에게 비참하게 끌려나가는 모습은 차마 고개를 들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여야 의원끼리 서로 육체적인 충돌이 일어나면 그것은 나중에 서로 사과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경위들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면 그것은 아무리 법 절차에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과거 여대야소 때 경호권 발동이 있었으나 그것은 주로 본회의장 안에서 농성하는 야당 의원들을 본회의장 밖으로 못 나오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여당은 다른 방에서 날치기를 하는 경우였다. 그러나 실제로 경위들이 국회의원을 본회의장 밖으로 끌어낸 일은 자유당 말기인 1958년 ‘24보안법 파동’ 때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때 자유당은 그 후유증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국회의장이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경호권 발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야당으로부터 표결 사회를 강력히 요청받았다면, 차라리 야당 의원들에게 단상을 정리하라고 했을 것이다. 만일 야당 의원들이 단상을 정리하지 못하면, 나는 무리하게 표결을 강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선거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를 거부하고, 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여 표결을 방해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더라면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비난을 받고 야당은 오히려 명분도 얻고 여론의 지지를 받는 유리한 입장에 놓였을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어차피 헌법재판소에 회부되게 되어 있으므로 국회 발의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총선을 앞두고 결코 무리하게 통과시킬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무리하게 통과시킴으로써 전국적으로 탄핵 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졌고, TV에서도 국회에서 여야가 격돌하는 장면과 특히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경위들에게 끌려 나가는 모습을 하루 수차례씩 보도함으로써 국민의 여론은 탄핵 반대쪽으로 순식간에 기울어지고 말았다.
대통령의 잦은 말실수, 측근들의 부정비리, 노골적인 사전 선거운동 등 탄핵의 원인을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가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일방적인 편파 보도와 대통령 권한 정지에 대한 불안감, 국회 경위들에 의해 끌려나간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인해 국민 여론은 탄핵 반대가 70%, 탄핵 찬성이 30%로 나타나는 등 정국의 상황은 야당에 극도로 불리하게 돌아가고 말았다.
민심이 이렇게 되자 소신 없는 일부 야당 의원들은 탄핵 철회와 당 지도부 교체를 주장하고, 탄핵에 반대한 몇몇 의원은 탈당하는 등 야당 내분사태까지 발생해 야당의 지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전국적으로 급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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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본회의장에서 국회 경호원에게 끌려나가며 울부짖는 임종석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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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정당의 지지율이 어떻게 변하든 그것보다 나라의 미래가 더 걱정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탄핵 반대 촛불시위와 이에 맞선 탄핵 찬성 시위가 마치 해방 직후의 신탁통치를 둘러싼 찬탁(贊託)과 반탁(反託)의 대립과 같이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는 극도로 혼란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지금은 찬탄(贊彈), 반탄(反彈)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혹시 해방 후처럼 양쪽이 충돌해 유혈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된다. 이제는 대통령이나 여야 모두 겸허한 자세로 헌법재판소 결정을 차분히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특히 "TV 방송사는 탄핵 반대에 치우친 편파 보도를 하지 말고 공정한 방송을 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나는 3월 17일, 민주당에서 열린 상임중앙위원 · 상임고문 회의에 마지막으로 참석하여 나라를 걱정하며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언론인들도 여기 모두 모여 있으니 국민에게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탄핵에 대해 일부에서는 민주당, 한나라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또는 권력을 찬탈하려 한다고 하는데, 야당이 어떻게 쿠데타를 한단 말입니까? 또 어떻게 권력을 찬탈한단 말입니까? 권력을 갖고 싶다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겁니까? 국민들이 주어야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 모두 지난 일들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이 탄핵정국의 원인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물의를 일으킨 것 아닙니까.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대통령은 ‘이제야말로 시민 혁명을 할 때다’, ‘나는 다음 국회에서 지지를 받는 우호세력이 있어야겠다.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선거 관련 발언이 문제가 된 것 아닙니까. 왜 이런 사실들을 전부 잊어버리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때 선관위에서는 선거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려 이를 정중하게 청와대에 통고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대해 대통령이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존중할 뜻을 보여줬으면 모든 문제가 끝났을 것 아닙니까?
11일 기자회견 때도 대통령이 부드럽게 타협적으로 한 말씀만 했으면 표결도 안 했을 겁니다. 설사 투표해도 부결됐을 겁니다. 이러한 경위를 공정하게 보도해 주어야 합니다.
여론조사에서 70%가 탄핵 반대, 30%가 찬성. 대충 이렇게 나온 것 같은데, TV에서 하루 예닐곱 번씩 국회에서 열린당 의원들이 끌려 나가는 장면만 방송하니 자연히 국민은 약자에 대해 동정을 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내가 국회의장 시절에 경호권을 없애고 날치기도 없었는데, 그날 나도 경호권을 발동한 것은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탄핵정국의 원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실수에 있어요. 지금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들 중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마치 야당이 쿠데타 모의나 하고 권력을 찬탈하려고 한 것처럼 오해하고 있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대통령이나 우리 모두 겸허한 자세로 헌재 결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강금실 법무장관이 17대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철회하는 것이 좋겠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이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나라를 위해 말조심 할 때입니다.
그리고 민주당 문제에 대해 한 말씀 하겠습니다. 노선이 안 맞아서 당을 떠나는 사람들은 선거를 앞두고 제발 조용히 나가주세요. 어떻게 자기 집에 불을 지르고 나갑니까? 어떻게 오래 머물렀던 집을 때려 부수고 나갑니까? 하루를 자도 고맙게 생각하고 조용히 떠나는 법이에요. 당도 그렇지만 본인에게도 별로 득 될 게 없을 겁니다. 계산기 두드려보고 득 볼 것 없다고 생각해서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요.
나는 ‘청치와 사랑은 계산하면 안 된다’ 고 생각하지만, 계산하고 떠나는 사람을 어떻게 해요. 그런 사람들 욕할 것도 없어요. 그냥 조용히 내 보내고, 조용히 떠나세요. 뒤에서 욕 할 것도 없어요.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한다는 문제는 헌재에서 이미 재신임 국민투표가 사실상 위헌이라는 결론이 났으므로 깨끗하게 이를 철회하고 국정에 전념하는 것이 대통령의 도리입니다. 자신의 선거 개입 발언 문제로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운데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해야 할 판에 또 재신임과 총선을 연계하다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이 나라는 지금 해방 후 가장 어렵고 심각한 때입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대통령, 여야 정치인 모두 나라를 먼저 생각합시다.”
그러나 그 후에도 밤마다 탄핵 반대 촛불시위와 찬성 시위가 맞서서 벌어졌고 나라의 앞날은 풍전등화와도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