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로 정치인으로서 한없이 우울했다. 그리고 며칠 밤잠을 이루수가 없었다.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탄핵정국을 스스로 자초한 노 대통령은 문제를 수습하기는커녕 기자회견을 통해 강경 발언을 함으로써 오히려 사태를 더 어렵게 만들었고, 야당 지도부와 국회의장은 탄핵안이 헌재에 넘어가면 어차피 부결될 게 뻔 한데도 이를 예측하지 못한 채 국회에서 무리하게 통과시킴으로써 민심을 완전히 떠나게 한 그 단견에 대해서도 나는 한없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사전에 조율하기에 역부족이었던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한없이 원망스럽고 안타깝기만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끄러워 국민에게 정치한다고 앉아 있을 수도 없고 또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태극기가 세워져 있는 의장석에 구두 짝이 날아가는 그 국회에 전직 의장으로서 도저히 다시 들어갈 생각도 나지 않아 나는 국회의원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2004년 3월 21일, 다음과 같이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 의사당을 영원히 떠나고 말았다.
국회의사당을 떠나면서
정치인은 모름지기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나는 평소에 해왔다. 그래서 나는 이제 16대 국회를 끝으로 41년간의 의원 생활을 마감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국회를 떠난 후에도 이 나라의 자유 민주주의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남은 여생을 다 바칠 생각이다.
나는 또한 국회의장을 지낸 영원한 의회인으로서 앞으로 국회 밖에 있더라도 국회가 국민에게 사랑과 믿음을 받는 참다운 민의의 정당이 되도록 힘을 보탤 생각이다.
2004년 3월 21일, 전 국회의장 이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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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2004년 4월 21일 '국회의사당을 떠나며'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영원히 국회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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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7대 총선이 끝난 후인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청구한 노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해 ‘일부 헌법 및 법률의 위반이 인정되지만 대통령을 파면시킬 만한 중대 사유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는 헌재가 법 이론과 현실 정치를 절충해서 내린 판단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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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헌재 선고 판결문을 읽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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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조계와 학계 일부에서는 헌재가 정치단체가 아닌 이상 순수한 법이론 으로 재판을 해야지 어떻게 정치적 판단까지 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리고 헌재는 비록 기각 결정은 내렸으나, 대통령의 선거 관련 발언 등이 선거법의 중립 의무와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경고했으며, 특히 대통령이 제안한 재신임 국민투표는 늦게나마 분명히 위헌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날 아침,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통령은 말을 아끼고 조용한 가운데 국정에 전념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충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