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4대와 16대 국회의장 재임 기간 동안 많은 외국 인사를 만나 외교 활동에 힘과 정성을 쏟았다. 나는 국회를 방문하거나 의장실로 찾아오는 외국 손님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시간을 쪼개서 모두 만났다. 특히 재임 기간 중 나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주한 외교사절들을 국회에 초대, 리셉션을 베풀기도 했으며 새로 부임하거나 이임하는 대사들을 꼭 따로 자리를 마련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14대 국회의장 재임 1년 2개월 동안 내가 접견한 손님은 650명이 넘었으며 16대 2년 동안 250여 회에 걸쳐 1100여 명의 주요 외국 인사를 만났다. 이렇게 활발한 의장 외교를 활동을 펼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특히 16대 의장 재임시 다섯 차례에 걸쳐 주요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하고 세계 평화와 국익 증진,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의회 외교 활동을 펼쳤다.
미국 뉴욕의 UN 본부에서 새 천년을 맞아 사상 최초로 열린 국제의회연맹(IPU) 세계국회의장회의(2000년 8월 26일~9월 1일), 쿠바의 아바나에서 개최된 IPU 제105차 총회(2001년 4월 1일~7일),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개최된 제9차 아·태의회포럼(APPF) 총회(2001년 1월 14일~19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IPU 제107차 총회(2002년 3월 17일~23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개최된 제3차 평화를 위한 아시아의회연합(AAPP:Association of Asian parliaments for Peace) 총회(2002년 4월 16일~1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4차 AAPP총회(2003년 8월 31일~9월 4일) 등에 참석하여 각국 지도자들에게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평화 통일을 위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한국과의 공동 이익 및 우호 증진을 위한 협조 방안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했다.
나는 외국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나는 각국 지도자들에게 인간적인 접근을 통해 현안을 풀려고 노력했으며, 그 결과 의장직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그들과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14대 때 내가 만난 주요 외국 인사로는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프랑수아 미테랑(Francios Mitterrand) 프랑스 대통령, 그리고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himoru) 페루 대통령, 추안 리크파이(Chuan Leekpai) 태국 총리, 라닐 위크레메싱헤(Ranil Wickremasinghe) 스리랑카 총리 등 국가원수 9명과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전 소련 대통령 등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16대 의장 재임 시 내가 만난 외국 인사 중에는 조지 워커 부시(George Walker Bush, 미국),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Vladimir Vladimirovich Putin, 러시아), 비센테 폭스 케사다(Vicente Fox Quesada, 멕시코), 피텔 사크트로(Fidel Castro, 쿠바), 리카르도 라고스 에스코바(Ricardo Lagos Escobar, 칠레), 루이스 곤살레스 마치(Luis Gonzalez Macchi, 파라과이), 나차긴 바가반디(Natsagiin Bagabandi, 몽골),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 체코), 페렌츠 마들(Ferenc Madl, 헝가리), 타르야 할로넨(Tarja Halonen, 핀란드 대통령), 후진타오([胡錦濤], 현 중국 국가주석),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 농득만(Nong Duc Manh, 베트남 당서기장), 트란 둑 루옹(Tran Duc Luoung, 베트남 국가주석), 모하메드 6세(Sidei Mohammed Ⅵ, 모로코 국왕), 오스카르 루이지 스칼파로(Oscar Luigi Scalfaro, 전 이탈리아 대통령), 고르바초프(전 소련 대통령) 등 17명의 전 · 현직 국가원수를 비롯하여 국회의장, 정부수반과 정부 각료, 의회위원장, 의원친선협회장, 정당 대표, 국제기구 지도자, 주한 외교사절 등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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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3년 7월 국회를 방문하고 연설을 끝낸 클린턴 미국대톨령이 의장석의 저자와 악수를 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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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외국 인사 중 기억에 남는 인물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리펑[李鵬] 중국 전인대全人大 상무위원장, 라고스 칠레 대통령, 마들 헝가리 대통령,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 농득만 베트남 당서기장 등 국가원수들이다.
1993년 7월 방한한 클린턴 미 대통령은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흔히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으나, 막상 만나보니 상당히 신중한 인물이라 여겨졌다. 극회 연설 때도 그는 한국에 와서 새롭게 느낀 것을 연설하기 직전 내 방에서 원고에 다시 추가하는 등 신중함을 보여주었다.
힐러리 여사도 인상적이었다. 풍부한 지성과 정감 있는 여성으로서 청와대 만찬 때는 내 옆에 앉아 계속 예리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김일성이 죽은 뒤 북한은 어떻게 변할 것 같습니까?”
“한국의 야당과 여당의 정책 차이는 무엇입니까?”
“한국의 복지정책은 어떤 게 있나요?”
내가 많은 각국의 퍼스트레이디를 만나보았지만 그들은 대체로 한국의 음악, 풍속, 음식, 문화에 관한 대화를 즐겼으나, 힐러리 여사처럼 정치적 센스가 예리한 여성은 처음이었다.
미테랑도 인상이 깊었다. 1993년 9월 15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여 한 · 불 양국의 미래에 대해 연설을 했다. 대학 때 나는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했기에 사실 프랑스어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미테랑 대통령이 오기 한 달 전쯤부터 나는 간단한 인사말이라도 배워두려고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해 그가 국회를 방문했을 때는 현관과 응접실에서 서툴지만 프랑스어로 인사를 주고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미테랑 대통령이 꽤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국회 연설 중 그는 원고에도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이만섭 의장이 나를 맞이하여 프랑스어를 구사해 감명을 받았습니다. 양국 학생들이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문화 교류의 시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도 힘들겠지만, 돌아가면 한국어를 공부하겠습니다.”
그러나 잠깐이나마 나와 정들었던 미테랑 대통령이 1996년 1월 아쉽게도 세상을 떠난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