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의 3부 요인 중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했던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1994년 1월 6일 나는 차오스[喬石]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6박 7일간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이때 나는 이례적으로 장쩌민 국가주석, 차오스 전인대 상무위원장, 리펑 총리 등 중국을 이끌고 있던 3인을 모두 만났다.
수교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한국의 최고위 인사라서인지 상당한 환대도 바당ㅆ다. 예를 들면 내가 장 주석을 만나던 날 당기관지인 《인민일보》는 1면 톱으로 나와 장 주석의 면담을 보도했다. 그날 마침 일본의 하타 쓰무토[羽田孜] 외상이 와 있었지만, 그 기사가 훨씬 작게 취급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환대였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아버지와 함께 상하이에 머무르고 있던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장남 덩푸팡[鄧樸方]이 가족을 대표해 내 숙소인 조어대(釣魚臺)로 찾아오기도 했다. 외교가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으나, 사실 덩푸랑이나 아버지의 회고록을 쓴 셋째 딸 덩룽[鄧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내가 인간적으로 극진히 환대했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중난하이[中南海]로 찾아가 만난 장 주석과의 면담은 30분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어 1시간 15분이나 진행됐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엇보다 믿음을 강조했다.
내가 “공자 말씀에 병兵(군사력)·식食(경제력)·신信(믿음) 중 신이 제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도 간담상조(肝膽相照)하는 마음으로 허심탄회하게 교유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을 하자 장 주석도 “전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라고 말하여 회담은 시종 친근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이 때문인지 며칠 뒤 시안[西安]의 유명한 사적지 비림(碑林)을 방문했을 때는 6박7일간 꼬박 나를 수행한 주량[朱良] 전인대 외사위원장이 논어(論語)의 ‘신야만물지근원(信也萬物之根源)’ 이라고 써져 있는 비명을 일부러 찾아내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중국을 방문하면서 특히 내가 관심을 기울였던 점은 역시 경제 교류 문제였다. 때문에 장 주석을 만났을 때도 경제문제에 역점을 두어 이야기했다.
“중국은 한국을 경제 파트너로 삼아 자동차 · 전자 · 컴퓨터 산업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간다면 상호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와 이 같은 제안에 장 주석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앞으로 한국과의 교류는 무조건 내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우리도 한국이 전자제품뿐 아니라 자동차까지 국내에서 생산해 소비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중 양국은 땅, 인구, 1인당 GNP 등에서 차이가 많지만 중국은 한국에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장 주석은 내가 김영삼 대통령이 주석의 방한을 원한다고 전하자 쾌히 승낙하기도 했다.
“그 문제는 이미 시애들에서 김 대통령에게 약속을 한 바 있습니다만 기회가 되면 방문하겠습니다.”
헤어질 때 장 주석은 내가 중국에서 많은 것을 보고 가길 권고했다.
“파이원부루이젠[百聞不如一見]이니 중국의 많은 것을 보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베이징에는 3일간 머물렀고, 그 후 시안 지역과 상하이의 푸둥신구[浦東新區] 등 다른 지역도 둘러봤는데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으며 나는 그 때마다 양국간의 경제 협력을 역설했다.
“여기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의 정착과 투자 활동을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가는 곳마다 한국을 세일즈해 동행한 기자들은 나를 ‘비지니스맨’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이처럼 당시 나의 중국 방문은 후일 리펑 총리와 차오스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방한하는 데 물꼬를 터주었던 것이다.
그 후 16대 국회의장 시절 제105차 IPU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쿠바를 방문한 나는 2001년 4월 1일 리셉션에서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환담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에 국산 야구 글러브와 야구공을 미리 선물했었다. 이에 카스트로 의장은 나를 만나자마자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여 우리는 야구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기도 했다. 특히 나는 쿠바에 한국 무역사무소의 개설을 제의했으며 이에 카스트로 의장도 기꺼이 동의했다.
나는 그 후 국내에 돌아와서도 외교 당국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관계자들에게 미국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조속히 쿠바에 무역 사무소를 개설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하여 2002년 우리 측 무역진흥공사와 쿠바 측 무역당국 간에 양해각서를 교환하였으며, 이에 따라 정기협의회를 개최하여 경제설명회를 하는 등 무역대표부 설치에 관한 준비를 계속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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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4월 1일 쿠바 제 10차 IPU총회에서 한국 3부요인 중 최초로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장을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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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와 카스트로 의장과의 대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만섭 의장 20년 전에도 IPU에 참석하기 위해 쿠바에 왔다가 뵌 적이 있는데 지금도 20년 전처럼 건강해 보이십니다.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오~! 감사합니다(웃음).
이만섭 의장 지금은 국제 정세가 많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가능하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우리 양국 간에 외교관계를 맺는 것이 좋겠습니다.
카스트로 의장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이만섭 의장 앞으로 우리 양국 간에 여러 분야에 걸친 교류가 필요하다고 보며 특히 무역사무소의 개설은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카스트로 의장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생각입니다. 나도 동의합니다. 현재 남북한의 관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이만섭 의장 현재 남북 간에는 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께서 기회가 된다면 남북을 동시에 방문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카스트로 의장 좋은 생각입니다.
이만섭 의장 야구를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들어서 한국에서 만든 야구공과 글러브를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카스트로 의장 호~! 정말 감사합니다.
이만섭 의장 한국 국민들은 쿠바 야구선수들이 한국 프로팀에서 뛰는 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쿠바 야구선수들이 한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카스트로 의장 2~3명 정도 진출해 있지 않은가요?
이만섭 의장 일본에는 몇 명 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한국에는 아직 없습니다.
카스트로 의장 아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냉전시대의 분위기가 조금 남아 있어서 쿠바 야구선수들이 한국에 쉽게 진출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만섭 의장 시간이 되신다면 한 번 더 만났으면 합니다.
카스트로 의장 언제 가십니까?
이만섭 의장 4월 5일에 쿠바를 떠납니다.
카스트로 의장 알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