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주석 만나 월드컵 이야기...

2001년 2월 26일~28일, 김대중 대통령 초청으로 방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연방 대통령은 2월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지원과 한·러 간 경제협력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연설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 직전 국회의장실을 예방했을 때 내가 “서울에서 출발하는 남북철도가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유럽으로 연결되면, 21세기 새로운 세계가 한반도와 러시아에서 출발하는 셈입니다”라고 강조하자 푸틴 대통령은 “경제적으로 쌍무협력 외에도 중국 일본, 북한이 함께 참여하는 아시아 지역의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고려해 봄 직합니다”라고 화답하였다.

나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풍부하게 담겨 있는 《퍼스트 퍼슨(First Person)》이라는 연문 자서전을 읽고 더욱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는 “자서전이 외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잘 쓸 것을 그랬습니다”라고 답변하여 평소 딱딱하고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주위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의사당을 떠날 때, 내가 인사말을 비롯하여 몇 마디 러시아어를 구사한 것에 대해 “의장께서는 러시아 말도 잘하고 발음도 정확해서 앞으로 러시아에 오시더라도 통역관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2002년 1월 두 번째로 중국을 공식 방문한 나는 1994년 1월 제14대 국회의장 재임 시 만났던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을 다시 만나 환담했다.

예정 시간을 훨씬 넘긴 이날 면담에서 우리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진솔하고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먼저 나는 월드컵 이야기부터 꺼냈다.

“중국의 대진표를 보면 브라질 팀이 강팀이기는 하나 중국 팀이 16강전에 진출할 가능성도 있으니 월드컵 때 장 주석께서 한국을 방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장 주석은 “금년에는 제16차 전당대회가 예정되어 있고, 개막일까지 할 일이 많아 방한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이어 장 주석에게, 과거와 같이 앞으로도 남북한의 화해협력과 북 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계속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으며 특히 중국이 역점을 두고 있는 ‘서부 대개발’에 한국 기업이 보다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러한 나의 제안에 장 주석은 전적으로 동의했으며, 또한 그는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 등에는 양국의 입장이 이치하고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내가 본 장 주석은 정이 많고 인간미가 풍부한 지도자였다.

▲ 2002년 1월 12일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내가 또한 마음속으로 가깝게 지내고 있는 중국의 지도자는 리펑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이다. 나는 1994년 리 상임위원장이 총리로 있을 때 베이징에서 처음 만난 이후 상호방문과 국제회의 등을 통해 그를 다섯 번이나 만나 정이 깊이 들었다.

리 위원장은 용의주도하면서도 깊은 인간미가 있는 지도자이며 또한 솔직하고 진지한 면도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지금도 그를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나에게 한 솔직한 얘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가장 바라는 나라는 한국 다음으로는 중국입니다.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 중국과는 입장이 다릅니다. 한반도에 인접해 있는 우리 중국은 만일 남북 간에 무력충돌이 일어난다면 가장 피해를 많이 보기 때문에 솔직히 중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한반도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의 솔직한 얘기가 계기가 되어 나는 지금도 리 위원장을 만나면 국제 정세와 양국 관계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 교환을 하며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나누곤 한다.

한편 나는 장쩌민 국가주석, 리펑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중국의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북한 주민도 우리 동족이므로 잘살기를 원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도 중국과 같이 개방 · 개혁을 하는 길밖에 없으니 중국 지도자들이 북한이 개방 · 개혁을 하는 길로 나서도록 설득 · 유도해 주십시오”하고 강조하곤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중국을 방문하여 공장지대, 특히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상하이 푸둥[上海浦東]지구 등을 시찰하고 돌아온 후 자유 시장경제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특히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한 것도 중국 지도자들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만난 중국 국가 지도자 중 기억에 남는 또 한 사람의 인물은 후진타오[胡錦濤] 현 중국 국가주석이다.

나는 1998년 4월 28일 국민신당 총재로 재임했을 당시 국회에서 국가 부주석이던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날 국회를 방문하여 각당 대표들을 두루 예방했는데, 마지막으로 내 방을 찾아온 그와 나는 한 · 중 양국 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많은 시간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그는 첫인상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2002년 4월 16일, 16대 국회의장 시절 ‘평화를 위한 아시아의회연합(AAPP)’ 에 참석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의가 열리기 전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포옹하고 반겨주던 후진타오 당시 국가부주석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